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거리라는 측면에서 볼 때, 학력위조 파문은 마치 ‘마르지 않는 샘’처럼 보인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사건으로 학력위조 사건이 촉발된 지도 상당한 시일이 지났다.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건, 대통령선거 경선 등 메가톤급 화제들이 계속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으니, 웬만한 화젯거리는 그만 잦아들 만도 한데, 학력위조 이야기는 끊일 줄 모른다. 물론 시작은 신정아, 김옥랑 등 졸업장·학위증 등 사문서 위조 행위로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할 사건으로부터 시작했으나, 심형래, 오미희, 윤석화, 최수종 등 연예인으로 옮겨가면서 사안의 성격도 ‘불법성’에서 ‘비양심’ 혹은 ‘부도덕’으로 옮겨갔고, 그에 따라 그리 심각하지 않은 가십거리로 전락한 느낌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여태까지 다 알고 있었듯, 학력위조가 이토록 만연한 것이었음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되는 씁쓸한 사건들임에는 분명하다.

이 학력위조 파문의 본질은 크게 두 가지가 아닐까 한다. 하나는 그야말로 학력 혹은 학벌과 관련된 것이며, 다른 하나는 ‘교수’라는 직업과 관련된 것이다. 두 문제는 성격이 다소 달라 한 지면에서 거론하기에는 다소 무리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학력의 문제만 이야기하도록 해보자.

사실 오미희나 윤석화, 최수종 등 연기자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연기 능력과 학력·학벌은 별 관계가 없다. 즉 자신의 직업적 능력과 별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거짓말을 한 것이 그저 ‘폼 나는’ 액세서리 정도를 걸친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자신의 직업적 능력과 무관한 그 액세서리가, 왜 그토록 거짓말을 해야 할 정도로 ‘폼 나는’ 것이었느냐에 있다.

대학을 나왔으면, 혹은 일류 대학을 나왔으면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하는 통념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일까?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태어나 성장하는 내내 무언가에 기대어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신을 다른 사람과 차별 짓는 태도가 매우 만연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부모의 재산에 기대어 남을 무시했다. 자기 집보다 작고 초라한 집에 사는, 그래서 입성도 변변치 않은 아이들을 우리는 무시했고, 그래야 마땅한 것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심지어 부모들은 그런 아이들과 놀지 말라고까지 했다. 학교에 들어가면서 그 척도는 성적으로 바뀐다. 물론 부모의 재산 정도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성적이라는 척도를 넘어설 수는 없다. 이제 부모들은 가난한 아이와 놀지 말라고 가르치는 대신, 공부 못하는 아이와 놀지 말라고 가르친다.

무려 12년 동안 획일화된 성적 체계에 의해 서열화된 우리는, 대학입학에서 그 최종적인 결실을 보게 되고, 그것을 평생의 서열로 여기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스무 살 넘게 누군가를 무시하고 누군가에게는 주눅 들면서 살아온 서열적 사고방식에서 우리는 결코 벗어나지 못했고, 심지어 그것이 사회에서의 서열화와 직결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학력과 학벌에 따라 이후 자신의 소득의 정도가 결정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연기자나 가수처럼, 학력과 소득이 결코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도, 20년 가까이 지녀왔던 성적에 근거한 위계의 사고방식을 쉽게 깨지지 않고, 결국 대학(혹은 대학원)을 정점으로 한 학력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학력위조처럼 부도덕함과 비양심을 저지를 수 없는 사람들은, 대신 ‘학력 세탁’의 방법을 선택한다. 지금의 수많은 대학생들이 선택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즉 이른바 아래 순위의 대학을 다니다가, 편입이나 재입학, 혹은 대학원 진학을 계기로 이른바 높은 순위의 대학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러니 편입 철만 되면, 서울의 몇몇 명문 대학을 제외한 전국의 대학이 편입으로 몸살을 앓는 것이다. 학생들은 편입학원에서 공부하여 다른 대학으로 옮겨가고, 대학의 등록금 수입을 걱정해야 하는 대학당국은 교수들을 동원하여 학생들의 유출을 막느라 고심을 한다.

하지만 막상 그 학교에 들어가고 나도, 그는 평생 편입생이다. 원래 고등학교 졸업하고 들어간 학교가 어디였는가 하는 딱지는 그에게 평생 따라다닌다. 왜 함께 공부를 했는데도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결국 우리 사회의 사고 메커니즘은, 실력이 아닌 서열화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가 아니라, 어느 서열에 위치시켜야 하는 사람인가를 가리는 것이 더 중요하고, 따라서 어떤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위계와 차별을 만드는 것이다.

여자니까, 가난하니까, 학력이 낮으니까, 장애가 있으니까, 피부색과 인종이 다르니까, 우리는 차별한다. 사실 그것들은 그의 능력과 무관하다는 점에서 액세서리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액세서리를 근거로 위계와 차별을 만든다. 학력위조의 문제는 학력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어떤 꼬투리를 만들어서건 차별을 만들고야 마는, 우리 사회의 반인권적 성향에 있다.

 이영미(대중문화예술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