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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속의 칼 [2018.05] 된장의 재료는 명품 가방과 커피일까

편집부

 

‘된장녀’라는 단어가 유행어로 선정된 건 2006년의 일이다. 처음엔 경제적 활동 없이 과소비하는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였다고 설명하지만 어쨌거나 경제적 활동 없이 과소비하는 남성을 지칭하는 단어가 없었음을 생각하면 단어의 탄생부터 혐오가 배경인 셈이다.

 

명품 가방과 자동차, 젊은 여성과 남성의 사진이 있습니다

 

 

혐오하기 위한 혐오

 

실제로 아침 지하철 안에서 직장인으로 보이는 여성 중에 흔히 ‘명품’이라고 부르는 고가의 가방을 들고 있는 이를 보는 건 어렵지 않다. 물론 그 명품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10만 원대부터 많게는 수백만 원대까지. 하지만 남성이 메고 있는 가방도 마찬가지다. 수십만 원대의 백팩을 멘 남성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실 가방이 얼마짜리인지는 타인이 상관할 영역이 아니다. 몇천 원대의 가방이든, 명품 가방이든 본인의 선택에 따라 소비하는 것이니까.


문제는 이러한 전제 조건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경제 능력 혹은 경제관념 없이 명품을 소비하는데 가치 기준을 두고 있다’는 차별적인 고정관념이다. 이런 고정관념을 표현하기 위해 근거 없이 지어내는 말도 많다. 실제로 SNS나 인터넷 게시판에는 ‘애인이나 아내를 위해 명품백을 백화점에서 100만 원이나 주고 사야 했다’는 신세한탄이 종종 올라온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샤 *’ 브랜드의 핸드백은 아쉽게도 100만 원대로 구입할 수 없다. 중고나 모조품이면 모를까 백화점에는 100만 원으로는 지갑도 못 산다.


‘한 끼 밥값보다 더 비싼 커피’ 역시 된장녀 혐오의 근거로 10년이 넘게 사용되는 예다. 흔히 예로 드는 한 커피전문점의 경우,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이 4,100원이다. 각자 취향과 사정에 따라 더 저렴한 커피를 찾는 사람도 있고, 그 브랜드 커피의 맛과 향이 좋아서 찾는 사람도 있다. 이 역시 성별을 불문한 공통점이다. 99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4잔 마시느냐, 대신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한 잔을 마시느냐의 결정은 성별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이라는 이야기다.

 

가부장제는 변하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사회에서는 남성은 돈을 벌어오고 여성은 가사와 육아를 전담했다. 이것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소비하는 여성’이라는 개념의 기초가 되었다(가사 노동과 육아가 비경제활동이라는 주장 또한 잘못된 것이나 ‘경제활동’의 의미를 한정적으로만 정의함을 양해 바란다). 하지만 국토연구원 보고에 따르면 신혼 초 맞벌이 가구 비율은 87.2%에 이른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많아지면서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도 늘어난 것이다. 결론적으로 언어가 사회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인데, 문제는 이런 언어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바뀐 사회상을 고려할 의지가 없다는 데 있다.

 

바뀐 사회상은 또 있다. 최근 1인 가구가 늘면서 백화점의 남성 고객 비중이 늘고 있다고 한다. 남성용 명품, 보석이나 장신구의 판매가 전년 대비 10% 증가하며 남성 전문관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비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사치스러운’ 여성들, 즉 된장녀라는 말로 대변되던 소비 패턴에서 남성의 영역이 빠르게 커지고 있는 것이다. 남성이 명품을 사는 건 벌어서 쓰는 것이니 괜찮고, 여성이 벌어서 명품을 사는 건 된장적 소비일까? 수천만 원짜리 명품 시계를 사는 건 남성의 신분 과시이고 여성이 수백만 원짜리 가방을 사는 건 허영일까?


많은 경우, 말은 시대상을 반영하는 지표로 쓰여왔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있음에도 혐오 표현은 바뀌지 않는다. 된장녀라는 단어는 시대를 표현하는 말이 아니라 혐오 표현이다. 이 시대의 된장은 콩도, 커피도, 명품도 아닌 혐오가 만들고 있다.

 

화면해설.
이 글에는 명품 가방, 고급 승용차, 명품 시계, 구두, 비싼 커피, 달러 등의 사진이 있는 디자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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