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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깊이읽기 [2022.09] 지옥고와 빈곤, 그리고 불평등

글 김윤영(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쪽방주민결의대회에 참가한 쪽방 주민들의 행진 모습 _ 2022. 9. 21.(제공:빈곤사회연대)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쪽방주민결의대회에 참가한 쪽방 주민들의 행진 모습 _ 2022. 9. 21.(제공:빈곤사회연대)

 

공공임대주택 입주 대기번호 630번

 

지난 9월 20일, 서울시 용산구 LH수도권특별본부 앞에서 쪽방, 고시원, 반지하 거주자 그리고 텐트촌 강제철거 피해자가 LH 신임사장 공모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은 현재 LH 신임사장 후보로 거론되는 이들이 부동산 친화적인 시장주의 일변도의 인물들뿐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공공임대주택 확대가 필요한 본인들이 직접 사장에 출마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이들 중 용산 홈리스텐트촌에 거주하던 한 당사자는 지난 5월, 텐트촌이 철거될 위기에 처했을 당시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닐하우스나 텐트에 사는 사람은 국토교통부가 정한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사업’에 따라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있지만, 용산구에서는 주소지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이후 신청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어렵게 인정받고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했다. 함께 입주 신청을 한 텐트촌 홈리스 4명은 모두 630번 대에 예비번호를 받았다.

 

630번. 그의 입주 차례는 언제쯤 돌아올까?

 

비싼 임대료나 관리비를 감당할 수 없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저렴한 임대주택은 영구임대주택과 매입임대주택이지만, 용산구에 영구임대주택은 0호, 매입임대주택은 44호1)뿐이다. 임대주택 입주를 기다리는 홈리스가 한 집회에서 ‘명 짧은 이, 기다리다 죽겠다’는 피켓을 든 이유다.

 

 

신림동 반지하 폭우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고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불평등이 재난이다’ 피켓을 든 참가자들 _ 2022. 8. 17.(제공:빈곤사회연대)
신림동 반지하 폭우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고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불평등이 재난이다’ 피켓을 든 참가자들 _ 2022. 8. 17.(제공:빈곤사회연대)

 

비싸지는 도시와 주거빈곤

 

이제는 도심에서 판자촌, 달동네와 같은 마을을 찾기가 어렵다. 매일 더 화려해지는 도시에서 주거빈곤 문제는 사라진 것이 아닐까 착각이 일어날 지경이지만, 주거빈곤은 마을을 떠나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통계 역시 그 현실을 보여준다. 2005년에서 2020년 전국적으로 지하 거주 가구 규모는 58.7만 가구에서 32.7만 가구로 감소했지만, 고시원 같은 주택 이외의 거처는 5.7만 가구에서 44.8만 가구로 증가했다.2) 이들 모두를 합친 지하, 옥상, 고시원이나 쪽방 등에 사는 이들의 숫자는 2005년 694,854 가구에서 2020년 855,553 가구로 증가했다.3) 이렇게 집이 아닌 곳에 살거나 최저주거기준이 정하는 1인가구기준 14㎡ 이하에 사는 주거빈곤 가구의 합은 현재 200만 가구에 이른다.4)

 

비주택 가구가 증가하는 동안 동시에 늘어난 주거 유형은 아파트다. 지하 거주자가 줄어들고 비주택 거주자가 늘어나는 동안 서울에서는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저층 주거지가 뉴타운 개발 같은 사업을 통해 하나하나 고층 아파트 단지로 변모했다. 더 비싼 집들이 도시를 채워갈수록 가난한 이들의 거처는 빌라에서 다세대주택으로, 반지하나 옥탑과 고시원으로 열악해져 갔다.

 

지난 8월, 폭우로 관악구와 동작구에서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이 목숨을 잃는 참변이 일어난 뒤에 서울시는 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반지하 밀집 지역을 신속하게 통합 개발하고, 반지하에 세입자를 들이지 않는 건물주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는 세부계획은 도리어 반지하 거주민의 주거불안을 야기할까 하는 걱정들뿐이었다. 서울시와 국토교통부가 반지하를 ‘후진적 거주유형’으로 서슴없이 지목하기 전에 알아야 했던 것은 왜 사람들이 반지하에 사는지에 관한 것이다. 반지하에 사는 이유는 저소득층이 부담할 수 있는 적절한 비용으로 도심 생활권에 머물 수 있는 주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모여 살 수 있는 방 두 개, 세 개짜리 넓은 집이 유일하게 반지하였기 때문이다. 반지하에 사는 이유가 반지하를 떠날 수 없는 이유다. 이에 맞춘 적절한 공급정책 없이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우격다짐은 더 나쁜 주거지로 반지하 거주자들을 내모는 풍선효과를 일으킬 뿐이다.

 

 

지옥고와 빈곤, 그리고 불평등

 

격차에 주목하라

 

630번의 대기표를 받은 텐트촌 철거 피해자도, 반지하 세입자와 쪽방 거주자도, 청년과 신혼부부뿐만 아니라 비싼 월세를 감당할 수 없는 무주택 시민들도 공공임대주택을 기다리고 있지만, 공공임대주택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지난 8월 30일 정부는 ‘주거복지의 빈틈도 촘촘하게 보완’하는 예산안이라며 올해보다 5조 7천억 원을 삭감한 내년도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발표했다. ‘촘촘’의 내용은 반지하나 고시원 거주자가 이사할 때 보증금을 무이자로 대출해주거나 이사비를 지원한다는 아기자기한 정책으로 채워져 있었다. 정작 공공임대주택을 새롭게 건설하고 확대할 기본계획은 빠져있었다. 정부의 이런 정책을 뒷받침하듯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반대한다는 거대한 현수막이 재건축 아파트 현장마다 나부끼고, 구청장이나 국회의원들이 나서 지역구 안에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지 말라고 청원한다.

 

사회보장제도가 미비한 한국 사회에서 집값 상승은 미래의 위험에 대비할 유일한 희망이 되어버렸다. 그 희망이 누군가에게는 영끌의 짐을, 누군가에게는 가혹한 월세를 안기고 소수에게 독점적인 부를 선사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톱니바퀴 속에 살 수 있을까.

 

UN은 매년 10월 첫 번째 월요일을 세계 주거의 날로 정했다. 올해 세계 주거의 날 의제는 ‘Mind the gap’, 격차에 주목하라는 것이었다. 주거권 문제의 최전선은 어디인가? 단연 하룻밤 몸조차 누일 곳 없는 사람들, 안전하지 않은 집에 사는 사람들이 겪는 문제일 테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주거빈곤을 야기하는 불평등의 구조, 그 자체다.

 

서울에서 일하는 소방관 중 근무지와 거주지가 일치하는 사람은 단 15%뿐이라고 한다. 비싼 집값 때문에 근무지를 벗어나 외곽에 사는 소방관은 비상시 긴급 출동에 늦을까 전전긍긍한다. 불평등의 비용은 무엇인가? 불평등은 가난한 이들의 삶을 가장 먼저 파괴하지만, 종국에 사회 전체에 그 비용을 전가한다. 내 발밑만 살피다가는 우리 사회 전체가 낭떠러지에 굴러떨어진다. 현재의 불평등에 개입할 시간이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모든 사람들이 안전한 집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공저), 『시설사회』(공저), 『유언을 만난 세계』(공저)가 있습니다.

 

1) 2016년 기준
2) 한국도시연구소 『지옥고 거주실태 심층 분석 보고서』 2022. 9.
3)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주거취약계층의 주거복지 현황과 개선방안』 <질병과 죽음으로 내몰리는 취약계층 주거권 보장 강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 중 2022. 9. 26.
4)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주거취약계층의 주거복지 현황과 개선방안』 <질병과 죽음으로 내몰리는 취약계층 주거권 보장 강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 중 2022.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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