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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깊이읽기 [2022.11] 『긴급상황을 포함한 탈시설 가이드라인』의 의미

글 김미연(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부위원장)

 

장애인 거주시설, 안전한가?

 

최근, 장애인 거주시설의 장애인 학대와 사망 사건에 관한 뉴스가 그 어느 때보다 자주 방송사와 일간지 그리고 신문 등에 보도되고 있다. 충격적인 것은 대부분의 가해자들이 장애인들을 보호하고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사회복지사와 종사자 심지어 시설 책임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사회복지사가 장애인을 폭행해 갈비뼈 두 대가 골절되는 사건에서부터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장애여성이 사망하는 사건까지, 그 정도와 끔찍함이 사회에 알려지면서 전 국민의 분노를 샀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지난해 7월, 대구 달성군에 있는 장애인 거주시설 한사랑마을(사회복지법인 우함복지재단)에서 중증장애여성이 휠체어 벨트에 목이 졸려 실신 후 병원에 입원 치료 도중 끝내 사망한 일이다. 경위는 30대 지적장애여성을 사회복지사가 단지 다른 장애인의 양말을 벗기려 한다는 이유로 행동을 제지하기 위해 휠체어에 앉히고 벨트를 채워 문틈에 고정시키면서 발생했다. 여기서 벗어나려던 여성이 휠체어 벨트에 목이 졸려 실신하면서 결국 두 달이 넘는 입원 치료 과정에서 사망하였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왜 장애인 거주시설에서는 끊임없는 학대와 폭력이 보고되고 있는가.

 

보건복지부와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통계에 의하면 피해장애인이 거주하는 곳에서 학대가 많이 일어났고, 이 중에서도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가장 많은 학대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주요 학대행위자는 다름 아닌 지인과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로 나타났다.

 

어떻게 하면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스스로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다른 사람들과 같이 안전하고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 해답으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탈시설을 말하고 있다.

 

 

장애인 학대 발생장소
출처 : 보건복지부와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2021 장애인학대 현황보고서』

 

주요 학대행위자
출처 : 보건복지부와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2021 장애인학대 현황보고서』

 

탈시설은 장애인 인권과 자유 보장을 위한 길

 

지난 9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일반논평 제5호, 19조 지역사회에 살 권리에 관한 조항과 제14조 장애인의 자유와 안전에 관한 내용을 보완하기 위해 『긴급상황을 포함한 탈시설 가이드라인(Guideline on deinstitutionalization)』을 발표하였다. 이 문서는 장애인이 Covid 19와 같은 자연재해, 기후변화 그리고 전쟁과 같은 긴급상황에서도 지역사회에 융화되어 자유롭고 자율적으로 살 수 있도록,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한 당사국이 장애인의 시설 수용을 방지하고 탈시설 계획을 수립하는 데 필요한 지침과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이드라인에서 ‘탈시설’은 협약 당사국들의 정책 방향으로서가 아닌 ‘장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이행 의무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신규입소나 시설에 대한 투자 그리고 탈시설을 지연시키는 행위들을 전면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무엇보다 주의할 것으로 시설에서 완전한 지역사회로의 전환 과정에서 소규모 그룹홈과 임시보호 등이 탈시설의 대안이 아닌, 결국 장애인을 다시 지역사회로부터 분리하는 서비스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장애인의 시설 수용을 국가에 의한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차별 행위이자, 일종의 감금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탈시설 가이드라인은 시설보호 정책으로 인한 차별과 자유를 제한받은 시설 생존장애인들에게 당사국 정부는, 공식 사과와 재정적 보상을 넘어 지역사회에서 분리되어 감금과 같은 생활을 해 온 것에 대한 배상을, 탈시설 정책 수립과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당사국이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하여 시설 수용제도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시설 생존장애인들이 겪은 차별과 인권침해 등을 조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에서 말하고 있는 ‘탈시설’은 장애인 복지서비스 정책의 변화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신체적 지적 그리고 정신적 결함으로 인해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지역사회에서 융화되어 살 수 있도록 인권의 관점에서 거주시설을 바라보고 정부의 시설 중심 장애인정책을 지역사회 중심으로 전향적으로 전환해 갈 것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는 시설을 설립하고 운영해 온 위탁운영 주체들의 이해와 인식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이슈트반 체르벤카 씨가 탈시설 후,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나아가는 자립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이슈트반 체르벤카 씨가 탈시설 후,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나아가는 자립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장애인 인권에 기반한 탈시설 계획 수립 필요

 

인류 역사는 장애인 등 약한 자들을 배제하고 소외시키고 심지어 죽게 내버려 두었다. 독일의 나치 시대에는 ‘T4’라는 작전명으로 장애인들이 학살당했다. 복지 시대에는 버려진 아이와 장애인들이 보호의 이름으로 시설로 보내져 왔다. 그들은 살아있어도 결코 존재하지 않은 익명의 존재이다.

 

언제까지 단지 장애를 이유로 존엄한 인간을 이렇게 시설에 살게 할 것인가. 기한 없는 구금이 시설에 사는 장애인들의 삶이다. 개인의 생활도 내일에 대한 기대도 꿈도 없이 장애아동들은 그렇게 나이 들어간다.

 

얼마 전 헝가리에서 탈시설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발리디티 재단(Validity Foundation)1)이 다큐멘터리 단편영화를 제작, 발표했다. 이 영화는 발리디티 재단 회원인 이슈트반 체르벤카(István Cservenka) 씨가 헝가리 장애인 수용시설에서 30년 동안 구금된 후, 자유로운 삶을 향한 그의 탈시설 자립생활 분투 과정을 담은 16분짜리 인생 다큐멘터리이다. 자율성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 온 힘겨운 여정과 자기결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후견인이 지정되는 것을 막기 위한 그의 투쟁을 기록했다. 이 영화는 그의 인생을 통해 헝가리의 장애 차별에 기반한 시설 수용제도의 폐지와 탈시설 후 후견인제도를 종식시켜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들은 묻는다. 중증지적장애인이 어떻게 남의 도움 없이 시설에서 나와 독립적으로 살 수 있겠는가. 이슈트반 체르벤카 씨는 전 세계의 장애인, 특히 지적장애인을 대표해서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평등하게 사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더 많은 이슈트반 체르벤카 씨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장애인 거주시설의 장애인들이 자신의 삶을 찾아서 시설을 떠날 것이다.

 

다가온 미래는 이미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한 당사국, 대한민국 정부가 인권에 기반한 탈시설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통해 협약 이행의 궁극적인 목적인 장애국민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보장하여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고 자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김미연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부위원장은 장애여성문화공동체 대표로 활동하고 장애인 인권 증진을 위한 국내외 관심 제고와 국제사회의 협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022 아시아태평양 정신장애인 인권 사이드 이벤트 전시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장애인 수용시설 실태
인도네시아 장애인 수용시설 실태

 

네팔 장애인 수용시설 실태
네팔 장애인 수용시설 실태

 

인도 장애인 수용시설 실태
인도 장애인 수용시설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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