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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깊이읽기 [2022.11] 장애인 탈시설 정책 현황과 과제

글 이인영(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2과)

 

탈시설지원법안 발의 지지자가 '지역사회에서 나(도), 함께 산다' 손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제공:비마이너)
탈시설지원법안 발의 지지자가 '지역사회에서 나(도), 함께 산다' 손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제공:비마이너)

 

장애를 가진 사람은 특정한 곳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인식은 낡은 사고가 되었고,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통합적이며 자립적인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고, 국가와 사회는 이를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의 가치이다. 더욱이 집단적 수용이 가져오는 인권침해와 오랜 시설 수용 생활로 인해 무기력과 의존성 등 많은 병폐들이 알려지면서 유럽, 미국의 복지선진국은 이미 1960년대부터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자립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전환해왔다. 심지어 장애인 거주시설 폐쇄 조치를 단행한 국가들도 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장애인이 특정한 곳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 낡은 사고가 되어가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한민국 장애인 탈시설은 어떻게, 얼마만큼 진행되고 있는가?

 

 

한국 사회 장애인 거주시설 현황

 

장애인 거주시설은 1970년 「사회복지사업법」 제정을 통해 정비되었으며, 1990년대 허가제에서 신고제로의 전환과 2002년 미신고시설 양성화 대책 이후 양적으로 팽창하고 대형화되어왔다.

 

2000년 이후에도 장애인 거주시설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는데, 2009년 397개소에서 2017년 618개소로 약 56% 늘었다. 2012년에 장애인 거주시설 범주에 ‘단기·공동생활가정’이 포함되었는데, 장애인 거주시설에 ‘단기·공동생활가정’을 포함하면 2009년 1,019개소에서 2017년 1,517개소, 2019년 1,557개소로 약 50%가량 증가했다.

 

거주시설 이용 장애인의 수도 2009년 23,243명에서 2017년 30,693명으로 32% 정도 증가했다. 장애인 거주시설은 2020년에야 감소 추세로 돌아섰고, 이용 장애인 수도 2018년부터 30,152명으로 점차 감소 추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가 2020년 9월부터 2021년 1월까지 단기시설과 공동생활가정을 제외한 전국 장애인 거주시설 612개소, 24,214명을 전수조사한 바에 의하면, 장애인 거주시설 이용자 중 중증장애인은 98.3%를 차지하고, 그중 발달장애인이 약 80%인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영유아를 제외하고 장애인의 평균연령은 39.4세, 평균 입소기간은 18.9년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가족의 돌봄 부담과 국가의 민간시설 지원 정책

 

그렇다면, 국제사회 흐름과 달리 장애인 거주시설과 이용자가 증가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장애인에 대한 편견, 인식에 기인한다고 하나, 사회적 편견 때문에 함께해온 가족을 시설에 맡겨두는 가정은 없다. 단적으로 말하면 가족들이 장애인의 돌봄을 감당하거나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 가족주의에 기반해왔고 장애인 돌봄의 책임이 전적으로 가족에게 부여되어 왔다. 중증장애인의 돌봄은 온전히 부모, 형제의 몫이었고 급속하게 진행되어온 핵가족화와 가족해체, 점차 고령화되어 가는 부모와 경제·사회적 여건 등은 장애인 가정을 돌봄 에 지치게 했고, 장애인 가정에게 장애인 거주시설만이 유일한 대안이 되어왔던 것이다. 이와 함께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보다 민간시설을 보조하고 지원하는 국가정책이 거주시설을 확대하는 데 기여해왔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성장과 삶의 질 향상보다 분리·보호 선호

 

거주시설의 장애인은 지역사회와 분리된 시설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보호될 수는 있었으나,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거주시설에 입소하여 집단화된 거주환경 속에서 개인의 의사와 욕구를 제한받고, 사생활을 통제받아 왔다. 개인 발전의 기회나 개개인의 삶의 질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이 10년, 2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는 경제발전과 성장을 거치는 과정에서 거주시설의 장애인이 처한 인권침해적 상황 개선 노력이나 장애인 개개인의 성장과 삶의 질에 대한 고민 없이 민간시설을 보조하고 지원하면서 장애인을 분리·보호하는 정책을 선호해왔던 것이다.

 

 

장애인 탈시설을 향한 민간의 촉구

 

장애인 탈시설이 최근에야 부각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장애인 탈시설 이슈의 출발점은 20년을 거슬러 올라간 2003년경 정부의 미신고시설 양성화 정책에 대해 장애인 인권단체들이 반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2007년 석암재단 베데스타요양원의 장애인들이 ‘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시설비리 척결을 위한 운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특별시 제33대 시장이었던 오세훈 시장은 민간의 탈시설 요구에 부응하여 2008년 서울특별시정개발원에 의뢰하여 시설거주 장애인을 대상으로 ‘탈시설 욕구조사’를 진행한 바 있고, 2010년 장애인전환서비스지원센터를 설립하고 자립생활 체험홈을 시작하였다.

 

 

지방자치단체와 민간주도의 장애인 탈시설

 

2013년 서울시는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화 5개년 계획(2013~2017)’을 수립하여 장애인 탈시설을 추진하였고, 2018년부터는 2차 탈시설 계획을 통해 2022년까지 추진 중에 있다.

 

이어, 전주시는 2015년 자림원 사건을 계기로 자림원과 자림인애원 2곳에 대해 시설폐쇄명령을 내렸으며, 욕구조사 및 탈시설 연구용역을 거쳐 ‘전주시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화 추진계획(2015~2019)’을 수립하여 추진한 바 있다.

 

대구광역시는 대구시립희망원 사건을 전기로 1차 2015년~2019년, 2차 2020년~2024년까지 장애인 탈시설 자립지원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탈시설을 추진 중에 있다.

 

인천광역시는 다소 미진하지만 2019년~2023년 48명을 목표로 추진 중에 있으며, 광주광역시는 2017년~2022년 137명 탈시설을 목표로 추진 중에 있다.

 

이와 같은 지방자치단체의 탈시설 장애인 지원정책은 ‘중증장애인 자립지원’ 등의 조례에 근거한 체험홈·자립주택 등 탈시설 전환주거 제공, 탈시설 정착금 지급(7백만 원~13백만 원)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그 지원 규모가 지방자치단체마다 제각각이다.

 

서울과 부산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역의 자립생활센터에 체험홈 등의 운영을 위탁하거나, 거주시설 안에 체험홈 등을 설치하여 시설에 위탁하고 있다. 탈시설 정착을 위한 지원금 대상은 기초수급 및 차상위 계층으로 제한되고 있는데, 비수급 장애인이 자립할 경우 초기 정착금과 생활비 전체를 가족이 부담하거나 스스로 해결해야 하므로 가족들이 자립을 반대하거나 당사자가 자립을 희망해도 시도조차 하지 못 한다.

 

 

지역마다 제각각인 탈시설 지원책

 

지방자치단체별로 지원 내용이 다른 이유는 장애인복지시설 예산은 국비와 지방비 공동 형식이지만, 탈시설 예산은 100%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지자체의 재정부담 능력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이다. 또한 탈시설 추진 계획을 갖고 있지 않는 지방자치단체에 있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거주시설 장애인과 접촉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없기에 거주시설 장애인의 탈시설 의사를 확인할 수 없으며, 지방자치단체가 연계할 지역의 복지자원(활동보조 등), 체험홈 및 자립주택 이후 지역사회에서 거주할 수 있는 주택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탈시설 전환주거와 초기 정착지원금의 차등적 지원은 장애인의 탈시설 기회를 차단하거나 탈시설 기회의 형평성을 저해하고 있는데, 장애인이 어느 지역에 거주하느냐에 따라 탈시설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고, 박탈되기도 하는 것이다.

 

 

장애인 탈시설 정책 현황과 과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탈시설 정책에 대한 요구

 

민간의 탈시설 요구와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선도적인 탈시설 정책 추진은 중요한 진전이었다. 2014년 대한민국이 비준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기초한 장애인권리위원회가 우리 정부에게 ‘효과적인 탈시설 전략 수립과 추진’ 에 대한 권고를 잇따라 내놓자, 정부는 2018년 ‘탈시설 등 지역사회 정착 환경조성’을 국정과제로 채택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2018~2022)’에 ‘탈시설 주거지원 강화’를 목표로 설정하고,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 중 하나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세 개의 지방자치단체에 ‘장애인 자립생활 및 지역정착 지원모델’을 추진했다.

 

그러나 선도사업은 ‘자립체험주택, 케어안심주택 및 시설 소규모화’에 국한되어 이미 서울시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의 탈시설 경험과 성과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였고 추진 인력과 예산도 미미해서 전국적으로 확산하기에는 미흡하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탈시설 개념을 둘러싼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고, 탈시설로 인해 고용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종사자들, 시설운영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이견과 갈등도 분출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중앙정부의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장애인 탈시설 정책과 계획에 대한 요구가 강하게 제기되었다.

 

 

인권위,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 마련’ 권고

 

인권위는 장애인 탈시설은 이미 진행되고 있으나 탈시설 개념과 범주를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과 정책 혼동, 이해관계자들의 갈등, 지방자치단체 간 탈시설 지원책 격차로 인한 탈시설 기회의 형평성 문제 등이 국가 차원의 구체적 계획과 정책의 부재로 인해 발생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2019년 8월 22일 국무총리에게 장애인 당사자 및 가족, 시설운영자, 정책관계자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범정부·민간이 참여하는 장애인 탈시설 추진단’을 구성해 탈시설에 대한 논의와 협의하는 과정을 거쳐 국가 차원의 장애인 탈시설 계획이 담긴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 마련을 권고하였다.

 

특히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에 △탈시설 정책방향과 목표, 추진일정, 예산 △전담기구 및 전담부서 △지역사회복지서비스 확대 △거주시설 변환 및 전문인력 훈련 계획 △지역사회기반의 다양한 주거서비스 도입 △관련 법령 정비 △탈시설 정책에 대한 모니터링 △탈시설 로드맵 공표 및 사회적 인식과 이해 증진방안 △미성년 장애인 및 다른 유형의 시설거주 장애인 탈시설 등의 내용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함을 권고했다.

 

 

정부, ‘탈시설 장애인 자립지원 로드맵’ 발표와 후속 조치

 

인권위의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 정책권고에 대해 정부의 답변은 2년여의 긴 시간이 소요되었고, 정부는 2021년 8월 2일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의 탈시설 장애인 자립지원 로드맵은 시설정책에서 탈시설 정책으로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있었으나, 인권위가 권고한 정신요양시설, 노숙인 시설 등 다양한 장애인 거주시설 유형에 대한 탈시설 계획이나 모니터링 체계 구축 등이 미비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탈시설 장애인 자립지원 정책의 일환으로 2021년 8월 27일 탈시설·자립지원을 위한 민간컨트롤타워의 역할을 수행하는 중앙장애인지역사회통합지원센터 개소하였다. 2022년 3월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시범사업’ 공모를 통해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인천광역시, 광주광역시, 충청남도 서산시, 전라북도 전주시, 전라남도 화순군, 경상북도 경주시, 제주도 제주시 등 이들 10개 지역을 선정했다. 선정된 10개 지역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 동안 장애인이 안정적으로 지역사회에 자립할 수 있도록 자립 경로를 조성하고 체계적인 서비스 지원 모형을 마련할 계획이다. 그리고 서울특별시는 2022년 6월 21일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최초로 장애인 탈시설 지원조례를 제정하였다.

 

 

탈시설과 지역사회 통합적 삶을 위한 과제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장애인 탈시설을 위한 국가 차원의 계획이 수립되었고, 장애인 탈시설에 대한 경험과 기반을 갖춘 지방자치단체들이 늘어가고 있다. 아울러 장애인 탈시설에 수반되어야 할 인력과 예산에 대한 법적 근거가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2020년 12월 10일 ‘장애인 탈시설 지원법’이 국회에 발의되었고 현재는 장애인 탈시설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다른 목소리가 담긴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유럽, 미국 등 복지선진국의 탈시설 과정이 쉽게 이뤄진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도 장애인 탈시설 과정에 복지노동자들의 반대가 있었고, 시설에서의 안정된 생활에 비추어볼 때 지역사회가 불안정할 수 있다는 가족들의 걱정이 뒤따르기도 했다. 그들의 탈시설 성공 이면에 국가가 주도적으로 계획을 가지고 가족과 관계자들을 설득하고, 안심시켜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애인 탈시설에 대해 서로 다른 목소리인 것 같지만,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이나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의 삶을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가족은 없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의 삶의 질을 책임지겠다는 국가의 의지와 약속을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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