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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깊이읽기 [2022.09] 안전을 위한 모든 사람의 주거권

글 최은영(한국도시연구소 소장)

 

안전을 위한 모든 사람의 주거권

 

 

 

2022년 8월, 서울시 관악구 도림천 주변에 내린 폭우는 다세대주택 지하에 살던 가족 4명 중 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많은 언론이 참사 현장을 반지하라고 부르지만, 주택의 3분의 2 이상이 땅속에 파묻혀 있는 지하주택이다. 이전에는 주택의 3분의 2 이상이 땅속에 파묻혀 있는 경우를 지하층이라고 하였으나 1984년 「건축법」 개정으로 이제는 2분의 1 이상이 파묻혀 있는 경우까지 지하층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자를 지하, 후자를 반지하라 부른다. 참사가 발생한 집은 1997년에 착공되었는데, 반지하가 아닌 지하로 지어졌다. 성인 남성 키를 훌쩍 넘는 천장과 비슷한 높이에 세로 50cm 정도의 창문만 지상으로 나 있어 한낮에도 햇볕이 잘 들지 않아 어둡다. 참사 당일 수압으로 현관문이 열리지 않는 상황에서 저 높은 곳의 창문은 지상으로의 탈출구가 되지 못했다. 이 다세대주택이 위치한 건물의 왼쪽 지표면은 고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오른쪽은 낮은데, 이상하게도 더 낮은 오른쪽 땅속 깊은 곳에 지하 주택이 위치해 있다. 관악산에서 내려오는 도림천 주변 저지대는 범람이 잦은데, 도림천이 범람하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 지하주택으로 온 동네의 물이 모일 수밖에 없는 지형이다.

 

 

2022년 8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침수 참사 발생 다세대주택과 주변 지형.
2022년 8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침수 참사 발생 다세대주택과 주변 지형.

 

높은 서울의 주택가격,
지상의 집 한 칸을 갖지 못하게 해

 

70대 노모, 40대 발달장애 언니, 초등학생 딸을 둔 40대 엄마는 왜 창문을 쇠창살로 막아야 하는 상습 침수 지역 지하주택을 가족의 보금자리로 삼았을까?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 가족은 사용한 비닐봉지까지 씻어 다시 써가며 모은 돈으로 처음 장만한 방 세 개짜리 이 집으로 7년 전에 이사 왔다고 한다.

 

유엔에 의하면 ‘적정 주거(Adequate Housing)에 대한 권리’의 핵심 구성 요소는 점유의 법적 안정성(Legal Security of Tenure), 부담 가능한 주거비(Affordability), 살만한 집(Habitability) 등이다. 점유의 법적 안정성은 거주자의 의사에 반해 강제퇴거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담 가능한 주거비란 주거비 부담 때문에 식료품, 의료비, 교육비 등에 대한 지출을 제약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만한 집은 물리적 안전, 적정 주거 면적 확보와 함께 추위, 더위, 습기, 비, 바람 등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모든 요소가 동시에 충족되어야 주거권이 실현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저소득층은 부담 가능한 주거비와 살만한 집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부담 가능하면서 열악한 집을 선택하거나 주거비가 버거운 살만한 집을 선택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세입자의 주거권이 거의 없다시피 한 대한민국에서 점유의 안정성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자가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지하에 자가로 거주하는 다른 많은 가구와 마찬가지로 40대 엄마는 점유의 안정성과 부담 가능성을 위해 살만한 집을 포기했다. 현관문을 열면 지하 주차장이고,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지하라는 점을 아쉬워하면서도 임대인이 ‘나가라’ 할 걱정 없는 온 가족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노조 상근자로 일하면서 가족을 혼자 돌보는 가정 형편을 생각하며, 어린 딸을 위해 햇볕 잘 드는 집으로 이사 가고 싶은 바람을 접었을 것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 서울의 주택가격이 지상의 집 한 칸을 이룰 수 없는 꿈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2020년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 의하면 서울 자가 거주 가구의 주택 평균가격은 전체 주택 6억 8,575만 원, 지하주택 1억 8,626만 원으로, 지하주택 가격은 전체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주거권의 구성 요소 일부를 포기해, 생명권을 잃는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모든 사람의 주거권을 보장할 의무를 지고 있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계속 질문하고, 답을 찾아내도록 해야 한다. 재난 시 흉기가 될 수밖에 없는 이 집에 대해 중앙정부와 서울시, 관악구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상습 침수 지역에 왜 이런 집이 지어지도록 했으며, 왜 이런 집에 계속 사람이 살게 한 것일까? 수해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지하 주택 침수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 무슨 대책을 만들고 있는가?

 

 

안전을 위한 모든 사람의 주거권

 

기존 주택의 주거품질을 관리할 조직·법을 만들고
인력·예산을 지원해야 할 것

 

유엔은 매년 10월 첫째 월요일을 ‘세계 주거의 날(World Habitat Day)’로 정하고 있는데, 2022년 주거의 날 주제로 “격차를 상기하자: 어느 누구도, 어떤 장소도 뒤에 남겨 놓지 말자(Mind the Gap: Leave no One, no Place Behind)”를 선정해, 전 세계가 불평등과 빈곤 문제에 집중할 것을 촉구했다. 유엔은 코로나19·기후·분쟁(COVID-19·Climate·Conflicts)이라는 3개의 ‘C’ 위기가 불평등과 빈곤을 심화시킨다고 진단하고 있다.

 

지하에서 희생된 일가족은 우리 사회가 뒤에 남겨 놓은 ‘어느 누구’이고, 상습 침수 지역인 도림천변 저지대는 우리 사회가 뒤에 남겨 놓은 ‘장소’이다. 지하 참사 이후 정부가 8월 16일 발표한 270만 호 공급 계획 어디에도, 서울시가 지하 대책 중 하나로 발표한 ‘모아주택’에도 이 가족이 살 수 있는 집은 없다. 도림천변 저지대 등 상습 침수 지역에 대한 대책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현재 저소득층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살만하고, 부담 가능한 집은 공공임대주택밖에 없어, 재난에 취약한 지하 주택에 자가로 거주하는 가구에 대한 정책은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국 지하 거주 가구는 32만 7,000가구인데, 이 중 21.1%인 6만 9,000가구가 자가로 거주하고 있다. 상습 침수 지역 거주 세입자의 공공임대주택 등으로의 주거 상향과 함께 지하에 자가로 거주하는 가구에 대한 신규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기후위기로 재난이 일상화되고 있어, 기존 정책에서 포괄하지 못했던 사각지대를 계속 발굴해 나가야 한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지하주택 위로 위태롭게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모습.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지하주택 위로 위태롭게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모습.

 

영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주택에 대한 규제와 지원이 일반화되어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기존 주택의 주거품질에 대한 규제와 지원이 거의 없다. 규제는 대부분 신축주택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수십 년 전에 지어진 기존 주택에서 수재와 화재로 인한 참사가 반복되고 있다. 지방정부는 기존 주택의 주거품질을 관리 감독하고, 제재와 지원을 실행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중앙정부는 이를 뒷받침할 법제를 만들고 인력과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해 생명권조차 위협받고 있는 다양한 취약계층에 대한 대책 마련을 이번에도 기록적인 폭우를 핑계로 미루어서는 안 된다. 2014년 송파 세 모녀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복지 사각지대 발굴이 제도화되고 있지만, 기후위기 심화로 상시화되고 있는 재난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있는 약자들을 먼저 찾아내고 있다. 정부는 우리 사회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 재난보다 먼저 취약계층을 찾아내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통계청 통계개발원과 시흥·전주시 주거복지위원회 위원으로서 시민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 노력했으며, 비주택 및 홈리스 등 취약계층의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주거복지 정책 연구와 활동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주거권 관련 국제인권기준 및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주요 권고국가인권위원회 사회인권과

Ⅰ. 주거권 관련 국제인권기준
1. 세계인권선언 제25조 1. 모든 사람은 의식주, 의료 및 필요한 사회복지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이하 생략) 2. 유엔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사회권규약)

우리나라가 가입하여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고 있는 유엔 사회권규약은 모든 사람은 어떠한 차별도 없이 적정한 주거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고있으며, 국가는 이러한 권리의 실현을 위해 ‘가용자원이 허용하는 최대한도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음.
제11조 1. 이 규약 당사국은 모든 사람이 적당한 식량, 의복 및 주택을 포함하여 자기 자신과 가정을 위한 적당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와 생활조건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권리를 가지는 것을 인정한다. (이하 생략) 3.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 일반논평 제4호(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 1991)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는 일반논평(General Comment)이라는 형태로 사회권규약에서 인정하는 권리 목록별로 그 정확한 의미와 세부적 기준을 제시
사회권규약 제11조1항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에 대해 일반논평은,
- 주거권을 단순히 비를 피할 지붕이 있으면 된다는 식의 좁거나 제한적인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되고, 안전하고 편리하며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곳에서 살 권리로 받아들여야 함. 주거에 대한 권리는 (a) 점유의 법적 보장, (b) 서비스, 시설 및 인프라에 대한 가용성, (cc) 비용의 적정성, (d) 거주 가능성, (e) 접근성, (f) 적절한 위치, (g) 문화적 적절성을 포함함.
- 주거권은 여타 다른 인권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있고 다른 인권을 실현하는 기반이 되는 권리이며, 적정한 주거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보장되어야 하고, 정부는 국민의 주거권 실현을 위해 가용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며, 특히 취약한 집단과 적정하지 않은 주거에 거처하는 취약계층의 문제에 우선적인 관심을 가지고 이를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강조.

Ⅱ. 주거권 관련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주요 권고
1.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 권고 □ 4차 최종견해(2017. 10. 6.)
1.
(중략) 위원회는 당사국이 충분한 액수의 사회보장혜택, 특히 국민기초생활 보장 제도에 의한 혜택을 보장할 것을 권고한다. 위원회는 당사국에 사회보장 권리에 관한 일반논평 제19호(2008)에 주목할 것을 권고한다.
2.
위원회는 당사국의 주거정책이 노숙자에 대한 장기적 해결책을 제공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우려한다. 또한 (a) 적절하지 않은 주거지에 거주하는 개인과 가구의 숫자가 많다는 점, (b) 주택 부족으로 인한 경우를 포함한 높은 주거비용, (c) 강제퇴거에 대한 적절한 세입자 보호 장치 부족에 대하여도 우려한다.
3.
위원회는 당사국에 다음과 같은 주택정책을 고안하길 권고한다. (a) 노숙의 근본 원인을 다루고 노숙자 개인을 위한 장기적인 해결책을 추구할 것
(b) 사회주택을 포함하여 적절하고 부담가능한 주택의 이용가능성을 증가시킬 것
(c) 불합리한 주거비용을 포함하여 민간부문에서 증가하는 주거비를 규제하는 메커니즘을 도입하고, 임차인의 더 오랜 계약기간을 보장하기 위하여 임대차 계약갱신을 제공할 것
(d) 협의권, 적절한 절차상 보호 장치, 적합한 대체주택에 대한 접근권 또는 적절한 보상을 포함하여, 법률이 모든 그룹에게 퇴거에 대한 적절한 보호를 제공하도록 보장할 것
2. 국가인권위원회 주요 권고 □ 비적정 주거 거주민 인권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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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적정 주거 거주민 인권증진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2019)
-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① 주거지원 공급물량 확대 위한 구체적인 연도별목표치와 실행 계획을 수립할 것,
② 최저주거기준이 주거의 적정성에 관한 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변화한 가구구성, 주거여건, 국제기준 등을 고려하여 면적기준과 시설기준을 개정하고, 주거의 품질을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기준으로 구조·성능·환경 기준을 개정할 것,
③ 적정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고시원의 최소면적및 시설 기준 등을 마련하고, 이 기준에 미달되는 고시원은 임대료 상승을 수반하지 않는 개량 사업 등을 통해 기준 미달 고시원을 점차 개선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할 것 권고.

 

 

안전을 위한 모든 사람의 주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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