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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Photo Essay [2022.09] 주거인가 죽어인가

글·사진 노순택(사진사)

 

사람, 기계, 군인

 

서른여덟 살 박 씨는 12월의
칼바람이 몰아치는 한강에 뛰어들면서도 가족을 걱정했다.

유서에는 강제로 쫓겨나는 비통한 심정과 늙은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내뱉으며
협박과 폭력을 일삼던 철거용역에 의해
그가 살던 집은 두 번이나 털렸다.
오갈 데 없던 박 씨와 가족은 아직 헐리지 않은 빈집에 숨어들어 버티던 중이었다.

여름부터 초겨울까지 스무 번이 넘는 강제집행이 동네를 휩쓸었다.
죽고 싶은 사람이 박 씨뿐이었을까.
2018년 서울 아현동만의 일이었을까.
법을 앞세운 행정집행으로 가난한 이의
‘밥’을 짓밟는 일이 우리에게 상식과 정의로 포장되어 배달된다.
주거권이 없던 박 씨는
간신히 ‘죽어권’만 챙긴 채 이 땅을 떠났다.

집이 부족하다. 더 짓는다.
그 과정 속에 누군가
살던 집에서 쫓겨난다.
새 집은 집 있는 이의 투자처가 된다.
여전히 집이 부족하다.
또 짓는다. 또 쫓겨난다.
집으로 돈 번 이가 또 집을 산다.
고로 집이 부족하다. 다시 짓는다.
다시 쫓겨난다. 다시 죽어난다.
돌고 도는 개발윤회의 업보.
무한반복의 이 고리가
주거를 ‘죽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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