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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깊이읽기 [2022.09] 도시 청년의 주거권 보장을 위하여

글 지수(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부담 가능한 임대주택 확대와 세입자 청년들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주거권대행진 _ 2022. 10. 1.(제공:민달팽이유니온)
부담 가능한 임대주택 확대와 세입자 청년들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주거권대행진 _ 2022. 10. 1.(제공:민달팽이유니온)

 

존재할 자리를 찾는 도시 청년들

 

“종일 집을 보러 다니다가 카페에 들어갔는데 눈물이 펑펑 나는 거예요. 이렇게 넓은 도시 안에 내가 살 수 있는 집 하나가 없을 수 있나. 그럼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이 도시가 나에게 ‘여기에 네가 존재할 자리는 없어’라고 말 건네는 것만 같아서요.”

 

높은 집값과 비적정 주거지가 많은 도시에서 집을 구하는 과정은 자신의 존엄이 훼손되는 경험이었다는 민달팽이유니온 청년주거교육 참여자의 말이다.

 

청년세대 내에서도 1인가구, 부부가구, 부모동거가구 특성별로 주거 격차가 점차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저소득 및 최저주거기준 거주 비율이 높은 청년 1인가구가 겪는 주거 불안은 연령에 따른 차별과 세입자라는 사회적 지위로 인한 차별이 복합적으로 교차하며 심화하고 있다. 청년 1인가구 10명 중 9명이 세입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이들은 도시 일상 전반에서 겪는 주거 불안과 우울을 홀로 감내하곤 한다. 주택임대차시장에서 벌어지는 세입자에 대한 보호제도를 만드는 것은 청년의 주거권 보장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2021년 민달팽이유니온 청년주거 상담분석에 따르면, 부담할 수 있는 주거비 수준이 높지 않은 청년은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부터 난관 앞에 놓인다. 공인중개사무소를 방문해서는 ‘그 정도 돈으로는 집 못 구한다’는 말을 듣는다. 주택을 소유한 임대인과 만나는 과정에서 한 청년은 검은 곰팡이가 피어 있는 집, 누수 흔적을 미처 가리지도 못한 집을 보여주는 임대인 등으로부터 저렴하게 사는 것이니 이 정도는 감당하라는 시선과 말을 겪는다. 사는 동안에도 같은 상황에 놓인다. 임대인에게 보일러 수리를 요청했다가 ‘고작 그 정도 월세를 내면서 고쳐 달라고 하냐’는 타박을 듣는 청년, ‘고쳐봤자 오래된 집이어서 어차피 추울 것이니 그냥 살라’는 말을 듣는 청년은 모두 비적정 주거를 홀로 감당해야 하는 주거 경험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2022년 가장 큰 세입자 권리 침해 이슈로 대두된 전세사기와 같이 보증금 미반환 위험 문제도 심각하다. 다수의 세입자가 전 재산을 비롯해 빚을 지고 마련한 보증금이 임대인, 중개사, 분양대행사 등으로 인해 영영 돌려받을 수 없게 되거나 계약기간 내내 반환에 대한 불안을 감수하며 지낸다. 최근, 전세사기 대책으로 다양한 제도 개선안이 발표되었는데, 피해 경험을 야기하는 주된 이해관계자인 공인중개사나 임대업자, 분양대행업자 등에 대한 관리·감독과 규제에 대한 제도개선 논의는 일절 찾아볼 수 없다. 누구나 점유 안정성을 보장받으며 집다운 집에서 안전하게 거주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를 지키기 위한 제도를 마련할 책무가 있다. 공인중개사의 중개 의무와 책임에 대해 실질적으로 관리·감독 권한을 발휘할 수 있는 주택감독관제도 등을 도입해야 하고, 갭투기꾼 등이 깡통주택을 양산할 수 없도록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을 통해 보증금 상한선과 신규 임대차 규제에 관한 제도 개선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거권대행진에서 한 참가자가 ‘집은 인권이다’ 팻말을 들고 도로 위에 누워 있다 _ 2022. 10. 1.(제공:민달팽이유니온)
주거권대행진에서 한 참가자가 ‘집은 인권이다’ 팻말을 들고 도로 위에 누워 있다 _ 2022. 10. 1.(제공:민달팽이유니온)

 

청년으로 호명되지 않는 도시의 빈곤 청년

 

도시에 사는 누군가에게 집은 안전한 자산증식 수단이겠지만, 도시에 사는 빈곤 청년에게 집은 때때로 그 집을 택한 사람의 생존을 위협하는 재난이 된다. 최근,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다세대 주택의 지하에 살던 한 청년이 화재로 인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동작구에 거주하던 한 청년은 올해 여름에 계속된 폭우로 인해 반지하 집이 물에 잠겼다. 이들에게 유용했을 청년주거정책은 무엇이었을까. 1억 원이 넘는 청년주택을 짓겠다, 장차 청년 대상 분양주택도 짓겠다는 것이 무용했을 것은 분명하다. 그 와중에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서울시의 발표는 2년 동안 주거비 지원을 받다가 기간이 만료되면 다시 반지하로 가야 하는 것인지, 반지하를 없앤다고 했으니 그렇다면 옥탑이나 고시원이나 불법 방쪼개기 원룸으로 가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서울시가 2022년 동안 매입임대주택 공급 목표량의 단 2.7%만을 공급했다는 소식에도 주목하게 된다. 매입임대주택은 씨가 말랐고, 행복주택은 경쟁률이 높아 로또라고 불리면서 보증금이 비싸 엄두조차 못 내는 경우도 허다한데, 반지하가 있는 동네의 경우 재개발 심사 과정에서 가산점을 주겠다는 방식의 접근은 되레 도시의 가장 아래에서부터 머무는 청년에게 위협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청년주거정책이 대변하는 청년은 누구의 얼굴을 하고 있던가? 50년 장기 대출에 관한 최근 정부 발표자료에 따르면, 연봉 3천만 원을 버는 청년에게는 미래소득 3715만 원을 적용하여 3억 원을 빌려준 뒤, 50년 동안 월 124만 원씩을 상환하도록 한다. 자산이 많을수록 더 많은 공공 자원을 누릴 수 있는 대출지원제도 자체의 한계도 분명하지만, 50년 동안 월 100~200만 원을 꾸준히 납부할 수 있는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 청년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 또한 문제다.

 

청년주거정책은 주거취약계층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정책과 같은 맥락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저렴한 장기공공임대주택 확대와 청년의 주거안정이 별개의 것으로 구분되어선 안 된다. 수억 원짜리 주택을 매입할 수 있는 청년을 대상으로 분양주택을 공급하고 대출을 확대하는 것은 청년주거정책의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 청년주거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의 자원이 청년세대 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악영향을 끼치는 데에 일조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주거불평등이 심화하는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청년이 누구인지를 중심으로 청년주거정책의 대상과 실행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가난한 청년의 자립은 가족이 아닌 국가의 책임

 

분양주택 공급과 대출 확대를 중심으로 하는 청년주거지원 방안으로부터 배제된 청년들은 도시에서 더 낮고, 더 취약한 곳으로 내몰리고 있다. 2020년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지하, 반지하, 옥탑방에 거처를 두고 있는 청년가구는 3.7%로 일반가구(3.1%)보다 높고,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청년가구 비율 또한 2020년 기준 7.5%로 일반가구(4.6%)에 비해 높게 나타난다. 하지만 이들이 입주 가능하고 저렴한 장기공공임대는 턱없이 부족하고, 대출 정책은 자부담금이 적은 청년에게 접근성이 낮다. 그나마 청년 전용 공공임대주택이 공급된 바 있지만, 거주기간이 6년으로 제한된다는 점에서 청년이 겪는 주거빈곤을 한시적인 문제로 취급하는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청년 대상의 매입임대, 사회적 주택, 행복주택 등의 거주기간(6년)을 가깝게는 10년으로 확대하고 장차 사회적 논의를 더 해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청년을 비롯해, 정형화되지 않은 주거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주거비 직접 지원제도를 상시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현재, 만 30세 미만의 미혼인 청년가구는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해 별도 가구를 구성하더라도 인정받지 못하고 부모에게 귀속된 존재로만 여겨지기 때문에,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주거급여를 신청조차 할 수 없다. 국가인권위 또한 20대 청년가구를 개별가구로 보장하기 위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개선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의 결정문을 발표했다. 2022년부터 전국적으로 청년월세지원이 시행되고 있지만, 최대 12개월 동안 20만 원 한도 지원이며 생애 1회로 신청이 제한되고 2024년까지 일시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하다. 청년 주거빈곤 문제는 한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가족주의적인 기존 복지제도를 유지하는 이상 그로 인한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없다. 국가가 가족에 앞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공동체적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청년월세지원을 상시적인 제도로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청년 대상으로 주거교육 및 상담을 진행하며 당사자 사례를 중심으로 제도개선 및 공론화 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민달팽이 청년주거운동 10년』(공저), 『민달팽이유니온 청년주거상담분석 보고서』(공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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