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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동행 [2022.07] 일상에서의 노인 폄하, 노인학대로 이어진다

 

“‘노인학대 신고는 참견이 아닌 도움이다’는 노인학대 예방 캠페인 슬로건처럼 노인에 대한 주변 이웃의 관심이 절실하며, 노인 스스로도 인권의식을 함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이현민 관장)
노인학대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노인학대 예방과 문제해결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서울특별시서부노인보호전문기관 이현민 관장을 만나 노인학대 실태와 노인인권 보호대책에 대해 들어보았다.

 

서울특별시 서부노인보호 전문기관 이현민 관장

 

유해정 관장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노인보호와 노인인권에 관심을 두게 되셨어요?

 

이현민 첫 사회생활을 충청북도 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 시작했어요. 그때, 노인학대 용어를 처음 알게 되었죠. 15년 전에는 노인학대 등 노인과 관련 이슈가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할 때였습니다. 2004년에 「노인복지법」이 개정되면서 노인학대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어디까지나 법률적인 용어일 뿐이었죠. 당시에는 노인학대와 관련한 일을 행정적으로 뒷받침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첫 직장에서 노인 관련 일을 많이 겪다 보니까 노인학대를 포함한 노인인권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많이 두게 되었습니다.

 

 

유해정 관장님이 몸담고 계신 노인보호전문기관은 노인학대와 관련해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이현민 노인보호전문기관은 노인복지법상으로 보면 노인복지기관, 사회복지법상으로 보면 사회복지기관입니다. 노인인권 보호를 위해 예방적으로는 노인학대 예방교육, 인권교육, 인식개선 활동 등을 합니다. 학대사건이 발생하면 조사하거나 계획을 세우고, 지원하죠. 하지만 경찰 수사하고는 다릅니다. 조사한다는 것은 사례관리 대상자를 지정하기 위한 과정인 거예요. 학대 행위자 처벌을 위해 접근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관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사례 관리 대상자로 지정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대판정을 받아야 하고요. 이를 위해 조사를 하는 겁니다. 경찰이 하지 못하는 사회복지 서비스 계획이 바로 기관의 역할입니다. 특히 우리 기관은 학대 피해 어르신 지원과 함께 학대 행위자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행위자에 대한 상담 비율이 굉장히 높은 편이죠. 학대사건 사례 관리 때, 어르신 쪽에만 개입하면 반쪽짜리밖에 안 된다고 보는 거죠.

 

 

유해정 2004년에 「노인복지법」이 개정되면서 노인학대라는 개념이 정의되었어요. 그렇다면 관장님께서는 노인학대와 관련한 여러 제도가 정착된 기점을 어느 때로 보고 계시나요?

 

이현민 2014년과 2016년에 「노인복지법」이 대대적으로 개정이 됐습니다. 노인학대와 관련된 조항이 많이 신설되었죠. 예를 들어, 경찰이 수사현장에서 노인학대를 인지하면 노인보호전문기관에 통보해야 하는 조항이 생겼습니다. 행정기관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협력해 노인학대 등 노인인권과 관련한 일을 잘 진행할 수 있도록 법률적 체계가 마련된 거죠. 노인학대 범죄 전력자의 취업제한이라든지, 정서적 학대 행위자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도 신설됐습니다. 사실, 정서적 학대 행위자가 법률적 처벌받는 것은 쉽지 않지만, 정서적 학대는 다른 학대로 발전하는 전조이기 때문에 상징적인 법률 조항입니다. 노인보호전문기관 경우에는 2004년 「노인복지법」이 개정되면서 만들어졌지만 지역사회와 정부 정책 안에서 자리매김하게 된 때는 2014년과 2016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해정 노인학대의 정의와 유형에 대해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현민 학대의 사전적 의미는 ‘몹시 괴롭히거나 가혹하게 대우함, 또는 그런 대우’이며, 노인학대의 법률적 정의는 ‘노인에 대하여 신체적·정신적·정서적·성적 폭력 및 경제적 착취 또는 가혹행위를 하거나 유기 또는 방임을 하는 것’을 의미해요. 그리고 「노인복지법」에는 있지 않지만, 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는 ‘자기방임’을 노인학대에 포함해 노인학대에 준하여 사례를 다루고 있습니다. 보통 학대는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죠. 그러나 자기방임은 스스로가 방임하는 것이기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일인인 거죠. 그렇다 보니 한편에서는 학대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노인보호전문기관은 노인의 환경적인 측면, 처해 있는 상황, 생명존중을 우선해서 학대에 준하는 응급사례라고 판단해 개입합니다. 참고로 노인학대는 사회문화적 경험적인 측면에서 나라마다 조금씩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어요. 외국은 노인학대 정의에서 노인학대 피해자와 행위자 사이의 관계적인 측면, 신뢰관계, 의도성에 대한 부분들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우리나라는 그런 점이 없이, 굉장히 포괄적인 정의를 채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도별 학대 사례 판정건수 및 비율

 

유해정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한 『2021년 노인학대 현황보고서 가이드북』에 따르면 노인 관련 신고가 19,391건, 그중 학대 사례가 6,774건입니다. 그리고 2017년 『보건복지부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의 9.8%가 노인학대를 경험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노인학대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보는 게 맞는 건가요?

 

이현민 노인학대 증가 수치를 보고 노인학대가 증가했다고 보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특정 시기에 노인학대가 증가했다고 보기보다는 주변인들의 관심과 노인 당사자들의 인식개선에 의한 적극적인 학대신고로 인해 숨겨져 있었던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이 점차 더 드러나게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 숨겨져 있었던 학대 사례가 많았던 거죠. 노인학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숨겨진 문제로 보고 있어요. 누군가는 떳떳하게 학대를 드러내놓고 밝힐 만한 문제로 보고 있지 않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굉장히 부끄러운 사회의 한 측면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당사자들의 인권의식 개선이 시급합니다.

 

 

유해정 은폐된 노인학대가 발굴되고, 노인학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피해자들이 학대로 인지하게 되었다는 해석이 더 타당하겠군요.

 

이현민 그게 더 정확한 현실 진단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특정한 시기에 경제가 어려워져 학대가 늘어났다고 발언하는 전문가도 있겠지만, 체계적으로 연구되거나 인과관계가 확실히 증명된 것은 아닙니다. 노인보호전문기관 등의 인프라가 촘촘하게 구축되면서 노인학대 사례가 더 많이 발굴되고 있는 거죠.

 

2016년 말에 「노인복지법」이 개정됐을 때 의미 있는 조항이 있었어요. 경찰 수사 중, 노인학대로 의심되는 점이 있는 경우 노인보호전문기관에 사건을 통보하도록 한 거죠. 그 이후, 경찰 수사를 통해 노인학대 사례가 굉장히 많이 발견되었죠. 유관기관 간에 네트워크, 거버넌스 체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경우입니다. 노인학대는 보이지 않는 문제이며, 민감하고 금기시되는 주제인 점으로 볼 때, 노인학대 증가는 행위의 증가가 아닌 숨겨진 학대의 발굴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거죠. 노인학대를 사회적 문제로 다루는 등 범국민적 관심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연도별 노인학대 유형 비율
출처 : 보건복지부·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 『2021 노인학대 현황보고서 가이드북』

 

유해정 노인학대는 시설 내 학대와 가정 내 학대로 구분되는데, 이 전체를 아우르는 노인학대의 특성은 어떤 게 있을까요?

 

이현민 노인학대는 단일 유형의 학대만으로 나타나지 않고, 여러 유형의 학대행위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합니다. 보통 정서적 학대(43.6%), 신체적 학대(41.3%), 방임(6.5%) 등의 순으로 나타나죠. 학대라는 용어가 가지는 이미지 때문에 물리적 폭력과 같은 신체적 학대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상은 정서적 학대가 가장 심각합니다. 폭언, 협박, 위협 등의 정서적 학대는 노인의 정신건강에 해를 끼치는 행위이며, 모든 노인학대 유형의 시작점이죠. 정서적 학대의 조기 발견과 개입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최근에 경제적 학대가 이슈가 되고 있죠. 경제적 학대가 큰돈을 착취하는 게 아닙니다. 기초연금 등 소액도 착취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거죠. 실제로 연금제도가 빨리 도입된 나라, 후견인 제도가 활성화된 나라를 보면 후견인에 의한 경제적 착취 사례가 많습니다. 경제적 학대 행위자들의 경우, 부모의 돈은 내가 곧 증여받을 돈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부모 또한 자녀가 요구했을 때, 해주지 못한 것에 미안함이 커서 돈을 뺏겨도 신고하지 않죠. 어떻게 보면 가치관과 관련된 부분인 것 같아요.

 

 

유해정 경제적 학대는 가정에서 더욱 심각할 듯합니다.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학대는 또 어떤 특성을 보이나요?

 

이현민 가장 큰 특징은 피해 노인이 학대 행위자가 처벌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거죠. 이 사례가 매우 많아요. 자기결정권은 사례 개입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80% 정도가 친족에 의한 학대인데 피해 당사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다 보니 문제해결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노인보호전문기관이 생긴 이래로 십몇 년 동안은 아들에 의한 학대가 가장 많았어요. 하지만 아들을 학대 행위자로 신고하는 부모는 많지 않았어요.

 

아동학대 경우에는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있거든요. 가정폭력도 관련 법이 있고요. 그런데 우리나라 「노인복지법」은 노인복지 정책을 갖고 방향을 제시하는 기본법임에도 불구하고 노인학대에 관한 조항들이 매우 많아요. 관련 법을 따로 분리를 시켜서 더 체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데 말이죠. 하지만 별도로 처벌에 관한 법률을 만들기에는 굉장히 어려운 부분들이 많습니다. 이유는 당사자인 노인이 처벌을 반대한다는 거죠. 최근에는 관련 법 조항이 조금 정비되었어요. 행위자들은 재학대 방지를 위해 치료와 상담교육을 노인보호전문기관으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참여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게 되죠. 법률을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활용률이 매우 낮습니다. 어쨌든 사건으로 접수가 되어야 조사가 진행되는데, 친족을 고소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거죠. 자기결정권을 무시할 수는 없잖아요?

 

냉정한 표현일 수도 있는데 사회복지기관이 그들의 인생 전체를 책임질 수는 없어요. 그런 의무감으로 접근하게 되면 오히려 둘 다 피해자가 된다고 봅니다. 노인도 피해를 보고, 그 사례를 개입하는 사회복지사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고요. 현재로서는 설득을 통해 계속해서 노인이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접근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유해정 노인학대 행위자 중 아들 비율이 높고, 배우자 비율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과 사례를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현민 예전에는 노인학대에 공식 같은 게 있었어요. 부양 스트레스.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학대한다는 거죠. 며느리 학대도 굉장히 많이 잡혔었고요. 이제는 아들과 딸 구분 없이 여유가 있는 사람이 부모님을 모시잖아요? 학대 행위자로 딸이 2순위가 된 적도 있었죠. 부모에게 미리 재산을 물려받은 후, 자녀가 부모를 돌보지 않는 사례도 있고요. 자녀의 알코올중독 등 정신질환에 의한 학대 사례도 있고요. 알코올중독자의 특징은 경제적 의존성이 높습니다. 부모의 기초생활 생계비를 받기 위해, 부모가 치매판정을 받아 관리가 필요함에도 부모를 시설로 보내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죠.

 

지금은 2순위가 배우자인데, 동거부부 증가에 따른 가구 구성원의 변화도 작용하는 거죠. 제일 중요한 점은 노인 인구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겁니다. 치매 노인수도 증가하고 있고요. 치매 등 노인성 질환으로 인해 한 배우자가 다른 배우자를 케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학대로 이어지는 거죠. 처음에는 정서적인 부분으로 시작하겠죠. 학대의 무서운 점이 인권침해가 익숙해지면서 더 세게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 겁니다. 행위자 자신도 자기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도 모를 때가 많아요. 타인이 봤을 때는 학대를 하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복지관, 동호회, 노인일자리 등에서 배우자가 다른 이성을 만나는 것 때문에 학대가 발생하는 사례도있습니다. 의처증, 의부증에 의해서 나오는 사례죠.

 

모든 학대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관계적인 측면입니다. 그렇다 보니 관계의 골을 깊게 만들었던 가정폭력을 나이가 들어서 신고하는 경우도 많아요. 더는 이렇게 살 수 없기 때문인 거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서 용기를 내는 거죠.

 

 

출처 : 보건복지부·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 『2021 노인학대 현황보고서 가이드북』

 

유해정 부모들은 자녀들의 처벌을 원치 않고, 노인학대의 중요한 원인이 돌봄부담과 경제적 부담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학대신고 사례의 10% 정도가 재학대라는 통계가 있던데, 이런 측면들을 고려하면 노인학대 문제해결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현민 가정학대가 골 깊은 가정사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거든요. 이걸 저희 상담원들이 몇 차례 가서 상담한다고 해서 풀리냐? 아니거든요. 상황에 강하게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이 미흡한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응급 사례가 효과성을 발휘하려면 제도적으로 탄탄해야 해요. 강제 분리 조치를 하고 응급 개입을 하려면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법률로서 접근해야 노인안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가 없죠. 그래서 한 사례에 최대한 많은 시간을 들여서 노인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기관의 인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제한이 많죠. 그런 것들이 사실 제일 아쉽습니다.

 

 

유해정 시설학대도 심각한 편이지요?

 

이현민 우리나라에서 시설학대는 시설이라는 장소에서 일어난 학대의 의미라기보다는 종사자에 의한 학대라는 의미에 더 가깝죠. 시설학대 유형으로 방임이 가장 많습니다. 부적절한 돌봄이죠.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시설학대 발생 원인 실태조사를 했는데, 노인의 문제행동 등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었어요. 노인의 문제행동, 치매로 인한 의존성 등의 문제로 시설에 오는 건데, 그로 인하여 학대가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종사자들의 인식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직업윤리의식의 문제죠. 인식개선 교육과 함께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 과정에서 윤리적인 부분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누구나 시설 종사자가 될 수 있다, 진입 장벽이 너무 낮다는 말들이 있어요. 그래서 노인학대 범죄 경력자의 취업 제한 조항이 최근에 만들어졌습니다. 대다수 인권침해라든지 이런 것들이 범죄행위로 처벌을 받거나 사건으로 처리되는 경우들은 소수라는 점에서 부족하지만, 최소한의 기준이 만들어졌다는 측면에서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원론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시설에서 노인학대가 발생했을 때는 내부적으로 빨리 신고를 하고 내부 보고 체계가 굉장히 확실해야 되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종사자들의 실수나 과실을 지적하되, 포용할 수 있는 조직문화들도 어느 정도 보편적으로 마련이 돼야 할 것입니다. 휴먼서비스는 사람이 제공하는 것인데, 완벽만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질책이 되고, 그렇게 되면 인정이 어렵거든요. 어르신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보호하고 신고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유해정 장기간 학대를 당하면 자존감이 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관장님은 학대 피해자의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하시고 계신데요.

 

이현민 행위자의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은 피해노인으로 말미암아 학대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게 만듭니다. 내가 부족하고 잘못해서 가족에게 학대를 받는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즉, 폭력이 정당하게 포장되는 거죠. 따라서 학대의 다른 표현은 배신감과 수치심일지 모릅니다. 사랑으로 키운 자식, 존중한 배우자로부터 학대를 당하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스스로 탓하게 되죠. 골이 깊은 가정불화가 노인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의 몇 마디 위로와 상담으로 치유되기는 어려울 겁니다. 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 노인을 찾아가는 것은 그들이 잃어버린 단어, ‘선택’을 되찾게 돕는 의미가 크죠. 지금보단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선택, 나 스스로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선택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노인학대 문제해결의 작은 파장은 시작되는 거죠. 이러한 파장을 몇 차례 경험하면서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변화시키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이러한 용기에 힘을 보태기 위한 우리의 역할은 명확하죠. 그들을 소외시키지 않고 나의 일처럼 관심을 가지고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노인학대 신고전화 1577-1389나 112 번호로 연락해서 학대 피해자를 대신하여 직접 도움을 요청하는 거죠. 신고라는 단어가 가지는 책임과 부담의 무게로 인하여 선뜻 신고하기 어려울 때는 학대 피해노인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도움과 기회를 준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노인학대 개입절차(제공:서울특별시서부노인보호전문기관)

 

유해정 노인학대 예방과 노인인권 보호를 위해 사회 구성원은 어떤 태도와 실천을 가져야 할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이현민 국가에서 사회적 인식개선을 위해 ‘노인학대 예방의 날’(매년 6월 15일)을 기념일로 지정한 것은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노인학대 문제해결과 예방을 위한 범국민적 관심이 필요할 만큼 노인이 처한 현실이 녹록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노인학대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노인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과 태도입니다. 모든 사람은 노인이 됩니다. 그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어요. 피할 수 없는 숨소리라는 거죠. 그런데 노인을 별개의 객체로 보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요.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들이 인터넷, 사이버 공간에서 굉장히 많이 확산되고 이제는 고착화한 것 같아요. 노년층을 비하하는 틀딱충 같은 용어만 보더라도요. 이런 인식은 나중에 노인학대로 번질 수 있는 위험요인이 되거든요. 나 또한 노인이 되기에 나의 문제로도 인식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 스스로가 노인들에 대해서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야 해요. 나이를 이유로 차별하는 연령주의가 코로나19 상황에서 더욱 심화하는 측면이 있어요. 우리나라는 코로나19로 의료서비스가 붕괴해 제한된 의료자원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노인과 젊은이의 목숨값을 저울질하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코로나19를 달리 표현하는 ‘부머 리무버(Boomer Remover)1)’나 기존에 유행한 ‘오케이 부머(OK Boomer)2)’가 낯설지 않아요. 단지 노인이기 때문에 처하는 부당함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정당하게, 연령주의로 익숙하게 포장되면 노인학대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언젠가는 극복되겠지만, 뿌리 깊어진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 편견과 차별은 계속해서 남아서 인권의 존엄성과 가치를 낙후시킬 것입니다.

 

아직도 노인학대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나요? 나도 언젠가는 노인이 됩니다. 이 명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들이 도움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유해정 활동가는 인권기록센터 ‘사이’ 활동가이자,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기록과 연구 모두 인권활동의 일환이라는 생각으로, 동그랗게 모여 앉는 세상을 위해 고통과 희망의 뿌리를 삶의 언어로 기록하고 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금요일엔 돌아오렴』, 『나는 숨지 않는다』가 있습니다.

 

1) 베이비부머 세대를 제거한다는 의미.
2) 젊은 세대를 고압적으로 대하는 베이비부머에게 조롱과 비하의 의미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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