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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동행 [2021.10] ② 강제수용 인권침해 피해자의 인권증진을 위해 애쓰며 나아가다

 

인권의학연구소의 ‘강제수용 인권침해 피해자 트라우마 현황과 인권증진에 대한 모니터링 사업’

 

1942년 소년 감화 목적으로 설립된 ‘선감학원’. 1975년 부랑아 단속 시설로 개설된 ‘형제복지원’. 1961년 사회 명량화 사업으로 운영된 ‘서산개척단’. 모두 군사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보호의 대상인 전쟁고아나 부랑아를 강제수용한 시설이다. 강제수용된 사람들은 시설 내에서 노동착취, 굶주림, 폭력 등을 당했다. 이들의 인권침해는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채 은폐되었고, 생존자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려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강제수용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치유방안을 마련할 필요성이 높아졌고, 인권의학연구소에서 ‘강제수용 인권침해 피해자 트라우마 현황과 인권증진에 대한 모니터링 사업’을 진행했다.

 

이화영 상임이사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통해 직접적인 목소리를 듣다

 

지난해 인권의학연구소는 국가인권위원회 인권단체 공동협력사업 일환으로 ‘강제수용 인권침해 피해자 트라우마 현황과 인권증진에 대한 모니터링 사업’을 추진했다. 사업은 설문조사, 심층 인터뷰, 현장조사를 순차적으로 진행했다. 설문조사는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실시되어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우울증, 불안 장애 등의 정신심리적 현황을 파악했다.

 

심층 인터뷰는 선감학원, 형제복지원, 서산개척단의 각각 피해자 5명을 선정하여 총 15명을 인터뷰했다. 인권침해 피해 내용, 자조모임을 통한 진상규명 노력, 공공기관의 조사와 지원책에 대한 만족도, 신체적 및 정신심리적 후유증 등을 알아보는데 중점을 뒀다. 마지막으로 현장조사는 강제수용시설이 위치해 있던 안산, 부산, 서산을 방문한 후 지역 공공기관의 지원책에 대한 피해자의 평가와 요구를 직접 확인했다. 이번 사업의 책임자인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 상임이사가 사업 참여 계기에 대해 밝혔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선감학원 아동인권침해사건 보고서’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보고서는 양적조사로 진행됐기 때문에 피해자의 후유증과 요구를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었고, 피해자의 트라우마 현황 조사와 트라우마 치유방안 마련을 강조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인권의학연구소는 피해자의 정신심리적 피해 현황과 현재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피해자 자조모임에 진상규명 활동들을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피해자의 삶의 지원과 재활을 위한 제도적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사회적 공감과 연대를 통한 인권증진 방안을 제안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목적으로 이번 ‘강제수용 인권침해 피해자 트라우마 현황과 인권증진에 대한 모니터링 사업’을 기획하고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화영 상임이사

 

경제적·심리적 피해 현황을 파악하다

 

이번 사업을 통해 피해자가 전 생애에 걸쳐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아동기에 강제수용시설에서 경험한 가혹한 폭력, 교육의 부재, 퇴소 이후 ‘부랑아’라는 낙인, 가족의 부재 등은 피해자가 성년기가 되어도 사람과의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사회 취약계층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심지어 피해자 중에는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폭력의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자기비난을 거듭하다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화영 상임이사가 피해자 현황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지난해 7월 강제수용 인권침해 생존자들과 유족을 대상으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 개정안 설명회가 열렸는데, 설명회에 앞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설문지를 작성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셨는데, 그 이유는 글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동기에 강제수용되어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피해자들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50~60대가 될 때까지 어느 누구도 피해자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이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인권의학연구소의 연구진은 피해자 요구에 맞추어 일상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지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피해 상황이 깊고 광범위해 트라우마 치유와 재활 지원 역시 지속적이며 광범위한 범위로 이뤄줘야 함을 확인했다. 안정된 주거 시설과 일자리 제공 등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존엄과 행복을 누려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렇듯 이번 사업의 유의미한 점은 피해자들의 직접적인 목소리와 의견을 들어 피해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인권의학연구소는 이번 사업으로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피해자 트라우마 치유와 재활을 위해 국가 손해배상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을 우리 사회에 전할 계획이다. 더불어 과거사위원회 조사과정에서의 재외상화 방지를 위한 조사관 교육의 필요성도 알리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이화영 상임이사는 “국가는 과거의 강제수용시설을 운영했고 사회공동체는 이를 침묵한 채 방관했다는 점에서 가해자이며 동시에 피해자 치유의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국가로부터 진실규명과 손해배상을 받을지라도, 편견과 낙인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피해자들은 다시 절망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조사가 조사로만 끝나지 않고, 변화를 이룰 수 있도록 공공단체들의 노력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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