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가협 활동이 어느덧 스물 두 해가 되었다. 결코 짧은 세월은 아니었는데, 화살같이 지나 버렸나 싶다. 막내아들이 대학 3학년 때(1985년), 민정당 가락동연수원 점거 사건으로 처음 잡혀 갔을 때는 천지가 노랗고 덜컥 병부터 나서 면회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다행히 초범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이듬해 5월경(1986년) 학교에 간 아들이 없어졌다. 아들의 생사여부를 백방으로 알아봤으나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점 잘 친다는 용한 할머니를 찾아가니, “지금 아들이 다 죽어가고 있다. 컴컴한 곳에 있다”고 했다. 일주일 만에야 겨우 남영동 대공분실에 잡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남영동으로 쫓아가 항의했는데 우리 가족들에게 수사관들은 내 자식이 ‘빨갱이’며 위험인물이라고 했다.

그 당시는 잡혀간 사람들 열이면 열, 고문으로 공포와 고통을 줘서 죄인을 만들었다. 전기고문, 주리 틀기, 원산폭격, 칠성판 고문, 고춧가루 퍼붓기 등 그 이름은 일일이 알 수 없으나, 고문사실을 침소봉대하고 사건을 조작하여 국민을 속이며 공포 정치를 하고 있었다. 고 박종철 열사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당하여 죽음에 이르자 세상이 시끄러워졌다. 막내아들도 대공분실에서 조사 받을 때 욕조에 수 없이 집어넣어 겁을 줬다는 사실을 재판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2007년 봄, 종철이가 죽은 남영동 대공분실이 “경찰청 인권센타”로 바뀐다고 하여 자문위원 자격으로 둘러보았다. “509호실”이 억울하게 죽은 종철이의 넋이 서린 듯 하여 함께 간 종철이 아버님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아들이 잡혀갔을 때, 나는 아들이 선배의 꼬임에 넘어간 것이니 내 자식은 석방되겠지 싶어 검경과 법원에 “한때 실수고, 부모가 타이르겠으니 석방해 주십시오.” 라고 탄원서도 보내고 아들에게 반성문도 쓰라 하였다. 그러나 이내 나의 어리석음을 곧 알게 되었다. 장하다 칭찬은 못하더라도 탐욕스러운 권력자의 희생물로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이후 구속자를 둔 모든 어미들은 합심하여 석방운동과 그 자들의 거짓을 폭로하고 고문으로 얼룩진 조작임을 세상에 알리고 양심수 석방과 악법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치고 다녔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85년 12월 12일에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가 만들어졌다. 삼엄한 원천 봉쇄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출범했으나 학생 양심수 학부모들의 활약은 대단해서, 몸을 사리지 않고 저돌적으로 죽을힘을 다해, 정치인과 국민을 찾아가 호소하고 구치소·교도소 안과 바깥에서 자식들과 함께 싸워나갔다. 감옥에 간 아들, 딸들이 징역을 살면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소 내 처우개선, 모순된 행형법 고치기, 독재타도의 구호로 저항하였다. 소 측은 지하 먹방에 가두기, 무차별 구타로써 보복했다.

구치소·교도소에서도 학부모들은 서로 힘을 합해 사태해결에 혼성을 다했다. 그 당시, 민가협 회장이 된 나를 교도관들은 ‘저 뚱뚱한 여자’라고 지목하여 말하면서 “당신 아들은 불리한 형을 받고 빨갱이 낙인을 면치 못한다.”며 겁을 주었다.

경찰서, 공안수사기관 항의 방문, 양심수 재판 방청, 교도소 처우개선을 위한 투쟁, 비전향 장기수 석방운동, 연대 투쟁 등으로 민가협 엄마들의 행보는 날로 바빠졌다. 특히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45년), 안학섭(43년) 선생님의 기나긴 수감생활은 늘 우리 석방운동의 원동력이 되어 비전향 장기수 석방을 입이 닳도록 부르짖고 다녔다. 차차 민가협 엄마들도 도와주고 알아주는 세상이 오자, 경축일 특별사면에서 이루어질 석방운동도 열심히 하고 악법인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도 꾸준히 하게 되었다. 탑골공원 앞의 목요집회도(14년째) 덥든 춥든 꾸준히 이어져 왔다.

국가보안법은 2004년도 한때 없어질 법도 했으나, 흐지부지 되어 버렸다. 한 겨울 여의도 국회 앞 시멘트 바닥에 단식으로 폐지를 부르짖었으나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은 끈 풀린 풍선처럼 허망하게 무산되었다. 지금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자가 생기고 재판 진행 중에 있다.

활동 해온 지 이십년이 지나니까, 노동운동으로 구속된 양심수, 농민, 도시빈민, 철거민 등 생존권 투쟁으로 구속된 양심수도 많아졌다. 이제는 오랜 경험으로 ‘좋다, 나쁘다’의 구별도 알게 되고 전업 가정주부가 아닌 길거리 운동가로 익숙해진 나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그런대로 인생항로에 부끄러운 위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현장이든 우리가 필요하다면 꼭 함께하고자 한다. 각자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작은 행복일지라도 차별 없이 자유롭게 누리면 그게 인권 충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삼스러이 먼저 떠난 열사, 희생자 여러분께 경건히 머리 숙이고 이렇게 다짐해 본다.

‘그대들이 있었기에 내가 오늘까지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자주, 민주, 통일의 횃불의 열사들이여, 이 한반도를 지켜주십시오’

 임기란(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