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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사람 [2018.05] “총 말고 책” 말랄라 유사프자이

편집부

 

2018년 3월 28일(현지 시각),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고향인 파키스탄 땅을 밟았다. 탈레반 점령하의 파키스탄에서 아동과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를 외치다가 총격 피습을 당한 이후 6년 만이자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된 지 4년 만의 일이었다.

 

미소 짓고 있는 말랄라의 사진입니다

 

“탈레반이 내 교육권을 박탈했다”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1997년 7월 파키스탄 북부 스와트밸리에서 태어났다. “아들이 태어나면 축포를 쏘고 딸이 태어나면 커튼 뒤에 숨기는 나라” (1)에서 세상을 향한 첫울음을 터뜨린 그에게는 다행히도 교육·인권 운동가였던 아버지가 있었다. 차별 없는 교육을 중시하던 아버지 밑에서 그는 일찌감치 ‘될성부른 나무’로 자라났다.


“축제나 결혼식이 있어 헤나로 손을 장식할 때면 미적분이나 화학공식을 그려 넣는 것” (2) 즐기던 똑똑한 소녀에게 배움은 더없는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2008년 탈레반의 점령이 시작되자 여성의 교육이 금지되었고 그는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그해 유사프자이는 지역 프레스 클럽에서 “탈레반이 내 기본적인 교육권을 박탈했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다음 해인 2009년 1월 3일, 유사프자이는 영국 BBC의 우르두어 홈페이지에 익명 연재를 시작한다. 그는 탈레반 치하의 파키스탄에서 소녀들이 학교에서 사라지고 마침내 자신이 다니던 학교도 폐교되었음을 세계에 알렸다. 단 3개월의 연재였지만 반향은 거대했고, 마침내 ‘뉴욕타임즈’의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이어졌다. 신분이 노출되자 살해 위협이 따라왔다. 2012년,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유사프자이는 탈레반 무장대원의 총격을 받는다. 머리와 목, 어깨에 총상을 입은 그는 영국 버밍엄으로 이송되었고, 수차례의 수술 끝에 마침내 눈을 떴다..

 

여성·아동 교육의 상징이 되다

 

건강을 회복한 그는 ‘파키스탄으로 돌아오면 살해하겠다’는 탈레반의 위협에도 다시 아동과 여성의 교육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 지속적인 교육 사업을 위해 ‘말랄라 펀드’를 만들었고,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세계 정상을 만나 교육의 중요성을 호소했다.
2013년 ‘타임’지는 유사프자이를 표지에 올리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했다. 그리고 2014년, 그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유사프자이가 설립한 말랄라 펀드는 2015년 시리아 국경 근처에 난민학교를 세운 데 이어 올해 3월 스와트밸리에 여학교를 여는 데 기여했다.

 

그는 “총 말고책”을 강조하며 “한 명의 아이, 한 명의 교사, 한 권의 책, 한 개의 펜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역설했다. 지난 3월, 삼엄한 경호 속에 고향 땅을 밟은 뒤에도 그는 “파키스탄이 발전하려면 소녀들이 배워야 한다” (3)고 강조했다. 자유와 평등이 상식이라 이야기되는 세상임에도 여전히 누군가는 싸우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 여성·아동 교육의 상징이 된 말랄 유사프자이라는 이름은 바로 그 전선의 최선두에 놓여 있다.

 

(1) <나는 말랄라>, 말랄라 유사프자이·크리스티나 램, 문학동네, 2014.
(2) <내 이름은 말랄라>,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2016.
(3) “탈레반에 맞선 파키스탄 소녀…6년 만의 귀향”, MBC 뉴스데스크, 2018.04.01.

 

화면해설.
이 글에는 말라라 유사프자이 크리스티나 램 사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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