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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동행 [2022.11] [유해정이 만난 사람들] 탈시설 이후의 삶

 

30년 가까이 장애인 거주시설 인강원에서 살아온 발달장애인 신현상(46세) 씨는 서울시 장애인지원주택사업1) 대상자로 선정되어 2021년 3월 성북구 인화빌로 이사했다. 당시, 인강원에서 함께 생활했던 열한 명의 장애인도 이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자기만의 공간을 갖게 된 그들은 슈퍼바이저, 코디네이터, 주거코치,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살면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2)에서 일하고 있다. 시설에서 나온 지 1년 8개월의 시간이 지난 지금, 신현상 씨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원주택에서 살고 있는 발달장애인 신현상 씨와 장애인 최광철 씨의 아버지 최재봉 씨 그리고 인화빌 총괄 송충기 슈퍼바이저를 만나, 탈시설 이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탈시설 이후의 삶

 

유해정 최재봉 선생님, 아드님 최광철 님의 상황과 지원주택에 입주하게 된 과정에 대해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최재봉 우리 광철이는 91년생인데, 인강원에 20년 정도 있었어요. 인강원의 특수학교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최고 과정을 마치고 생활하는 중에 장애인지원주택사업에 선정되어, 인화빌에 왔습니다.

 

사실, 탈시설을 해서 지원주택에 오는 것을 많이 망설였어요. 오래된 정책도 아니고, 단체생활을 하다가 독립하는 것에 대한 염려였죠. 바깥 세계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은 능력 밖의 일로 생각했어요. 특히, 낮에는 선생님들이 도움을 주지만, 밤에는 혼자 잠을 자야 하잖아요. 여러 사람과 같이 자다가 혼자 자야 하는 부분이 불안했어요. 또 보호자 입장에서 세상이 험악하다 보니 광철이가 좋은 활동지원사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고요. 경험을 못 해봤기 때문에 많이 불안했죠.

 

 

지원주택 입주 장애인 최광철 씨 아버지 최재봉 씨
지원주택 입주 장애인 최광철 씨 아버지 최재봉 씨

 

유해정 아드님께서 지원주택에서 1년 반 넘게 생활하고 계세요. 최광철 님과 아버님의 만족도는 어떤가요?

 

최재봉 광철이는 장애가 심해 전혀 대화나 소통이 안 되고 눈치와 경험으로 교감하다 보니 어떤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80% 정도는 만족해요. 제도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부분도 많이 있지만, 슈퍼바이저, 코디네이터, 주거코치, 활동지원사들께서 성의 있게 광철이를 잘 돌봐주고 계시죠. 광철이가 정서적으로 전보다 좋아진 것 같아요.

 

 

유해정 시설에 있었을 때와 독립적인 자기 공간에서 생활하는 느낌이 다를 것 같아요.

 

최재봉 다르죠. 시설에서는 여러 사람이 같이 생활하니까 자기의 요구나 욕구를 표현해도 관철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잖아요. 그럴 때 스트레스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활동지원사로부터 1:1 케어를 받고 있고 요구를 들어주셔서 스트레스가 정말 많이 해소되었죠. 보호자 입장에서도 대체적으로 좋은 것 같습니다.

 

 

지원주택 ‘인화빌’ 슈퍼바이저 송충기 씨
지원주택 ‘인화빌’ 슈퍼바이저 송충기 씨

 

유해정 송충기 슈퍼바이저님, 인강원도 탈시설 정책 속에서 시설전환을 시범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 지원주택 운영에 대한 소개와, 장애인분들이 인강원에서 지원주택으로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설명을 부탁드릴게요.

 

송충기 저는 현재 인강재단 소속으로 5년째 일하고 있고요. 발달장애인들과는 20년 가까이 생활해 왔습니다. 지금은 서울시 장애인지원주택 운영기관으로 인강재단이 선정되어 슈퍼바이저로서 일하고 있습니다. 코디네이터 세 분, 주거코치 네 분, 저까지 총 여덟 분이 인화빌 지원주택에서 일하고 있죠. 얘기하신 것처럼 인강재단이 시범적으로 전환 작업 중인데, 지난해 3월, 1차적으로 지원하신 열두 분과 함께 지원주택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한 서른 분 정도가 지역사회로 나오는 과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장애인지원주택 '인화빌' 내부 모습
서울시 장애인지원주택 '인화빌' 내부 모습

 

유해정 장애인들의 지역사회 자립을 위한 지원들과 프로그램은 어떻게 운영이 되고 있나요?

 

송충기 발달장애가 심한 분들이 시설에서 나와 여러 동네로 뿔뿔이 흩어져서 독립된 한 가구로 사는 것은 아직 어렵다고 봅니다. 그래서 한 빌라에서 같이 생활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무슨 프로그램이 있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세요. 사실, 프로그램을 통해 성인들이 자기 삶을 살 수 있게 돕는다는 것은 참 답답한 일이죠. 우리는 이들이 어떻게 하면 보통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고민하며 움직입니다. 첫째는 직장을 갖게 돕는 것입니다. 서울시가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를 만들어서, 이곳에 있는 분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2021년, 열 분이 취직해서 주 15시간, 월 60시간을 일합니다. 보통 사람처럼 아침을 먹고 일하고 퇴근하는 거죠. 올해, 두 분도 일하기 시작해서 모두 열두 분이 일하고 있습니다.

 

둘째, 아프면 어떻게 하느냐에 관한 문제입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주치의제도가 정착되어 있지 않잖아요. 감사하게도 우리 주변에는 병원이 많습니다. 동네 사람들처럼 우리도 동네 병원을 이용합니다. 자주 이용하니 병원에서도 우리들을 잘 알고 진료해 줍니다. 거의 주치의나 다름없죠. 문화생활에서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활동지원사들이 돕습니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잘 주무셨는지, 컨디션은 어떠신지 묻고 확인하는 거죠. 만약 심리적으로 불안하면, 심리안정지원과 상담을 전문적으로 하는 기관과 연결해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집에 오면 어떤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냥 쉬잖아요. 우리는 개개인 상황에 맞게 지원할 수 있어요. 텔레비전을 12시에 보든, 4시에 보든, 지원을 할 수 있죠. 컨디션이 안 좋으면 회사에 연락해서 휴가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사람들은 자꾸 데이터를 이야기하는데, 데이터에 잡히지 않는 편안함이 있잖아요.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거죠.

 

 

유해정 장애인들이 자립하기 위해서는 활동지원서비스, 주거, 소득 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최재봉 선생님께서는 이 세 가지 중에서 가장 충족되기 어려운 부분은 무엇이며,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최재봉 사실, 활동지원사님들이 제일 중요한 위치에 계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장애인들과 대면하는 분들이 바로 활동지원사님들이시니까요. 일단은 활동지원사님들이 아주 부족합니다. 제도적으로 활동지원사를 육성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해요. 보호자들이 활동지원사가 되어 케어하는 방법도 좋습니다. 투명하게만 관리가 된다면 그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봐요. 그리고 의료가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의료 부분에 대해서 1:1 맞춤형으로 개선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유해정 여전히 발달장애인들의 자립은 두렵고 불가능한 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분이 지원주택을 통해 자립할 수 있을까요?

 

최재봉 보호자 입장에서는 탈시설은 굉장히 걱정되는 과정 중 하나죠. 진행 과정을 보면 일정 기간을 두고, 그 기간 안에 자립하라고 강요하거든요. 지원주택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오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지원주택체험, 지원주택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탈시설을 해서 지원주택에 갔는데, 적응하지 못하면 갈 곳이 없어요. 그때, 2차 대안이 있어야 보호자들이 안심하고 지원주택에 지원하겠죠. 저도 신청했는데 덜컥 선정되니까 겁이 났죠. 이런 점들이 선행되어야 보호자들이 이 제도를 믿고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송충기 다행히 입주민들은 지원주택이 있고, 직장을 다니잖아요. 하지만 아직도 절대적으로 지원주택이 부족합니다. 일할 수 있는 일자리도 부족합니다.

 

그리고 입주민이 일해 수입이 생기면 국가로부터 받는 생계지원비가 줄어들어요. 열심히 일하지만, 사실 돌아오는 건 크지가 않거든요. 이런 부분들이 개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원주택이 생기더라도 실무적으로, 저희가 법적인 권한이 없어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료 문제에 대해서도 병원에서 치료 시에 전신마취가 필요하다고 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습니다. 어떤 증상이 나왔다고만 전해줄 수 있습니다. 장애인분들도 성인인데, 동의는 부모님만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분들도 있고, 관심이 없는 부모님들도 있습니다. 우리 입주민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 모두가 겪는 어려움이죠.


 

서울시장에게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의료원, 서울장애인치과에서만이라도 긴급상황을 대비해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법에서 걸린다고 하며 후견인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후견인 신청했는데, 2~3년이 걸려도 후견인 세우기가 어렵습니다. 후견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홍보도 부족합니다. 엘리트 코스를 통해 후견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현장에 나오지 않죠.

 

후견인 제도에 대해 알리고 후견인 교육을 받아도 후견인이 되기까지 법원에서만도 6개월에서 1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그다음에는 또 매칭되어야 하잖아요? 매칭되어도 어렵습니다.

 

 

유해정 발달장애인의 경우 활동지원시간이 지체장애인에 비해서 매우 부족하다 보니 자립과 지원에 큰 어려움을 겪더라고요.

 

송충기 네, 활동지원시간이 발달장애인에게는 턱없이 부족해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탈시설 이후 정착을 위해 서울시가 2년간 자립정착지원으로 120시간 추가해주었습니다.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합니다. 감사하게도 그 공백을 활동지원사 선생님들과 지원주택 인력들이 열심히 메워주고 계세요. 상대적으로 남성 활동지원자들이 부족하거든요. 그런데 인권을 강조하다 보니 남성이 남성을, 여성이 여성을 케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너무 꽉 차 있어요. 그리고 발달장애인 케어는 계속 따라다녀야 합니다. 24시간 주거를 책임지면서 식사와 청소를 도와야 하니, 활동지원사들이 지쳐서 그만두는 거죠. 대부분 연령이 높으셔 신체적으로도 힘들어서 그만두시는 거죠. 해결방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중증장애인들을 돕는 분들에게는 시간에 따른 인센티브를 더 주자. 서울시의 2년간 120시간 지원에 대해서는 2년이 아닌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입주민들은 이곳에서 1~2년만 살 것이 아니거든요. 20년은 사셔야 하죠. 그리고 그 이후의 삶도 있고요.

 

 

유해정 지원주택을 한 단어로 표현해 소개해주신다면?

 

최재봉 ‘땡큐’다. 100% 만족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앞으로 미비한 부분이 점점 보완되면 좋겠죠. 이러한 혜택을 받으면서 산다는 것은 정말로 감사하죠. 활동지원사분들이 더 많아져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랍니다.

 

송충기 지원주택에서 2년 가까이 입주민들을 지켜보니, 그들의 삶이 참 편안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더 많은 분이 지원주택에서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지원주택 공급량을 신속하게 많이 늘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유해정 활동가는 인권기록센터 ‘사이’ 활동가이자,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기록과 연구 모두 인권활동의 일환이라는 생각으로, 동그랗게 모여 앉는 세상을 위해 고통과 희망의 뿌리를 삶의 언어로 기록하고 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금요일엔 돌아오렴』, 『나는 숨지 않는다』가 있습니다.

 

 

지원주택에서 사는 발달장애인 신현상 씨
지원주택에서 사는 발달장애인 신현상 씨

 

신현상 씨가 주연배우로 활약한 연극 <등장인물> 포스터
신현상 씨가 주연배우로 활약한 연극 <등장인물> 포스터

 

지원주택에서 사는 발달장애인 신현상 씨와의 미니 인터뷰

유해정 시설에서는 얼마나 생활하셨어요?
신현상 인강원에서 20년.
송충기 인강원에서 20년 동안 계시다가 사정이 생겨서 퇴소한 후 다시 오셔서 10년을 더 생활하셨으니, 총 30년을 인강원에 계셨어요.

유해정 이곳 지원주택의 생활은 어떠세요?
신현상 드라이브하고, 외식하고. 응원도 해. 텔레비전 보고 응원도 할 수 있어. 여자 핸드볼팀, 잘해요. 월드컵, 브라질 축구 봐야 해.

유해정 예전에는 응원을 못 했나요?
신현상 인강원에서는 못 했어. 여기서 하는 거죠. 내 방도 있어, 혼자 써.

유해정 직장을 다니신다고 들었어요. 언제부터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
신현상 1년 8개월, 하루에 4시간 일해요. 노래 만들기, 그림 그리기, 아프리카 댄스…. 일이 재밌어. 월급은 저축해요. 여자친구 생일 선물 사줘야 해요.

유해정 지원주택에서 생활하시면서 새로운 꿈 같은 게 생겼을까요?
신현상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어. 공연3)도 했어. 도전하고 싶어.

유해정 시설에 계셨을 때는 못 해본 생각인가요?
신현상 예전에는 생각도 못 했어. (그런데 지금은) 유권자니까. (대통령 선거에서) 000씨 찍었어.

유해정 인강원에 계신 친구들에게 지원주택을 소개한다면?
신현상 나와. 지원주택이 훨씬, 훨씬 나아!

유해정 지원주택 생활이 만족스러우신가 봐요. 10점 만점이라고 하면, 몇 점 정도 줄 수 있을 것 같으세요?
신현상 200점!

유해정 지원주택에서 생활하시면서 이런 건 좀 바뀌면 좋겠다, 아쉽다고 하는 점이 있을까요?
신현상 아쉽지 않아. 훨씬 편해요.

 

1) 지역사회 내 자립을 원하지만 혼자서는 독립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을 대상으로 주거서비스와 주택을 함께 지원하는 사업
2) 심한 장애로 인해 일자리 참여 기회조차 얻기 힘든 중증장애인에게 공공일자리 참여를 통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의 기회를 제공하여 중증장애인의 사회참여 확대와 소득보장 지원을 위한 장애인일자리사업
3) 신현상 씨는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에 다니면서 연습한 성과를 바탕으로 2022년 11월 16일부터 2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막을 올린 연극 <등장인물>에 주연배우로 참여했다. 이 연극은 발달장애인들이 지역사회로 나와,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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