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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16.01] <유럽인권재판소 판결 읽기1> 부르카금지법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글 박성철 그림 이우일

 

 

 

 

부르카금지법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이슬람교도 여성들은 일상생활을 할 때에도 종교적인 의미가 담긴 옷을 입곤 한다. 잘 알려진 히잡(hijab)은 머리와 목을 가리는 스카프다. 니캅(niqab)은 눈을 제외하고 얼굴 전체를 감추는 스타일이다. 머리에서 발목까지 덮어서 신체 거의 모든 부위를 가리는 부르카(burka)는 눈 주위도 망사로 씌운 옷이다.
니캅 또는 부르카를 둘러싸고 유럽 여러 나라에서 논란이 분분하다. 얼굴을 덮는 것을 금지해야 하는지 찬반이 충돌한다. 유독 여성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가리는 복식(服飾)은 여성억압이라는 견해가 있다. 스스로 원해서 착용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것은 종교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는 입장이 맞선다. 니캅과 부르카를 금지하려는 시도는 이슬람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서 비롯되었다는 목소리가 있다. 종교의 자유도 공공의 안전과 질서를 위협할 수 없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  부르카 착용 처벌?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거부감과 맞물려 공공장소에서 니캅 내지 부르카 착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 더 힘을 얻었다. 프랑스에서 이른바 니캅 내지 부르카 착용을 금지하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2011년 4월 11일부터 발효된 법률에 따르면, 공공장소에서는 누구도 얼굴을 가리는 의복을 입을 수 없도록 하고 위반 시 150유로까지 벌금을 물릴 수 있도록 했다.
공공장소에는 도로와 공원뿐 아니라 카페와 병원과 같이 일반 대중에게 개방된 곳이 망라되었다. 몇 가지 예외는 있다. 법령으로 허가되거나 건강상 또는 직업상의 이유로 혹은 스포츠, 예술, 전통 축제에서 착용하는 것은 허용된다. 예컨대 오토바이를 탈 때 헬멧을 써서 얼굴을 가리거나 감기에 걸려서 또는 의사가 진료를 위해 마스크를 쓰는 경우, 아니면 가면을 쓰고 축제를 즐기는 때에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1990년생 어느 여성은 이 법이 사생활의 자유, 신앙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유럽인권재판소(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에 제소했다.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종교적 신념에 따라 자발적으로 베일을 쓴다고 했다. 공항이나 은행에서 신분 확인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얼굴을 보일 수 있다고도 했다.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 오로지 자신의 정체성을 느끼고 내적 평화를 위해 니캅이나 부르카를 쓸 뿐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입법자는 공공의 안녕(public safety)을 내세워 반박했다. 열린 민주사회의 최소한의 가치에 대한 존중(respect for the minimum set of values of an open democratic society)을 추구하는 입법 목적의 정당성을 앞세우며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이 법은 이슬람교도를 특별히 겨냥한 것이 아니며 누구든지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면 차별 없이 처벌하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  다수 의견, 얼굴공개는 '함께 살기' 위한 것



이에 유럽인권재판소는 2014년 7월 1일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이 법이 유럽인권협약(The 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Human Rights and Fundermental Freedoms)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S.A.S. v. France, App no 43835/11 (ECTHR, 1 July 2015)]. 다수 의견은 프랑스 입법자의 주장을 상당 부분 수용했다. 물론 양성평등과 같은 가치가 이 법의 목적에 꼭 부합한다고 인정하진 않았다. 성 평등을 위해서는 베일을 쓰도록 강요하는 사람을 처벌할 것이지, 원해서 쓰는 사람까지 처벌할 일은 아닌 것이다.


다수 의견이 주목한 것은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것(protection of the rights and freedoms of others)과 관련된 '함께 살기(living together)'라는 가치였다. 프랑스 입법자는 열린사회에서 서로 인적 교감을 통해 사회적인 교류를 하면서 '함께 살기'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호교류에서 '얼굴'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역설했다. 유럽인권재판소의 다수 의견이 이런 주장에 수긍한 셈이다.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초라는 대원칙을 받아들이면서도,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함께 살기'를 담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점에서는 물러서지 않았다. 얼굴 공개를, 함께 사는 사회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으로 본 이상 비례의 원칙에 위배되지도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  부르카 금지, 이슬람 공포증



소수 의견은 비판했다. 얼굴 확인이라는 조치를 필수적으로 취해야 할 정도의 공공의 안전에 대한 위험이 존재하는지, 베일로 그 위험이 야기되는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함께 살기'라는 매우 광범위한 일반 개념이 인권협약에 의해 보호되는 구체적인 권리를 제한할 만한 기준이 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위험하다고 느끼는 공포심은 니캅이나 부르카 자체에서 생기는 것이라기보다 이슬람 베일을 보는 사람이 느끼는 불편한 인식과 태도에서 싹트는 것이라고 보았다. 부르카를 입은 여인이나 산타클로스(Santa Claus)나 눈만 보이는 것은 똑같다. 그런데도 산타클로스를 만나면 사랑과 편안함을 느끼고 부르카를 입은 여성을 볼 때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는 것은 이슬람포비아(Islam phobia)일 뿐이라는 뜻이다.   
 
베일을 쓴 사람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신원 확인에 기꺼이 응하겠다고 하는 데도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항상 사전에 얼굴을 드러내도록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표했다. 공공장소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의지에 반해서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사회적 교류를 할 권리가 과연 있는지, 공개된 장소라고 해서 낯선 사람과 얼굴을 드러내고 원치 않는 교류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 의심을 품었다.


사회에서 사람들과 교류 할 때 얼굴이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얼굴을 보지 않는다고 해서 교류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무도회장에서 가면을 쓰거나 혹은 스키장에서 모자와 고글을 쓴 사람들에게 민주 사회의 최소한의 가치를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하지는 않는다는 예를 들었다.



┃  소수 의견, 모든 장소 부르카 금지는 비례원칙 어긋나



소수 의견은 이 법률이 보호하려는 '타인의 권리와 자유'가 모호하다는 데에 근본적인 수단을 모색하지 않은 입법자를 비판했다. 모든 공공장소에서 전면적으로 니캅 내지 부르카 착용을 금지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까지 하는 카드를 꺼내 든 것은 비례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모든 장소에서 전면적인 금지를 했다는 점, 형사처벌이라는 가장 강력한 수단을 동원했다는 점을 큰 문제로 꼽았다. 사적 공간을?니라, 공항이나 철도역 혹은 은행과 같?는 의미다. 벌금액이 소액이라는 항변에 대해서는 위반 시마다 부과될 수 있어서 1회 금액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나아가 베일을 쓰는 것이 부당한 족쇄며, 이슬람 여성들이 그 억압에서 해방되기를 바란다면, 금지와 처벌이 아니라 토론과 설득, 교육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소수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제한하는 형사처벌로는 '함께 살기'라는 가치가 달성되기는 어렵다고 일갈했다. 이슬람 포비아에 터잡은 금지와 처벌 수단은 악순환을 낳을 뿐이라고 우려했다.



 


박성철 님은 변호사로 법무법인 지평에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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