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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16.04] <유럽인권재판소 판결 읽기 4>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가 충돌할 때

글 박성철 그림 이한수

 

프라이버시와 자유권이 충돌할 때


이 사건의 청구인은 네 명의 기자였다. 스위스의 독일어 TV에서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 <카슨스토츠(Kassensturz}>라는 방송을 제작했다. 보험중개인들의 위법행위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자 생명보험 상품 가입과 중개업 실태를 밀착 취재해 보험 모집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법행위를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보도를 위해 보험중개인을 인터뷰할 때 몰래카메라로 촬영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방에 2대의 카메라를 숨겼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야 몰래 촬영했다는 사실을 고지했다. 인터뷰 장면은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음성을 변조해 방영했다.


  몰래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한 인터뷰를 방송을 한 행위는 사생활 비밀의 자유를 침해한 범법행위로 기소되었고 기자들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감형은 됐으나 유죄판결 결론이 바뀌지는 않았다. 연방법원은 보험중개인들의 사생활을 덜 침해하는 다른 방법을 쓸 수도 있었다는 이유로 방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공익보다 보험중개인들의 사익 침해가 더 중하다고 보았다. 네 명의 기자는 승복하지 않았다. 벌금형 선고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하여 유럽인권재판소(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에 제소했다[Haldimann and Others v. Switzerland, App no. 21830/09 (ECtHR, 24 February 2015)].


┃  몰래 카메라를 이용한 방송, 인권침해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럽인권재판소는 기자들에게 내려진 벌금형이 유럽인권협약(The 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Human Rights and Fundamental Freedoms) 제10조에서 정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결정했다.


  공적 인물의 명예와 사생활 비밀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충돌할 때 두 가치를 비교형량하는 기준을 명시했다. 표현한 내용이 공익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표현의 대상이 된 사람이 어느 정도 알려진 인물인지, 표현된 기사의 주제가 무엇인지, 진실한지, 표현한 의도가 무엇인지, 표현으로 인해 그 대상이 된 인물이 침해받은 사익이 무엇인지, 어떤 표현으로 인해 처벌을 받았다면 처벌의 정도가 얼마나 중한지 등을 판단 기준으로 제시했다.


  이 사건에서는 보험중개인이 잘 알려진 공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생활의 비밀이 더 중요할 수 있지만, 모자이크와 음성 변조를 해서 인물을 식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생활의 자유가 덜 침해된 것으로 고려되었다. 나아가 방송된 프로그램이 보험모집인을 개인적으로 비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참작했다. 업계의 불법행위를 고발하기 위한 공익에 가치를 두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했다. 또한 기자들이 비록 벌금형이라도 형사처벌을 받았다는 점 역시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한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종합해보면, 보험모집인이 사생활의 비밀을 제한받은 수준은 낮은 반면, 기자들의 침해받은 표현의 자유는 중대하다고 평가되었다.


  언론의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이 충돌했을 때에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보장되어야 하는지는 자주 문제 된다. 이 사건에서는 보도의 목적을 특히 중요한 요소로 고려했다. 해당 방송이 보험중개업자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험 중개의 위법행위를 지적하고 폐해를 바로잡기 위한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특히 의미 있게 다루어졌다. 비난의 방향이 어디인지에 주목했다. 아울러 보험중개업자가 피해를 본 바가 거의 없다는 점도 핵심적인 요인이었다. 중개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바꿔서 식별할 수 없게 했을 뿐 아니라, 인터뷰 장소도 보험중개인의 사무실을 피해서 혹시라도 그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배려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개인의 신상을 보호하기 위한 기자들의 노력을 인정해서 언론에 개인을 비난하기 위한 나쁜 의도가 없었다고 판결했다.


┃  공적인 가치를 위한 것인가?


언론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 침해 여부는 국내에서도 빈번하게 다툼이 된다. 우리 대법원 역시 유사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보도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가 문제 되는 경우 그 보도로 인한 피해자가 공적인 존재인지 사적인 인물인지, 보도가 공적 관심 사안인지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지, 보도가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 사회성을 갖춘 사안에 관한 것으로 여론 형성이나 공개 토론에 기여하는 것인지 아닌지 등을 따져보아야 한다(대법원 2011. 9. 2. 선고 2010도17237 판결).


  이때, 공적 존재에 대한 공적 관심 사안과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 사이에는 심사 기준에 분명한 차이를 두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당해 표현이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때에는 언론의 자유보다 명예의 보호라는 인격권이 우선할 수 있으나, 공공적·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문제에서는 그 평가를 달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때에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한다는 태도다.


  특히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 결정이나 업무 수행과 관련된 사항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전제한다. 이런 감시와 비판을 주요 임무로 하는 언론 보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될 때 비로소 정상적인 견제가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으므로,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 결정 또는 업무 수행과 관련된 사항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언론 보도로 인해 그 정책 결정이나 업무 수행에 관여한 공직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다소 저하될 수 있더라도, 보도의 내용이 공직자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 한, 보도로 인해 곧바로 공직자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된다고 할 수 없다는 판결을 했다(대법원 2011. 9. 2. 선고 2010도17237 판결). 


┃  프라이버시권 보호를 위해 노력했는가?


한편, 잡지에 공직자를 비난하는 내용의 기고문을 게재한 행위가 명예훼손이 된다고 인정한 사건에서는 정보에 대한 진위 검증을 소홀히 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인터넷에서 무료로 취득한 공개 정보는 누구나 손쉽게 복사·가공해 게시·전송할 수 있는 것으로서, 내용의 진위가 불명확함은 물론 궁극적 출처도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특정한 사안에 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접속하는 인터넷상 가상 공동체(cyber community)의 자료실이나 게시판 등에 게시·저장된 자료를 보고 그에 터 잡아 달리 사실관계의 조사나 확인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사회적 평판을 저하시킬 만한 사실을 적시한 기고문을 게재했다면, 설령 행위자가 그 내용이 진실이라 믿었다 한들, 그렇게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아 명예훼손을 인정한 바 있다(대법원 2013. 2. 14. 선고 2010다108579 판결).


  위 사건에도 대법원은, 신문에 비해 신속성의 요청이 덜한 잡지에 인신공격을 하는 표현으로 비??용?쳐야 할뿐더러, 잡지에 기고한 기고문의 내용이나 표현 방식, 의혹 사항의 내용이나 공익성, 공직자 또는 공직 사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정도, 기고문을 게재하기까지의 사실 확인을 위한 노력의 정도, 기타 주위의 여러 사정 등을 종합해 판단할 때, 그 기고문의 게재가 공직자 또는 공직 사회에 대한 감시·비판·견제라는 정당한 언론 활동의 범위를 벗어나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에는, 비록 공직자 또는 공직 사회에 대한 감시·비판·견제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공직자 등의 수인 범위를 넘어 명예훼손이 되는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대법원 2013. 2. 14. 선고 2010다108579 판결).


  이러한 대법원의 기준은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과 맥을 같이한다. 기준은 크게 두 가지 로 압축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을 비난하기 위한 것인지, 공적인 가치를 위한 것인지 의도가 중요하다. 다음으로, 표현의 대상이 된 사람의 인격과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엄밀하게 따져야 한다. 위 두 기준을 적용하는 데에 보도의 진실성은 공통된 핵심 요소가 된다.


 


박성철 님은 변호사로 법무법인 지평에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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