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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톺아보기 [2022.11] 우리는 자꾸 엉뚱한 질문을 한다

글 최한별(한국장애포럼 사무국장)

 

서울시 탈시설조례 재정 촉구 기자회견 중 발달장애인 당사자 자조단체인 ‘피플퍼스트 성북센터’ 회원들이 직접 만든 손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_ 2022. 6. 14. (제공: 비마이너)
서울시 탈시설조례 재정 촉구 기자회견 중 발달장애인 당사자 자조단체인 ‘피플퍼스트 성북센터’ 회원들이 직접 만든 손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_ 2022. 6. 14. (제공: 비마이너)


 

당신은 공항에 있다. 출국 심사대 줄이 길지만, 사람들은 여권을 보여주고 심사대를 통과하고 있다. 줄은 빠르게 줄어 어느새 당신 차례가 되었다. 여권을 펼쳐 든 당신에게 갑자기 심사관이 “외국인과 30분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영어 실력이 있나요?"라고 묻는다. 당신은 당황한다. 간단한 대화라면 모르겠지만, 30분씩이나 한 가지 주제로 대화할 자신은 없다. 심사관은 “그렇다면 당신은 비행기에 탈 수 없다”며 당신의 출국을 막았다. 앞서 먼저 심사대를 통과한 사람들에게는 묻지 않은 질문이 당신에게만 주어졌다. 그렇게 당신에게는 ‘출국할 자격’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들까. 다른 모든 사람과 똑같이 여권을 가지고 있고, 심각한 범죄 같은 결격 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영어 실력이 충분하지 않아서 출국을 못 한다니, 황당하고 화가 날 것이다. 당신은 아무에게도 묻지 않은 질문이 나에게만 요구되는 것, 이건 차별이라고, 다른 모든 사람과 동등하게 나를 대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상상을 통해 우리는 잠깐이나마, 조금이나마,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경험해볼 수 있게 된다.

 

 

장애인탈시설지원법·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촉구를 위한 탈시설 장애인 편지 국회전시회, ‘우리 함께, 살아나간다’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 박경인 씨의 증언 _ 2022. 5. 23~26.
장애인탈시설지원법·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촉구를 위한 탈시설 장애인 편지 국회전시회, ‘우리 함께, 살아나간다’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 박경인 씨의 증언 _ 2022. 5. 23~26.

 

장애인 탈시설-지역사회 자립생활 권리에 대한 인식, 왜 한국은 저조한가?

 

장애인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격이 아니라 권리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는 이제 ‘모든 인간은 동등하며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명제에는 합의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곧 일상을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회사에, 식당에, 영화관에, 공연장에 갈 때, 그 모든 공간과 그곳에서 이뤄지는 활동에 장애인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이 ‘탈시설-지역사회 자립생활 권리’의 본질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대표적인 장애인권규범인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 역시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지역사회에 포함되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였다(제19조). 그뿐만 아니라, 2017년에는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에 관한 일반논평(주요 권리에 관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해석이나 지침 등을 담고 있는 해설서)까지 발표함으로써 이 권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장애인에 대한 지원은 아예 없거나 ‘수용 시설 같은’ 특정 삶의 방식과 연계되어 있었고, 지역사회의 기반 시설은 모두를 포용하는 형태로 고안되지 않았다. 자원은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투자되기보다는 시설에 투자됐다. 결국 장애인들은 가족들에게 의존하거나, 버려지거나, 시설에 수용되고, 고립되고, 분리되었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지역사회에 통합되어 독립적으로 사는 것에 관한 일반논평 5』(2017)

 

탈시설은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 채택한 정책의 방향이기도 하다. 2013년, 캐슬린 윈 당시 캐나다 온타리오 주지사는 시설보호 정책으로 인해 수용되었던 이들과 그 가족들을 비롯해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1) 캐슬린 윈 주지사는 “이들(시설 수용된 장애인들)의 인간성은 무시되었고,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분리되어 자신의 잠재력, 평안, 안전과 존엄을 갈취당했다”며 정부가 자신의 권리를 보장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장애인 시민과 그 가족들의 신뢰를 저버린 것에 대해 사과했다. 2006년 11월 15일, 뉴질랜드에서는 피트 호지슨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시설수용의 종식(The End of Institutionalisation)’이라는 제목으로 국회 연설을 하였고, 뉴질랜드 정부의 장애인 정책이 기존 시설 수용 중심 체제에서 지역사회 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체제로 변모할 것임을 선언하였다.

 

이렇듯, 탈시설-지역사회 자립생활 권리는 유엔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 실천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장애인의 탈시설-지역사회 자립생활 권리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너무나 저조하다. 한국에는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보호중심적 시각이 팽배하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탈시설 ‘권리’가 자꾸 ‘자격’으로 둔갑한다. ‘말도 못 하는데’, ‘혼자 화장실도 못 가는데’, ‘혼자 살면 위험한 일에 많이 노출될 텐데’ 장애인, 특히 중증장애인이 어떻게 ‘자립’을 할 수 있겠냐는 인식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심지어 장애인 당사자나 복지 종사자, 국민의 권리 증진을 위해 정책을 선도해야 할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까지도 차별적인 시각을 가진 경우도 많이 보인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18년 실시한 『중증, 정신장애인 시설생활인에 대한 실태조사』에서도 시설에서 나가고 싶지 않은 이유, 즉 탈시설 하지 못 하는 이유로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법을 몰라서’, ‘경제적으로 자립할 자신이 없어서’ 등의 답변이 높게 나타났다. 장애인에게만 유독 자립할 ‘자격’이 까다롭게 요구되는 사회적 인식이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에게 작용한 탓이다.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점은 비장애인 중 그 누구도 ‘자립할 자격’을 검증받아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비장애인인 나의 지역사회 자립생활은 수많은 실수와 이를 통한 학습의 과정이었다. 또한, 일상을 꾸리고 잘 살아가기 위한 사회적 관계망을 만들고, 때로는 부수고, 또다시 재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어떤 순간에도 나는 나 홀로 살고 있지 않았고, 애정과 지원을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과 주고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유독 장애인에게만 잣대를 들이대고 질문한다. 정말 네가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느냐고.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며, 어떠한 나쁜 일에도 휘말리지 않고 스스로를 철저히 보호하면서 가사 노동도 완벽하게 할 수 있겠느냐고.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는 자원을 쌓아갈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하고, 이들을 배제한 채 비장애인 중심의 편리한 방식으로 지역사회를 만들어 온 원죄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말이다.

 

따라서 장애인에게 정말로 물어야 하는 건 이런 질문이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의 지역사회에서 당신이 살아갈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이다. 이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비장애인 중심으로, 다시 말해 철저히 장애인 차별-배제적으로 만들어온 지역사회를 장애인을 비롯한 다양한 이들에게 다시 접근 가능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장애인을 사랑하고 보호한다는 미명으로 자꾸 엉뚱한 질문을 하는 이들은 실제로는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사람과 아닌 사람의 ‘급’을 나누고 있는 셈이다. 누구도 다른 동료시민에게 ‘급’ 나눌 자격을 준 적이 없다.

 

이에 더해, ‘의사표현도 못 하고’, ‘손 하나 꼼짝 못 하는’ 최중증장애인들에게는 오히려 집단적 거주형태가 더욱 안전하고 적절하다는 주장 역시 ‘모든 인간은 평등한 권리의 담지자’라는 인권의 대원칙에 반할 뿐만 아니라,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출발점인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권리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명제를 ‘그러나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 장애인 내에서는 차별이 있을 수 있다’는 모순적 주장으로 훼손할 따름이다.

 

이미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는 이 지면에서 다시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논의되었다. 해외 사례, 국내 연구, 다양한 시범사업들, 연구들, 정책과 법률안들… 탈시설 과정부터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때 필요한 지원의 형태, 나아가 ‘공동체’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까지, 지난 수십 년간 국내외적으로 정말 많은 논의와 사례들이 차고 넘친다.

 

 

‘세계 장애인의 날’에 열린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 연대 출범식 모습 _ 2022. 12. 3.
‘세계 장애인의 날’에 열린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 연대 출범식 모습 _ 2022. 12. 3.

 

장애인 탈시설-지역사회 자립을 돕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가?

 

이제 우리의 질문은 ‘네가 탈시설 할 자격이 있다고 보느냐’ 가 아니다. 소위 ‘시민의 발’이라는 지하철이 왜 당신들에게는 발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인지, ‘천만 영화’의 시대에 왜 영화관에 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지, 성인 대학 진학률이 너무 높아 ‘학력 인플레’라는 말까지 나오는 한국에서 왜 아직도 학교에 가기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하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맨날 엉뚱한 질문만 한다. 그 질문을 하루라도 더 듣고 있을 수 없다. 시설 안에 사람이 산다. 그들도 우리처럼 계속 나이가 들어간다. 죽어서야 나오기 전에, 하루라도 더 빨리, 우리의 질문을 고치고 우리의 사회를 바꿔야 한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협약에 이어 일반논평으로도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올해 9월에는 『긴급상황을 포함한 탈시설 가이드라인(Deinstitutionalization Guidelines including in Emergencies)』까지 발표했다. 탈시설 가이드라인은 협약 당사국의 의무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한국은 2008년 협약을 비준한 당사국이자, 헌법 제6조 1항에 따라 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따라서, 유엔의탈시설 가이드라인이 제시하는 당사국의 의무는 곧 한국 정부의 의무이다. 구체적 의무가 많지만 가이드라인 첫 부분에 나오는 의무 이행의 원칙을 다시 한번 힘주어 강조하고 싶다.

 

“당사국은 모든 형태의 시설수용을 폐지하고, 시설 신규 입소를 금지해야 하며, 시설에 대한 투자를 막아야 한다. 시설수용이 장애인의 보호 조치 혹은 ‘선택’으로 고려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 시설수용을 지속하는데 어떠한 정당한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당사국은 지역사회 지원과 서비스의 부족, 빈곤, 낙인을 시설 유지나 폐쇄 지연 정당화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긴급상황을 포함한 탈시설 가이드라인』(2022)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사무국장은 국내외 장애계를 연결하는 일을 하며 장애인권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과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기반하여 한국뿐만 아니라 지역적, 국제적 차원에서의 장애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1) 2013년 12월 9일,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발달장애인 거주시설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지역 센터의 전 거주자에게 공식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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