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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에도 희망이 있다

[특집] 톺아보기 [2022.03] 국제인권레짐과 전쟁
전쟁 속에도 희망이 있다

글 박지현(영산대 법학과 교수)

박지현 영산대(와이즈유) 법학과 교수 겸 미국 뉴욕주 변호사는 한국인 최초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발간하는 학술지 《국제적십자리뷰(International Review of the Red Cross)》 편집위원으로 위촉되어 인류의 생명과 존엄성 보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부차 피해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_ 2022. 4. 7.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부차 피해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_ 2022. 4. 7.

 

러시아가 쏘아 올린 공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웅변가인 키케로는 “법은 전시에 침묵한다(Inter Arma Enim Silent Leges)”는 말을 남겼다. 전시에는 법이 지켜지지 않기도 하고, 지켜지지 않은 행위에 대해서도 침묵하는 현상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매일 SNS와 인터넷 매체를 통해 현장 소식이 전달되는 가운데, 국제법을 어긴 러시아에 제재를 이행하는 기업들, 한목소리로 우크라이나 지지와 지원을 선언하는 전 세계 많은 국가들이 평화와 정의를 무시하는 푸틴에 대해 침묵하지 않겠다는 행동의 시그널을 남기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국민 또한 항복 대신 국가를 지키겠다며 결전을 다짐하고 유엔헌장 제7장 제51조1)에 따른 자위권을 행사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유엔 회원국이고, 유엔 회원국에 대하여 무력공격이 발생한 경우 공격을 받는 국가는 국가의 고유한(Inherent) 권리로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우크라이나는 이렇게 개별적인 자위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인권레짐은 인권영역에서 국가 간 합의로 성립된 국제인권협약에 더해 묵시적으로 인정되는 국제적 기준과 관행까지 포함하여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자위권 행사는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 평화에 대한 위협, 침략행위에 대한 집단적 조치 그리고 평화의 파괴로 이어질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실현하기 위해 설립된 유엔의 회원국에 당연히 주어진 협약상의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무력행사에 대하여 국내에서는 자위권으로 방어하는 한편, 더 나아가 협약에 주어진 다양한 방어전략을 현명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한 것이며, 또 하나가 유엔 회원국의 총의를 이끌어낸 것인데, 유엔 회원국의 집단적 군사행동은 아니더라도 총회결의안 채택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모두는 이미 국제사회가 합의한 레짐이 적절하게 작용한 예라고 할 수 있다.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우크라이나는 2월 26일 오후 9시 30분 러시아를 1948년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살해)협약2) 위반으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했고, 이때 러시아 측의 군사행동에 대한 즉각적인 중단명령을 임시조치로 함께 청구했다. 러시아는 “동부 돈바스 분리독립지역에서 우크라이나가 대량학살을 자행하고 있으며, 이에 러시아는 평화를 지키기 위한 특별군사작전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3월 16일 국제사법재판소는 표결 결과 13:2로 러시아가 군사행동을 중지할 것과 자국의 통제 아래 있거나 지원을 받은 비정규군의 군사행동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임시조치를 명령했다.

 

유엔도 2월 25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철군을 요청하는 내용의 유엔안보리 결의안이 러시아의 비토권 행사로 채택되지 못하자, 긴급특별총회를 개최하여 찬성 141표, 반대 5표, 기권 35표로 동일한 내용의 총회결의안을 채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가 애써 지켜온 가치를 거짓 포장으로 무너뜨린 침략행위에 대해 ‘경제전쟁’이라 할 정도로 수많은 국가와 기업이 제재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이는 무너진 건물과 병원, 눈물 흘리는 아이들, 그리고 조국을 지키려 결연히 나선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행동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전파되면서 높아진 인권의식과 결합된 결과이다.

 

 

전쟁은 인권을 담는 시공간의 블랙홀

 

전쟁은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생명과 신체의 자유 및 안전의 권리를 침해한다. 측정 가능한 범위 내에서 침해의 정도가 가장 크며, 개인이 결정할 수 없는 범위와 예측할 수 없는 시나리오로 전개되기에 불안의 정도도 최고치이다. 하물며 아이들에게는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CNN 뉴스를 보다 가슴이 무너졌다. 한 손에는 초콜릿을, 다른 한 손에는 비닐봉지를 든 소년이 엉엉 울고 있었다. 울음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거리에 있는 사람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울면서 가다 서기를 반복하던 이 11살 우크라이나 소년이 혼자 걸어온 거리는 자포리자(Zaporizhzhia)에서부터 무려 1,000㎞. 소년의 손등에 적힌 숫자는 슬로바키아 국경에 도착한 후 연락해야 하는 친척의 전화번호였다. 어떤 부모가 겨우 11살짜리에게 전쟁 중인 도로를 걸어 친척 집까지 가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도 혼자. 이후 모두가 궁금했던 뒷이야기가 나왔는데, 소년의 엄마는 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혼자 두고 떠날 수 없었다고 한다. 다행히 소년은 엄마와 재회하여 많은 이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 사례에서 소년은 한 국가의 국민이기도 하고, 개인이기도 하며, 민간인이기도 하다. 인간을 국민이나 개인으로 보는 것이 인권적 관점이라면, 전투원과 전투원이 아닌 자, 즉 민간인으로 이분하여 판단하는 것이 국제인도법적인 관점이다. 전시에 이 두 분야는 상호 보완재로 작용한다.

 

전시의 경우 전투원과 민간인으로 이분, 구별하여 전투원은 공격의 대상이며 민간인은 보호의 대상으로 보장한다. 구별이 어려운 경우에는 민간인으로 간주하도록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거리를 걷고 있거나 자동차를 운전하는 이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민간인이 밀집한 곳은 군사 목표물이 될 수 없으며, 군사활동이 실제로 민간인 지역에서 일어나는 경우에 한하여 군사 목표물만을 공격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구별의 원칙이 국제사회가 1899년 제1차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확인한 마르텐스조항3)과 1949년 제네바협약4) 및 추가의정서의 내용이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 중 부차 지역 및 여러 도시에서 발견된 처형 형식으로 사망한 민간인이나 신체 일부가 잘린 민간인, 아동에 대한 고문은 제네바협약에서 보호하는 사람, 즉 민간인에 대하여 고의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거나 신체를 해치는 행위이다. 또한 군사상 필요로 정당화되지 않는 불법적이고 고의적인 광범위한 재산 파괴, 예를 들어 민간병원, 민간주거지, 한 도시를 무차별 폭격하여 쑥대밭으로 만드는 경우는 ‘중대한 위반행위’로 보는데,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5)는 이를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물론 민간인을 집단살해하거나 중대한 신체적 혹은 정신적 위해를 가하는 것은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는 ‘제노사이드’에도 해당하고, 동일하게 규정된 제노사이드협약상 ‘제노사이드’에도 해당한다. 다만, 러시아는 국제형사재판소협약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국제형사재판소가 아닌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 것이다. 물론 국제사회가 합의한다면 과거 사례인 뉘른베르크국제군사재판소, 도쿄국제군사재판소, 시에라리온특별재판소, 구(舊)유고국제형사재판소나 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처럼 특별재판소에서 이를 다룰 수도 있다. 또한 민간인 살해는 ‘생명권’을 박탈하는 행위이며, 민간인 고문은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로 인권협약의 위반사항이기도 하다.

 

유엔 인도지원조정국(OCHA)은 3월 말 현재 우크라이나 인구 약 4,300만 명 중 약 10분의 1인 490만 1,713명이 국경을 넘어 타 국가로 이주하여 국외 난민이 되었고, 거주지를 벗어나 피란 중인 국내 실향민도 650만 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이미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면서 발생한 1,500만 명의 국내 실향민은 별개로 한 것이다.

 

태어나고 자라며 희로애락을 함께한 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주요 이유는 미사일 공격으로 전기와 수도가 단절되고, 식량을 공급할 도로와 인프라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공격은 주요 도시를 향했고, 우리가 가장 먼저 접한 전쟁의 장면은 미사일 폭격을 받은 고층아파트였다. 이 장면은 민간인을 고의로 군사목표물화했다는 또 하나의 단서이다. 생존에 불가결한 식량, 식량생산에 필요한 농업지대, 수확물, 가축, 식수 시설 및 공급, 관개시설을 목표물로 하여 공격하거나 파괴, 이동하는 것은 제네바협약 위반이다.

 

관개시설이 파괴되어 이미 식수가 부족한 상황이고 건강 및 위생용품, 교육용품을 해외 지원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구호단체의 구호물품도 전달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구호물품을 막는 것은 “전투방법으로서 민간인의 기아작전은 금지6)된다”는 국제인도법과 기본적인 의식주를 누릴 권리를 규정한 국제인권레짐에서 벗어난 행위이다. 병원이 공격의 대상이 되고 산부인과가 미사일로 파괴되어 피를 흘리며 걸어 나오는 산모의 모습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남긴 또 하나의 상징적 장면이다. ‘어린이’라는 표식과 함께 대피소로 사용된 극장을 러시아 전투기가 공격한 것은 가장 비인간적이며 반인륜적인 행위이다. 모든 사람은 의식주와 의료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특히 인권의 이름으로 보장되는 모든 권리를 사치재로 만들어버렸다.

 

더욱이 전쟁 중 민간인이 대피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인도적 통로(Humanitarian Corridor)의 종착지를 러시아로 하는 것은 주민을 강제이동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안전이나 절대적인 군사적 이유가 아니면 민간인의 이동을 명령하여서는 안 된다”는 제네바협약과 “모든 사람은 자국을 포함하여 어떠한 나라를 떠날 권리와 또한 자국으로 돌아올 권리를 가진다”는 세계인권선언(제13조)의 약속에 대한 위반이다.

 

 

국제인권레짐과 전쟁

 

희망의 지지선, 인권의식

 

그러나 전쟁 속에도 희망은 있다. 그 희망은 높은 인권의식으로 무장한 국제사회의 시민 개개인이 보여주는 실천에서 발견된다. 국경을 넘은 국민에게는 기준에 따라 ‘난민’이라는 법적 지위가 부여되는데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몰도바 등에서 기존에 활동하던 국제기구 이외에도 지원물품과 기부금, 자원봉사자가 엄청난 수의 난민을 흡수하고 있다. 에어비앤비 결제 후 미방문이라든가 포인트 기부, 사이버해킹에 대한 단체방어 등 새로운 행동양식도 우크라이나인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1859년 앙리 뒤낭은 솔페리노의 참혹한 전장을 목도한 후 국적에 상관없이 전시 상병자들을 보호하자는 국제사회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사업가였던 그는 사망 당시 유품이 낡은 가방 하나가 전부였을 만큼 모든 재산을 인도주의를 발아시키는 데 쏟아부었다. 그의 노력과 희생이 인도주의와 중립의 상징인 적십자를 탄생시켰고, 무력충돌이 일어난 세계 곳곳에서 수없이 많은 생명을 구해왔으며, 지금도 구하고 있다.

 

1940년 펭귄출판사가 특별판으로 내놓은 영국 작가 H. G. 웰스의 『인간의 권리: 또는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The Rights of Man: or What are we fighting for?)』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전쟁의 목적에 대해 고민하면서 집필한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의 출발점이 된 《타임스》 기고문에는 10개의 문단으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인권선언’의 기초가 된 ‘인간의 권리선언(World Declaration of the Rights of Man)’이 첨부되어 있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가? 1859년과 1940년으로 시간이동을 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뜨겁게 느꼈던 천부인권을 바로 지금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뜨겁게 느끼고 있으며, 우리 또한 고양된 인권의식이 담긴 말과 글로 강력한 메시지를 러시아에 보내고 있다.

 

다만, 현재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분쟁이 109개, 분쟁까지는 아니지만 충돌과 대립 단계가 43개라는 점은 아직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들 분쟁과 충돌의 현장에서 누가 또 울고 있을 것인가? 법적 구속력이 없음에도 가장 신뢰받는 인권협약, 세계인권선언과 이후의 많은 인권협약은 커다란 돔을 형성하고 있다. 시민들은 지켜보고 있으며, 국제인권레짐은 가장 처참한 전쟁 속에서도 지지선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 세계 시민이 함께 그 지지선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이는 희망적인 메시지이다.

 

1) 안전보장이사회의 수권에 의한 무력사용과는 별도로 유엔헌장하에서 유일한 합법적 무력사용의 근거.
2)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Prevention and Punishment of the Crime of Genocide)으로, 인도적 범죄의 한 유형인 제노사이드를 전시뿐만 아니라 평시에도 금지한 최초의 국제협정. 1951년 1월 12일 시행.
3) 1899년 육전의 법 및 관습에 관한 협약 전문의 내용으로 “보다 완비된 전쟁법에 관한 법전이 제정되기까지는 체약국은 그들이 채택한 규칙에 포함되지 아니한 경우에 주민 및 교전자가 문명국 간에 수립된 관례, 인도의 법칙 및 공공양심의 요구로부터 유래하는 국제법원칙의 보호 및 지배하에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명시.
4) 1949년 8월 12일자로 채택된 4개의 협약을 의미하며, 육전에서의 군대의 부상자 및 병자의 상태 개선(제1협약), 해상에서의 군대의 부상자, 병자 및 조난자의 상태 개선(제2협약), 포로의 대우(제3협약), 전시의 민간인 보호(제4협약) 등으로 구성. 1950년 10월 21일 시행.
5) 인권의 비약적인 규범적 도약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는 전시의 인권 파괴행위에 대한 침묵을 깨고 국가원수를 기소하기 위한 노력이 모여, 1998년 유엔전권외교회의(일명 로마회의)에서 ‘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을 채택하고 2002년 7월 1일 발효와 함께 활동을 시작.
6) 민간인의 생존에 불가결한 물건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 제네바협약 제1추가의정서 제54조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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