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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라도 마음 놓고 웃을 수 있기를”

[특집] 마주듣기 [2022.03]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을 향한 손길
“잠시라도 마음 놓고 웃을 수 있기를”

글·사진 김혜윤(한겨레 기자)

김혜윤 기자는 한국전쟁 69주년을 맞은 2019년 6월 25일 한겨레신문에 공채로 입사해 사진부 사진뉴스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첫 국외 출장으로 떠난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더더욱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평화를 기원하는 폴란드 바르소타워 불빛 _ 2022. 3. 12.
우크라이나 평화를 기원하는 폴란드 바르소타워 불빛 _ 2022. 3. 12.

 

 

우크라이나 난민을 비추는 폴란드 바르소타워

 

흔히들 말한다, 바르샤바는 회색도시라고. 하지만 2월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부터 바르샤바의 색은 회색이 아닌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쇼핑몰 전광판에도, 1층 상점들에도, 관공서 들머리에도, 건물 옥상 광고판에도 노랑과 파랑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전철역 지하통로에도 회색 복도를 밝히는 노랑과 파랑이 있다. 문화과학궁전의 한 창문에도 노란색과 파란색 하트가 함께 붙어 있다. 한 가구점은 수익의 10%를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는 데 사용하겠다는 안내문을 우크라이나 국기와 함께 가게에 붙여놓았다.

 

폴란드 바르샤바에 어둠이 드리우면 바르소타워 고층부 6개 층에 노란 불이, 5개 층에 파란 불이 들어와 우크라이나 국기 모양을 이룬다. 폴란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바르소타워 운영사인 HB Reavis Poland는 2월 28일부터 헝가리 ‘아고라 부다페스트’, 슬로바키아 ‘니비타워’와 함께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지지한다는 의미로 이와 같은 행사를 열고 있다고 누리집을 통해 발표했다. 세 건물 모두 각 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인권을 말살하는 전쟁에 굽히지 않으며 하늘을 향해 굳건히 서 있겠다’는 뜻으로 이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폴란드 바르샤바 서부 버스터미널 로비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은 사람들에게 오래 머물 공간 및 직업소개 등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_ 2022. 3. 16.
폴란드 바르샤바 서부 버스터미널 로비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은 사람들에게 오래 머물 공간 및 직업소개 등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_ 2022. 3. 16.

 

폴란드사서협회, ‘우크라이나의 사서들과 함께’ 캠페인 펼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폴란드는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은 아이들은 우리로 치면 주민등록번호 혹은 외국인등록번호에 해당하는 페셀(PESEL)이 없어도 폴란드 초등학교에 등록할 수 있다. 지난 3월 16일부터 폴란드 정부는 우크라이나 난민 모두에게 페셀을 발급하고 있다. 정부는 발급신청 첫째 날과 둘째 날인 16일과 17일에는 신청을 자제해 달라고 발표했는데, 페셀 발급 시스템이 아직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발표 내용에 “아이들은 페셀이 없어도 학교에 등록할 수 있다”는 문장을 덧붙여 전쟁을 피해 국경을 넘은 난민 학부모들을 안심시켰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가까운 지역 중 하나인 프셰미실의 한 초등학교는 전쟁이 일어나기 시작한 2월 24일부터 교문을 활짝 열었다. 원래는 한 반의 정원이 15명이었지만 정원을 늘렸다. 현재 한 반에 30명까지 수용하며 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전쟁 이후 이 학교에 입학한 우크라이나 학생은 모두 180명이다. 모든 교사가 우크라이나어를 구사할 수 있어서 수업은 같은 내용을 폴란드어와 우크라이나어로 설명한다. 그뿐만 아니라 전쟁 탓에 정신적으로 불안한 아이들을 위해 심리치료를 지원하고, 도시락과 책가방도 지원해 준다. 이 모두가 교육은 매우 중요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되어야 한다는 교직원들의 철학 덕분이다. 프셰미실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이런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학교는 현재 총 5곳이다.

 

아이들의 교육에 신경 쓰는 곳은 학교뿐만이 아니다. 프셰미실 시청 들머리를 포함하여 시내 곳곳에는 공공도서관 1층에서 우크라이나 아이들에게 장난감과 책 등을 빌려준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도서관 건물 1층 오른편에 마련된 난민 어린이 전용공간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신문을 읽는 열람실이자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안내소였다. 그러다 3월 7일, 공공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사서들이 폴란드사서협회가 진행하는 ‘#ZbibliotekarzamiUkrainy(우크라이나의 사서들과 함께)’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도서관에 아동·청소년용 동화, 시, 만화, 이야기 등 우크라이나어로 된 책을 비치해 두었다. 이들은 국경을 넘은 우크라이나인들을 돕고, 그들이 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 싶어서 이러한 캠페인에 동참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프셰미실 공공도서관에서는 책뿐만 아니라 퍼즐, 보드게임 등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장난감과 색칠공부 책, 그리고 크레용, 필통, 연필, 지우개, 종이 등 미술용품을 기부받고 있다. 난민쉼터에서 난민 어린이 전용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곳을 찾은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다.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다 갈 수도 있고, 쉼터나 머물 곳으로 돌아갈 때 책 혹은 색칠공부 등 이곳에 마련된 교재나 교구를 가지고 갈 수도 있다. 실제로 이곳을 찾은 3월 14일, 담당 사서 아가타(55)는 사흘 전에 폴란드 시민들이 두고 간 기부물품을 보여주었다. 쇼핑백에 들어 있던 필통 5개 안에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연필과 색연필, 지우개 등 필기구가 가득했다. 기부물품을 가지고 온 사람 중에는 이곳을 찾을 아이들을 위해 기저귀를 두고 간 이도 있었다. 프셰미실 공공도서관은 원래 월요일에 문을 닫지만, 이곳은 월요일에도 오후 12시부터 3시까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다른 요일에는 공공도서관 이용시간과 같은 시간 동안 운영된다. 이곳에서 어른들은 컴퓨터, 인터넷, 프린터, 복사기 및 스캐너를 무료로 이용하며 커피 등 음료를 마실 수 있다.

 

 

폴란드 프셰미실 제2 초·중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교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_ 2022. 3. 15.
폴란드 프셰미실 제2 초·중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교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_ 2022. 3. 15.

 

난민을 돕기 위해 폴란드로 온 각국의 자원봉사자들

 

프셰미실뿐만 아니라 국경 검문소가 있는 메디카, 코르초바 그리고 수도인 바르샤바에 마련된 난민쉼터를 지키는 사람들은 빨간색 혹은 노란색 조끼를 입고 있다. 이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은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언어를 적어두었다. 우크라이나어는 물론이고 독일어와 영어 등도 적혀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본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면 대신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라도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은 이들을 어떻게든 도와준다. 직접 만든 음식을 들고 와 굶주린 이들에게 배식하기도 한다. 가족과 함께 쉼터에 온 아이들에게는 인형을 건네며 긴장을 풀도록 도와준다.

 

조끼를 입고 난민쉼터를 지키는 자원봉사자의 국적은 다양하다. 독일, 이탈리아 등 인근 국가에서 대부분 일주일 넘게 자원봉사를 하러 폴란드에 왔다. 그리고 온종일 전쟁을 피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은 이들을 위해 일한다. 자원봉사자들은 ‘KOREA’에서 왔다는 말에 ‘North(북한)’인지 ‘South(남한)’인지 물어보며 “‘North(북한)’이면 대화하기 곤란하다”는 농담을 던지다가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하면 곧바로 진지하게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바르샤바 서부 버스터미널에 마련된 쉼터에서는 빨간색 혹은 노란색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은 피란민들에게 직업도 알선해 주고, 오랜 시간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알아봐 주기도 한다. 바르샤바 중앙역과 프셰미실역 등 많은 난민쉼터에 여성·아동 전용공간이 마련돼 있다. 하루아침에 전쟁을 피해 평생 살던 곳을 떠나, 긴 여정 끝에 쉼터에 온 피란민들이 조금이나마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든 공간이다. 쉼터 앞에는 여성과 아동만 들어갈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고, 자원봉사자나 경찰들이 앞을 지키고 서서 들어가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다.

 

바르샤바 시청의 누리집에는 3월 4일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은 사람들을 위한 물품 기부를 받는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공지에는 기부할 물품과 물품 접수장소 등이 안내되어 있다. 상비약, 세면도구, 생수 등 일반 생필품과 커피나 빵, 에너지바 등 유통기간이 긴 음식 외에 분유, 기저귀, 기저귀 발진용 크림, 젖병, 생리대 등 아이와 여성을 위한 물품 목록이 따로 적혀 있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쉼터에 머무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고 손에서 놓지 못하는 물건이 있다. 바로 휴대전화이다. 폴란드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피란민 중에는 남편이나 남동생 등 참전한 가족이 SNS에 접속한 기록을 보고 생사를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충전기를 여럿 꽂을 수 있는 멀티탭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다. 그런 마음을 아는 듯, 난민쉼터에서 유심을 무료로 나눠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동차 안에서, 쉼터에서, 혹은 별도로 부스를 마련해서 나눠준다. 개인적으로 유심을 편의점 등에서 구입하여 나눠주기도 하고, 한 이동통신업체 직원들이 직접 나눠주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여성·아동 전용 난민 쉼터가 마련된 폴란드 프셰미실 우크라이나 문화예술 박물관 2층 로비에는 우크라이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라디오 주파수와 중국어 통역을 제공해준다는 안내문 그리고 방을 제공해준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_ 2022. 3. 9.
우크라이나 여성·아동 전용 난민 쉼터가 마련된 폴란드 프셰미실 우크라이나 문화예술 박물관 2층 로비에는 우크라이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라디오 주파수와 중국어 통역을 제공해준다는 안내문 그리고 방을 제공해준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_ 2022. 3. 9.

 

그 어디에서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전쟁이 일어난 이웃 나라에서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와주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옆 나라와 사이가 좋지 않은 동북아시아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이들을 보며 신기하기도 했고, 나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와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집에, 자동차에, 자기 상점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걸고, 비행기를 타고 와서 일주일 넘게 온종일 난민을 도와주는 온정 넘치는 모습을 2주 동안 지켜보며, 저절로 인류애가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지금도 폴란드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서 피란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그들을 응원하며, 다시는 그 어디에서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폴란드 남동부 프셰미실 중앙역에서 무료 음식을 배식받는 한 여성이 지급받은 유심과 생리대를 들고 있다. _ 2022. 3. 7.
폴란드 남동부 프셰미실 중앙역에서 무료 음식을 배식받는 한 여성이 지급받은 유심과 생리대를 들고 있다. _ 2022.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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