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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 담긴 풍경 [2018.01] 자동화된 시대의 ‘밥 먹을 자유’

글 김원영

 

자동화된 일상 사진

 

요즘 패스트푸드점이나 카페 등에 속속 키오스크(정보 서비스와 업무의 무인 자동화를 위해 설치된 터치 스크린 방식의 정보 전달 시스템)가 생기고 있다. 비장애인, 특히 스마트폰 등의 기계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편한 방식이지만 장애인이나 노인도 그런 편리함을 같이 누릴 수 있을까?

 

풍경 #1

자주 가는 카페에 주문을 위한 키오스크가 설치됐다. 아르바이트생이 좀 여유를 찾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임금을 낮추지 않기를!). 그러나 나는 당장 키오스크의 스크린이 잘 보 이지 않는 문제와 마주했다. 스크린은 비스듬히 위쪽을 향해있어, 비장애인들보다 70cm는 시점이 낮을 내게는 그래픽이 잘 보이지 않았다. 몸을 팔로 지탱해 고개를 쭉 올린 후, 한쪽 팔로만 그 상태를 유지하면서(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나머지 한쪽으로 이미지를 순식간에 훅훅, 터치하며 일(?)을 끝냈다. 이런, 감자튀김을 빼먹었다. 다시 처음부터···.


곳곳에 이런 시스템이 늘고 있지만 아무래도 하루 세 번을 먹어야 하는 ‘음식’ 주문에서 가장 자주 마주친다. 키오스크와 내가 먹을 음식에 대해 대화하기(주문하기)는 사람과의 그것과 다르다. 첫째, 키오스크는 시각 정보로만 소통하며, 터치만 잘하면 오류를 일으키지 않는다. 새우버거 세트를 시켰는데 와퍼가 나오는 일은 없다. 청각장애인이나 언어장애인들에게 이러한 시스템은 훨씬 편리하겠다. 반면 키오스크는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고 오직 하나의 의사소통 형식만을 사용하기에 나와 같은 지체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들은 난감할 때가 적지 않다.


둘째, 키오스크와의 ‘대화’는 정해진 알고리즘을 따라 순서대로 앞뒤로 흐른다. 메뉴를 선택하세요 – 사이드 메뉴를 선택하세요 – 결제하세요. 앗 감자튀김을 안 골랐네. 뒤로 – 뒤로 – 감자튀김 추가(물론 어떤 키오스크는 순서의 구애를 덜 받게 디자인되어있다). 인간과의 상호작용은 다르다. 어느 지점에서든 감자튀김을 취소하거나 추가할 수 있고, 선택순서를 바꿔도 좋다. 메뉴를 잘못 말해도 맥락을 파악한 상대방이 내용을 정정해준다. 차이는 발달장애인에게는 크다. 감자튀김을 먹고 싶은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은 우선 그것을 머릿속에 염두에 두고 주문할 것인데, 키오스크는 그런 사정은 아랑곳 않고 일단 햄버거 종류를 고르라고 할 것이다.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면 맥락을 고려해 오류를 교정해주지도 않는다. 발달장애인에게는 ‘혼밥의 자유’가 더 줄어들지 모른다. 물론 발달장애의 특성에 따라 사람과의 의사소통이 더 어려운 경우도 있겠다.

 

생각 #2

음식점에 빠르게 도입되는 키오스크는 장애인들에게는 때로 장벽이 되나, 기술적인 보완과 기능 추가를 통해 개선할 수 있다. 음성으로 정보 입출력이 가능하도록, 스크린의 각도는 조절되도록 하며, 더 간단하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제시해 노인이나 발달장애인들도 이용을 쉽게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 이런 문제는 제도적,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게 해결되리라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모든 장애인들이 전혀 불편함 없이 주문을 끝낼 수 있는 키오스크가 모든 음식점에 정착된다면 어떨까?


우리는 더 이상 밥 먹기 전에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멸시의 눈초리를 받을 일도(장애인들은 지금도 종종 식당에서 쫓겨난다), 대부분 낮은 임금을 받으며 장시간 바쁘게 노동하는 종업원들에게 앞으로 나와 달라고, 메뉴를 말로 설명해달라고 곤란한 부탁을 할 일도 사라질 것이다. 주문을 끝내고 가만히 음식만 기다리면 된다. 우리는 비로소 배제와 불편없는 ‘음식의 자유’를 누리게 될까. 그런데 나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촌스러운 우려도 있다.아무래도 ‘음식’은 정형화시킨 메뉴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예외성을 포함하지 않는가? 저염식을 해야 하는 사람, 고기를 빼야하는 사람이 있듯이 말이다.

 

‘음식점’이라는 공간도 마찬가지이다. 종업원이 나와 주문을 받지 않을 때, 우리는 이 밥집에서 우리의 장애에 대해 설명할 기회가 없다. 휠체어가 들어가도록 의자를 치워주세요. 물은 셀프인가요. 좀 가져다주세요. (손에 장애가 있으니) 젓가락 대신 포크를 주세요. 우리의 ‘예외성’을 고지하고,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수용해주는 식당에 앉아 밥을 먹을 때 우리는 밥의 자유를 더 깊이 느꼈던 것 같다. 예외성을 설명하고 이해받으며 밥 먹을 일이 없는 생활, 이는 더 편리하겠지만 모든 면에서 항상 더 좋은 사회의 징후일까?02

 

김원영 님은 국가인권위에서 일하다 지금은 박사 논문을 준비 중입니다. 휠체어를 타고 이용하지 않는 변호사 자격이 있습니다.

 

 

화면해설.

이 글에는 접시와 나이프, 포크와 여러 겹의 햄버거, 카오스크 그리고 휠체어 사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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