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 휴먼레터 2007년 9월 둘째주 수요일
인권위, 성희롱 3,000만원 배상 권고
  - 피해자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 부르는 성희롱 이제 그만! -


“대학 졸업 이후부터 국내외 NGO에서 활동하면서 특히 캄보디아와 같은 제3세계 국가에서 빈민구제나 교육 관련 활동에 관심이 컸습니다. 마침 해외로 자원봉사자를 파견하는 민간단체에서 캄보디아로 파견할 간사를 모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얼마간의 활동비와 숙식만 제공되는 조건이었지만 평소 원했던 일이라 뛰는 가슴으로 캄보디아로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가 산산이 부서지게 된 것은 ‘복지센터’ 도착 첫날부터였습니다. ‘복지센터’ 소장은 군인으로 정년퇴직을 한 60대 남성이었는데, 자원봉사 차원에서 캄보디아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말과는 달리, 진정인을 만나자 마자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와 행동을 보였습니다. 소장은 자신의 변태적인 성생활에 대해서 진정인에게 상세히 늘어놓거나 “남자친구와 자봤냐, 이○○ 간사가 샤워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흘러내리는 물줄기에 여인네의 나체가 상상되어 이 간사를 상대로 손장난을 좀 했다, 여자라면 다 좋아하지만 여자가 원하지 않을 때 강제로 덮치지는 않는다“는 등의 말을 하고, 윗옷을 벗은 상태에서 자신의 몸을 과시하며 ”여자들은 이런 거에 황홀해하지 않냐”라고 묻거나, 진정인의 옆방을 사용하던 피진정인이 포르노를 크게 틀어 놓아 나무 벽 사이로 흘러나오는 포르노 배우들의 신음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진정내용 중)

이번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저는 지난 7월, 3박 4일의 일정으로 캄보디아에 다녀왔습니다. 캄보디아 하면 가장 먼저 ‘앙코르왓트’ 관광이 떠오르겠지만, 이번 방문은 관광과는 아주 거리가 먼, 성희롱 사건의 현장 조사가 목적이었습니다. 진정인은 피진정인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하나 피진정인은 이를 모두 부인하였고, 사건은 한국도 아닌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성희롱 사건은 대부분 진정인과 피진정인이 단 둘이 있는 상태에서 발생됩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피해자들이 신고를 꺼리고 신고가 되더라도 피진정인은 오히려 “증거가 있냐”라며 당당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조사관들은 우선 당사자의 주장을 세심하게 들어보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조사할 거리’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거짓을 주장하는 사람은 그 구체성과 일관성에 문제점이 들어나기 마련인데, 조사관은 그것을 실마리로 해서 다음 단계 조사를 진행해 갑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 피진정인의 언행으로 보아 ‘복지센터’에서 다른 피해여성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피진정인과 함께 일했던 여성 직원들은 진정인 외에 2명이 더 있었는데 모두 캄보디아인 이었습니다. 진정사건 조사를 위해 국외 출장을 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어렵게 출장 허가를 받아 진정인과 피진정인이 일하던 프놈펜을 찾았습니다.

당시 피진정인과 일했던 캄보디아 여성분들은 이미 ‘복지센터’를 퇴직한 상태였기 때문에 현지 한인들의 도움으로 겨우 그 중 한분을 찾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분이 다른 여성 직원의 피해내용도 잘 알고 있었고, 진정인으로부터 피해내용을 들었다는 분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피진정인은 이들 현지 직원들에게도 진정인에게 했던 것과 같은 유사한 행동을 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피진정인은 캄보다아 여성 직원들에게도 본인 샤워 중에 수건을 가져다 달라거나, 포르노를 함께 보자는 등의 요구를 지속하였고 기회가 될 때마다 여성 직원들을 뒤에서 껴안으며 남자 어른이 젊은 아가씨를 안아주는 것은 한국의 문화라고 말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번 진정사건은 지난 8월 30일 ‘차별시정소위원회’ 피진정인에게 3,000만원이라는 거액의 손해배상 권고가 내려졌습니다. 그동안에도 몇몇 성희롱 사건에서 해당 사건의 피진정인에게 손해배상을 권고한 사례는 있었으나 이 같은 거액의 손해배상액을 권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피진정인이 성희롱을 지속적으로 행한 점, 피진정인은 제3세계 국가들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운영되는 NGO 복지센터의 소장으로서 보다 높은 도덕적 경각심과 책임감이 요구되는 직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직위를 이용하여 캄보디아 여성 직원들에게까지 성희롱을 했던 점, 진정인이 본 사건 성희롱 피해로 인하여 만성적 수면장애, 급체, 소화불량 등 육체적 고통을 겪었고, 성희롱 피해이후 갑자기 퇴직함으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경력단절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며, 이후 진실 규명을 위해 상당한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겪었던 점 등을 종합하여 피진정인에게 고액의 손해배상을 권고한 것입니다.

현지 캄보디아 ‘복지센터’에는 새로운 여성 간사들이 파견되어 일하고 있습니다. 양철지붕으로 된 목조건물은 오전 10시만 지나도 그야말로 사우나를 방불케 했습니다. 이들은 에어컨도 없는 이곳에서 캄보디아 대학생들에게 한글이나 영어를 가르치고, 봉고차에 동화책이나 교구들을 싣고 놀거리도 없이 방치된 캄보디아 아이들을 찾아다닙니다. 운영비를 아끼겠다고 가장 싼 교통수단인 오토바이 뒷좌석도 마다하지 않는 그들은 캄보디아 아이들의 맑은 눈을 떠올리며 오늘도 열심히 뛰어 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행여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계신 분들이 피진정인의 성희롱 사건으로 인해 의욕을 잃을까 걱정이 됩니다.

어느새 진정사건도 일단락되었고, 그 사이에 무더위도 가시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캄보디아의 뜨거운 태양아래, 참고인들을 만나기 위해 ‘뚝뚝’을 타고 이리저리 헤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올 여름은 내 생에서 가장 뜨거운 여름 중의 하나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글 : 국가인권위 성차별팀 최은숙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