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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슈 [2022.06] 인권조례와 인권행정, 무관심과 혐오를 넘어 진짜로 하자

글 이진숙(충남인권교육활동가모임 부뜰 활동가)

 

4년 전인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충남도의회 다수당이었던 정당의 소속 의원들은 시민사회의 반대와 인권위의 반대 의견 표명에도 불구하고 인권조례를 폐지했다. 그 과정에서 보편적 인권은 사회적 합의의 대상이 아님에도, 선택적으로 가릴 수 있는 것 인양 ‘나쁜 인권, 바른 인권’ 주장이 등장했고,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쏟아졌었다. 조례 폐지에 대한 주민들의 선택이었을까. 이어진 선거에서 인권조례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정당이 다수당이 되었고, ‘충청남도 인권 기본 조례’는 ‘인권기본조례’로 새롭게 제정되었다. 그 후, 최근 지방선거에서 인권조례는 얼마나 주목받았을까? 지역민의 인권 보장을 위한 것이니만큼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을까? 아쉽게도 지자체 인권조례는 선거의 주요 이슈가 아니었다. 다만, 서울과 충남의 일부 교육감 후보자가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겠다고 주장하였다가 낙선하였고, 교육감을 포함하여 지방선거 당선자 중 그 누구도 인권조례를 폐지하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경우가 보도된 바는 없었다.


 

이제 인권조례는 대놓고 폐지를 주장하지는 못할 만큼 시민의 상식으로 수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인권조례는 과연 얼마만큼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을까? 어떻게 행정을 변화시키고 주민의 삶에 영향을 미쳤을까? 2012년 인권위가 인권조례 제정을 권고한 이후 10여 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의 성과와 한계를 검토하며, 누구나 인권을 누리는 지역공동체를 위하여 인권조례와 인권행정이 나아갈 방향을 살펴본다.

 

 

1. ‘인권기본조례 표준안’ 제정 권고의 배경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 인권이라고 할 때 시민의 일상에서 인권이 보장된다는 것은,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삶이 이뤄지는 ‘지금, 여기, 지역’에서 인권이 보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권위는 ‘인권의 지역화’를 위해 ‘인권기본조례 표준안’을 권고하였는데, 이는 국가 단위의 인권 보장 체제에서 한 발 나아가, 지역사회에 인권 보장을 위한 체제를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지역민 모두가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일상에서 권리를 누리는 지역공동체를 위해, 보편적인 인권이 지역에서 실현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2. ‘인권기본조례 표준안’이 담고 있는 내용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헌법에 규정함에 따라, 지자체도 마찬가지로 주민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인권(기본)조례는 지방자치단체(지방정부)가 지역민의 인권을 보장할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인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지역민은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관할구역 내 있는 체류자, 사업장 노동자를 포함함으로써 인권의 보편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조례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 각 호와 같다.
1.
“인권”이란 「대한민국헌법」 및 법률에서 보장하거나 대한민국이 가입·비준한 국제인권조약 및 국제관습법에서 인정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말한다.
2.
“도민”이란 충청남도(이하 “도”라 한다)에 주소를 가지거나 거주를 목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사람 및 도 소재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노동하는 사람을 말한다.

‘충청남도 인권 기본 조례’ 제1장 총칙 제2조(정의)

 

인권보장 책무를 이행하기 위해 지방정부는 ‘인권기본계획’을 수립·집행하고, 인권행정에 대한 심의 자문기구로 인권위원회와 권리구제기구를 설치·운영하고, 인권교육을 추진하며, 인권조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권전담 부서를 설치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3. 인권조례 제정 현황

 

2022년 6월 1일 현재 국가법령정보센터 조회 결과, 전국의 17개 광역지자체엔 모두 인권조례가 제정되어 있으나, 226개 기초지자체 중에서 제정된 곳은 딱 절반인 114곳뿐이다. 광역과 기초 모두 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은 광주, 울산, 충남이었고, 인권조례와 함께 시행규칙까지 제정한 광역지자체는 서울, 인천, 광주, 울산, 경기, 강원, 전북, 전남에 그치고 있다. 시행규칙이 마련되지 않으면 실질적인 사업추진이 어려워 인권조례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주민 생활과 밀접한 기초지자체의 절반에서 아예 인권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배경은 무엇일까? 보편적 인권의 지역적 보장을 위한 제도화에 대한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 무지와 무관심, 일부 종교계의 성소수자 혐오, 이미 인권조례가 제정되었으나 시민의 체감효과가 크지 않다 보니 조례 제정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전국 지자체 인권조례 제정 현황(국가법령정보센터, 2022. 6. 1. 현재)
전국 지자체 인권조례 제정 현황(국가법령정보센터, 2022. 6. 1. 현재)

 

‘충청남도 인권 기본 조례’ 폐지 규탄 기자회견 . 2018. 2. 1.(제공:충남시민사회 단체)
‘충청남도 인권 기본 조례’ 폐지 규탄 기자회견 . 2018. 2. 1.(제공:충남시민사회 단체)

 

4. 인권조례의 성과

 

행정과 주민의 삶은 인권조례가 있어 어떻게 변화했을까? 조례에 따른 운영 사례를 살펴보면 의미 있는 변화도 있다.

 

○ 서울시 인권위원회의 ‘외국인 노동자 코로나19 진단검사 행정명령에 대한 권고’
2021년 3월 서울시 인권위원회는 서울시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진단검사를 행정명령으로 진행하자, 외국인 노동자를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한 것으로 보고, 노동자의 국적 여하에 관계없이 비차별적인 내용으로 수정 변경할 것과 향후 이와 같은 차별 및 인권침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할 것을 권고하였다. 서울시는 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행정명령을 변경하여 권고하였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험은 국적을 가리지 않음에도 국적을 이유로 한 차별적 행정이 인권위원회의 권고로 바뀐 것이다. ‘서울’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지자체 행정의 모든 영역에서 인권침해와 차별이 발생하는지 점검하고, 인권침해를 예방하도록 권고하는 지역 인권위원회의 역할이 잘 드러난 사례라 할 수 있다.

 

○ 부산시 인권위원회 정책 권고
부산시 인권위원회는 위원들의 인권 의제 발굴과 개선을 위한 헌신적인 노력이 뒷받침된 ‘정책권고’ 를 하고 있다. 2021년 8월에 ‘형제복지원 피해자 명예회복과 지원체계 강화’에 대한 첫 번째 정책권고가 있었고, 이후 2022년 1월엔 ‘홈리스 인권보장’을 위한 2호 정책권고,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5월엔 ‘교통약자 보행권 보장’, ‘장애인이 쉽게 투표할 수 있는 투표소 정비’ 정책 권고를 하였다. 부산시 인권위의 정책 권고는 시민의 현실에 대한 조사와 분석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마련하여 제시하는 권고라는 점에서, 지역 인권위원회의 활동이 지역민의 인권 보장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부산시는 인권위의 투표소 개선 권고를 받아들여, 2층 이상의 투표소에 승강기가 없는 경우 1층에 임시 기표소를 설치하고, 경사로를 마련했으며, 부산 장애인콜택시 ‘두리발’을 선거일 무료 운영하는 등 즉각 권고를 이행했다. 모든 권고가 즉각 이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부산시 인권위의 “헌법과 인권기본조례에 따라 인간의 존엄에 근거한 주민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노력은 결코 작지 않은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 수원시 인권센터, ‘공공수영장 이용에 있어 성별에 따른 차별’을 비롯한 제도개선 권고 등
수원시 인권센터는 2020년 6월 기초지자체로는 유일하게 두 번째 결정례집을 발간했다. 결정례집에는 ‘공공수영장 이용에 있어 성별에 따른 차별’을 비롯한 제도개선 권고, ‘민원인의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인권침해’, ‘시 수탁기관에서의 인권침해’, ‘상급자의 인격권 침해 등’ 의 결정문이 수록됐다. 인권센터는 시와 소속기관, 출자·출연기관, 시의 지원을 받는 시설·단체에서 업무수행과 관련해 발생한 인권침해 사건을 독립적으로 조사할 수 있고, 인권침해로 판단하면 대상기관에 시정을 권고할 수 있다. 수원시 인권센터는 “장안구민회관 내 수영장에서 오전에 남성의 수영장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시민의 진정을 받고, 이를 조사한 후 “수영장 이용자 중 특정 시간대에 특정 성별이 소수라 하여 이들을 달리 대우할 합리적 근거가 없으므로” 개선을 권고하였다. 인권에 바탕을 둔 자치행정은 공무원의 적극적인 노력, 시민의 관심과 참여, 지역 인권기구의 역할이 함께 필요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공공건축물인 ‘지동행정복지센터’를 설계부터 건축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인권영향평가를 하여, ‘BF(배리어프리/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과 ‘유니버셜 디자인’(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적 디자인)을 적용하여 개청하기도 하였다.

 

 

5. 인권조례와 제도화의 한계, 지역민 인권 보장의 걸림돌

 

인권조례 제정 현황, 전담부서 설치, 인권위원회의 역할, 인권기본계획의 수립과 이행, 인권 침해 구제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피면 여전히 대부분의 지자체 인권 행정은 더디게 가고 있다. 충남도는 인권조례 폐지 이후 새롭게 조례를 제정하였고, 도내 15개 시군에 모두 인권 조례가 제정되어 있으나, 실제 인권위원회가 구성된 곳은 아산시, 당진시, 공주시, 부여군, 서산시, 보령시 등 6개 지자체에 불과하다.1) 충남도의 인권침해 상담 및 권리구제기구인 충남인권센터는 결정례를 공개하지 않으며, 공무원과 시민 인권교육도 실행이 미진하다.

 

인권행정이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행정이 인권행정이어야 함은 헌법의 명령임에도 현실은 아직도 멀기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는 시작은 있으나 거기서 멈춰있기 때문이다. 현재 인권조례에는 알맹이가 빠져있다. 인권행정이 단체장이 누구냐에 따라 좌우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인권기구’ 설치가 핵심이다. 지자체 행정을 살피고, 인권침해를 예방하며, 주민 인권역량을 강화하려면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인권기구가 필요하다. 국가인권기구로 국가인권위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지역엔 독립적인 지역인권기구(지역인권위원회)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지역인권위원회는 모두 심의·자문기구에 불과하다. 독립적인 지역인권기구 설치 방안으로 지역인권위원회를 합의제 행정기구로 설치하자는 제안이 그동안 수차례 제시되었으나 시도하는 지자체는 아직 없다.

 

인권기구는 인권을 침해당한 사람이 기대는 버팀 막이다. 인권기구는 사법기관이 아니므로 처벌하지 않는다. 인권기구는 자문과 권고 등으로 해당 공동체가 스스로 인권역량을 갖추어 가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맡는다. 국가인권위에서 인권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교육을 통한 자력화가 인권기구의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인권기구를 가질 권리는 인권을 실현하는 권리다. 모든 사람은 가까운 지역 인권기구를 가질 권리가 있다.

 

충청남도 15개 시·군의 인권보장 체계 구축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 _ 2020. 4. 28.(제공:충청남도 인권위원회)
충청남도 15개 시·군의 인권보장 체계 구축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 _ 2020. 4. 28.(제공:충청남도 인권위원회)

 

6. 주민 삶 가까이에 인권조례, 인권행정

 

2020년 2월, 충남인권위는 위원장 입장문2)을 발표하였는데, 우연히 도청 앞 천막농성장을 본 것이 시작이었다. 입장문은 서산의 산업폐기물매립장 문제와 관련해 주민대책위원장의 단식이 길어지고 있어, 도지사가 적극적으로 상황을 중재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지역주민들은 충남인권위원회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며, 관심을 가져 고맙다고 하였다. 우연한 계기로 지역민의 인권 현실에 연결할 수 있었다는 점이 지역 인권제도의 현실을 보여준다.

 

지역민의 인권 현실은 매우 복잡하다. 한국사회 문제가 곧 지역사회의 인권 문제다. 이주 배경 등 미등록 아동의 인권, 이주노동자의 무권리, 기후위기로 인한 재해, 탄소중립을 위한 산업 전환과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의 불안정 노동, 성소수자 혐오, 장애인 권리 등 국가 차원의 인권정책이 미비한 현실이 지역민의 삶의 현장이다. 인권조례가, 인권행정이 여기에 필요하다. 그럴듯한 말만 무성한, 인권기본계획과 정책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권리가 필요한 사람들의 곁에 인권제도가 기능해야 한다. 차별금지법(평등법)이 없고, 상위법이 제정되지 못해 지역인권 제도화의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3) 그러나 자치를 통해 인권이 나아간 현실도 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학생인권법 제정으로 나아가고 있다.

 

국제인권조약, 헌법, 인권위법,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역민의 인권 보장을 위한 실질적 규범을 제정하고 실효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가능하며, 매우 절박한 과제다. 곳곳에서 인권조례를 현실에서 작동시키려 애쓰는 이들, 인권옹호자 모두에게 응원을 보내며 특히, 인권위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한다. 국가인권기구로서 인권위는 지역인권보장을 위한 비전과 계획을 가져야 한다. ‘인권기본조례 표준안’의 갱신을 포함하여!

 

 

1) 충남인권위원회는 기초지자체 인권제도의 개선을 권고한 바 있으나, 이후 지속적인 점검을 하지는 못함.
2) 이재환 기자, 『양승조 충남지사, 서산 산폐장 주민 단식 중단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오마이뉴스, 2020. 2. 28. “폐기물 처리 문제는 환경정의와 인권보장의 원칙에 부합해야 한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환경편익과 환경위험을 공평하게 부담하고, 개발과 보전 관련 정책의 시행에서 공정한 대우를 받으며, 그 과정에서 의미 있는 참여의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 폐기물시설촉진법에 따라 설치되는 산업단지 내 폐기물 매립시설에 산업단지 내에서 발생하는 폐기물만 매립토록 하는 것은 주민의 환경권과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자치행정이며, 감사원이 폐기물관리법을 경직되게 해석하고 적용해 결과적으로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자치정부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한 것에 매우 유감을 표한다.”(충남인권위원회)
3) 전국 광역지자체인권위원회 협의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이진숙 충남인권교육활동가모임 ‘부뜰’ 상임활동가는 충남인권위원장을 지냈고, 현재는 국가인권위 지역인권전문위원, 육군 인권자문위원, 충남연구원 인권경영위원장으로서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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