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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슈 [2022.06]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들어줄 때

글 이호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상임활동가)

동성애를 주제로 한 미국 청소년 문학 작가들의 단편소설을 엮은 『앰 아이 블루?』 소설집의 표제작인 브루스 코빌의 <앰 아이 블루?>는 ‘성소수자가 파란색으로 물들어 개개인의 성소수자 정체성을 눈으로 볼 수 있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흥미로운 상상을 풀어낸다. 학교에서 ‘호모 자식’이라고 괴롭힘을 받던 소년 빈스는 혐오폭력으로 세상을 떠난 요정 대부 멜빈의 마법으로 자신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파란빛으로 빛나는 세상을 보게 되고, 세상 모든 이들이 그 파란빛을 볼 수 있도록 만든다. 그리고 생각한다.

 

“세상은 이제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라고, “절대로!” 아쉽게도 성소수자 정체성은 파란빛을 내뿜지 않기에, 일상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성소수자의 존재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국외의 연구에 따르면, 전체인구의 약 4.5%는 성소수자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 20명 중의 1명은 성소수자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를 한국의 인구에 대입해 보면 약 233만 명 정도이다. 이는 대구광역시의 인구수에 육박한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로 자신을 드러내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차별금지법안 23개 차별금지사유
색칠하기 프로그램 ‘평등의 조각을 맞춰라’ 행사 _ 2022. 4. 21.(제공: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차별금지법안 23개 차별금지사유 색칠하기 프로그램 ‘평등의 조각을 맞춰라’ 행사 _ 2022. 4. 21.(제공: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는 왜 한국에서 살기 어려운가?

 

여전히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가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2021년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집단 구성원 포용-성적 소수자’에 관한 설문조사 전체 참여자의 54.1%가 성소수자를 이웃이나 직장동료, 절친한 친구 등 어떤 사회적 관계로도 받아드릴 수 없다고 응답했다. 같은 문항에서 외국인 이민자나 노동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응답이 12.9%, 장애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응답이 3.1%임을 고려할 때, 한국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 중 성소수자에 대한 배제적인 인식이 특히 높음을 알 수 있다.

 

성소수자들은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통해, 성소수자를 농담거리로 삼거나 그 존재를 고려하지 않는 일상의 대화를 통해 피부로 체감할 수밖에 없다. 시민의 의식만이 문제가 아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제도적 차별과 배제가 공고한 현실을 떠올리자면, 오히려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시민의 성소수자에 대한 의식은 국가와 정치보다 앞서 있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한국은 여전히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인 사이의 상호 합의한 동성 간 성관계를 처벌하는 군 형법상 추행죄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차별금지사유에 포함한 차별금지법(평등법)은 46일간의 단식투쟁과 국회 앞 농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제정이 요원한 상태다.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맞게 법적 성별을 바꾸기 위해서는 엄격한, 그마저도 법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아 개별 법원의 판단에 맡겨져 있는 요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그중에는 현재 혼인 중이 아니어야 하고, 미성년 자녀가 없어야 하는 등 트랜스젠더가 가족을 구성하고 살아갈 권리를 침해하는 내용과 생식능력 제거와 같은 국제인권규범상 고문이자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판단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동성혼이 인정되지 않는 이 사회에서 수많은 성소수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법적 성별이 자신과 같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부여되는 사회적 안전망 바깥에서 부부로서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회의 크고 작은 변화가 쌓이며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는 올해로 25주년을 맞이했고, 내가 행성인에서 활동한 것도 10년이 되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 성소수자 인권 변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성소수자 인권 의제에 대한 시민의 의식은 지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갤럽코리아에 따르면 동성혼 법제화에 대한 지지는 2001년 17%에서 2021년 38%로 두 배가 넘게 높아졌다. 올해 4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한 <2022 평등에 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67.2%의 시민이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성소수자에 대한 제도적 차별에 관한 법원의 의미 있는 판결도 있다.

 

2016년 이후 성기성형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을 허가하는 하급심 판결이 꾸준히 쌓이고 있다. 올해 4월에는 군대 바깥의 사적인 공간에서 합의 하에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로 기소 된 군인에 대해 군 형법상 추행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사회의 크고 작은 변화가 쌓이며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사회적 혐오와 차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드러내고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성소수자와 그 가족, 지지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성소수자가 일상의 모든 공간에서 ‘파란빛’을 내뿜으며 살아가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25년 동안 학교 등 일상의 공간에서 모임을 만들고, 성소수자 문화행사와 퀴어문화축제, 집회와 행진에 함께 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성소수자들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2014년, 성소수자인 자녀를 둔 어머니 세 분으로 시작한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이제 다양한 성소수자 인권의 현장에서 누구보다 큰 목소리를 내는 든든한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2022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행진 _ 2022. 5. 14.
(제공: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2022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행진 _ 2022. 5. 14. (제공: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함께 성소수자의 존엄과 평등 지지하길

 

매년 5월 17일은 국제보건기구의 질병분류목록에서 동성애가 삭제된 것을 기념하는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다. 지난 5월 14일, ‘싸우는 몸, 분노의 외침, 권리의 연대’라는 슬로건으로 이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용산역 광장에서 열렸고, 참여자들은 대통령 집무실 앞을 지나 이태원 광장까지 행진을 진행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과 문화, 법 제도가 사라지고, 성소수자가 이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으로 온전히 인식되는 사회를 만들 때까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하지만, 성소수자의 온전한 삶을 위해 싸우는 몸, 혐오와 차별에 대항하는 분노의 외침, 다양한 정체성으로 평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이들의 연대를 바탕으로 성소수자들은 변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모든 존재의 존엄과 평등을 지지하는 다양한 이들이 그 여정에 함께 하기를 바란다.

 

이호림 활동가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상임활동가,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집행위원으로 성소수자가 평등하게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성소수자 건강을 연구하는 연구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오롯한 당신-트랜스젠더, 차별과 건강』(공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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