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 > 여는 글 > 여군은 여성인가, 군인인가

여는 글 [2021.08] 여군은 여성인가, 군인인가

글 천희란

 

여군은 여성인가, 군인인가

 

여군은 여성인가, 군인인가

 

다시, 자신의 꿈과 신념을 펼치기 위해 군인이 된 한 명의 여성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또다시 뒤늦게 사회 각계가 가해자와 사건을 묵인했던 군 관계자들의 엄벌을 요하며 상명하복의 조직문화나 폐쇄적인 군 시스템의 개혁을 요구한다. 비슷한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진전 없이 반복되는 요구를 잠시 접어두고 나는 묻고 싶다. 여군은 여성인가 군인인가.

 

이 질문은 멍청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여성과 군인은 서로 상충하지 않는 성 정체성과 직업 정체성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군대라는 조직을 배경으로 이동할 때, 당연한 사실은 가능성에 대한 질문으로 전도되고야 만다. 뛰어난 여성 군인에게 요구되는 군인의 덕목은 비단 건강한 신체와 행정적, 전술적 능력이 아닌, ‘남성 군인처럼’의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여성 군인에게서 ‘여성’의 정체성은 축소해야 할 가치가 된다.
반면 진급에서 배제될 때, 성폭력의 대상이 되는 순간에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그들이 지닌 ‘군인’으로서의 능력과 성취를 손쉽게 무마한다. 군대 내에서 성폭력을 경험하는 남성들이 여성적으로 대상화되는 것은 어떠한가.
다시 묻자. 여군이 여성이면서 동시에 군인일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소비에트 여성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낸다. 이는 남성 영웅의 서사로 기록되는 전쟁의 역사에서 지워진 여성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성취를 이루기도 했지만, 전쟁과 군대라는 세계를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데에서 더 큰 의의를 획득한다. 여기에 실린 증언들은 훌륭한 군인의 자질이 남성성 그 자체를 의미하지 않음을 명백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군대의 조직문화와 시스템에 대한 민주적인 혁신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필요한 일은 군대라는 조직을 구성해온 남성성에 대한 신화를 해체하는 일이다. 군인이 피치 못하게 예비할 수밖에 없는 전쟁의 폭력성이 남성성의 강인함과 무비판적으로 교차되는 지점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군대 내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폭력이 해결될 길은 요원하며, 끝내 진정한 의미의 여군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전 목록 다음 목록

다른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