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2016.01] 여전히, 남아 있다

글 사진 이기화

 

여전히 남아 있다 01



여전히 남아있다 02


여전히, 남아 있다 3여전히, 남아 있다 4
여전히, 남아 있다 5여전히, 남아 있다 6




이 빈집에는 4년 전까지만 해도 한 아저씨가 홀로 살고 있었다.
논이며 밭이며 홀로 일구면서 평생 농사꾼으로 지내셨다.
일이 고될 때면 아저씨는 늘 술로 피로를 달래곤 하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량은 늘어나고 몸은 점점 야위어 갔다.
그렇게 80도 안 된 나이에 정성 들여 일구던 밭과 집을 등지고 떠나셨다.

아저씨가 떠난 집에는 흔적들만 덩그러니 남았다.
친구 같았던 텔레비전은 오래도록 꺼져 있다.
더 이상 쓰지 않는 농기구 위에는 먼지가 가득 앉았고
늘 열려 있던 대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는다.
한창 농작물이 자라야 할 비닐하우스 안에는 잡초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 있다.
굴뚝을 따라 하늘 위로 퍼지던 검은 연기는 못 본 지 오래고 그 대신 능소화만 활짝 펴 있다.
마치 방금 있던 자리처럼 벽에 그을린 손때와 점점 짙어지는 시간의 흔적.
바람마저 잠잠해질 때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곳에 아무도 있지 않지만, 흔적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집에 비친 흔적의 깊음이 점점 선명해진다.
여기 아직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이제 한겨울 눈 손님만이 아저씨의 신발을 채워주고,
떠난 주인의 손때 묻은 흔적들 사이로 햇살이 어리비친다.



 

이기화 님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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