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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16.09] <유럽인권재판소 판결 읽기 9> 종교의 자유를 허하라

글 박성철 그림 이한수

 

종교의 자유를 허하라


청구인은 터키에 사는 알레비파 교도다. 알레비파는 이슬람교와 다른 종교로 분류되기도 하고 이슬람교의 한 분파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알레비파의 지위가 특별히 문제 된 건 터키의 신분증 때문이었다. 2006년경까지 터키에서는 신분증에 자신의 종교를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했기 때문에 청구인의 종교를 어떻게 표시할지가 문제 됐다.

 


청구인은 일상생활에서 수시로 타인에게 제시해야 하는 신분증에 종교를 기재하도록 한 것부터 따졌다. 이슬람교를 알레비교로 변경해달라는 신청이 거부된 것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신분증에 종교를 기재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청구인으로서는 자신의 종교를 그대로 표기할 수 없는 현실을 납득하기 힘들었다.

 


유럽인권재판소(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는 청구인의 제소를 받아들였다. 유럽인권협약(The 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Human Rights and Fundamental Freedoms) 제9조에서 정하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았다[Sinan ısık v. Turkey, App no. 21924/05(ECtHR, 2 February 2010)].

 


유럽인권재판소는 신분증에 종교를 표시하도록 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를 위반한다고 판단했다. 종교의 자유에는 자신의 종교를 드러낼 자유뿐 아니라 종교를 드러내도록 강제받지 않을 자유도 포함된다고 본 것이다.

 


다양하게 분화된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유럽에 자리 잡은 인권재판소에는 종교의 자유를 다룬 판결이 다수 있다. [Dimitras and others v. Greece,? App no. 42837/06, 3269/07, 35793/07 and 6099/08 (ECtHR, 3 June 2010)] 사건의 청구인들도 자신의 종교를 드러내지 않을 자유를 침해당했다고 제소했다. 청구인들은 법정에서 증언할 때 종교의 자유가 침해된다고 주장했다.

 


그리스 법정에서는 성경 위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하도록 되어 있다. 청구인들은 기독교를 신봉하지 않으므로 성경에 손을 얹지 않겠다고 했고, 그리스 법원은 이를 허용했다. 성경 없이 엄숙한 선서를 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청구인들은 종교의 자유가 침해됐다고 제소했다. 법정에서 증언할 때 자신들이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낼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는 시스템을 문제 삼았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이 역시 인권협약을 위반했다고 인정했다. 종교를 드러내지 않을 자유가 종교의 자유의 핵심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었다.

 


그리스에서는 여호와의 증인의 활동을 둘러싸고 벌어진 종교의 자유 침해사건도 있었다. 청구인은 여호와의 증인 신자다. 이웃에 사는 그리스 정교회 신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여호와의 증인 종교에 대한 설명을 했는데, 타인에게 개종을 강요한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았다. 유죄판결을 받은 청구인은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했고, 재판소는 청구인의 주장을 받아들여 청구를 인용했다[Kokkinakis v. Greece,? App no.14307/88 (ECtHR, 25 May 1993)].

 


청구인이 어떤 불법적인 방법을 써서 타인의 개종을 강요했는지 행위 방법을 충분히 적시하지 않은 채 개종을 강제로 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 조항에 대한 동어반복에 머물고 있는 그리스 법원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유죄판결을 정당화할 정도로 청구인을 처벌해야 할 긴급한 필요가 그리스 사회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종교의 자유 침해가 인정되지 않은 사건도 여럿 있다. 특히 종교 축제를 이유로 한 휴식과 관련해서는 유럽인권재판소가 종교의 자유 침해를 인정하는 데에 소극적이다.

 


[Kosteski v. The former Yugoslav Republic of Macedonia, App no. 55170/00 (ECtHR, 13 April 2006) ] 사건의 청구인은 이슬람교도다. 청구인은 이슬람교의 축제인 바이람에 참여하려고 무단결근을 했고, 결근으로 인한 업무와 관련해 벌금을 물게 되자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했다. 그러나 청구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종교의 자유가 종교에 관한 모든 활동을 보호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환기시켰다. 이슬람교 축제에 참여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 범위에 들어가지만 고용계약을 위배하는 것까지 종교의 자유에 포함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Francesco Sessa v. Italy, App no.28790/08 (ECtHR, 3 April 2012)] 사건의 청구인은 유대교인인 변호사다. 소송을 대리해 진행하던 중 재판부는 다음 재판일을 두 날짜 중 하루로 정해 진행하겠다고 고지했다. 두 날짜 모두 평일이었다. 그러나 청구인은 두 날이 모두 유대교 축제와 겹쳐서 자신이 출석할 수 없다면서 다퉜다. 결국 유대교 축제 기간에 기일이 정해지자 청구인은 기일 변경을 신청했으나 재판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유럽인권재판소에까지 제소했지만, 인권협약 위반이 인정되지는 않았다. 종교의 자유의 범위에 휴일을 인정받을 권리까지 포함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청구인의 종교의 자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라고 본 것이다. 대리인의 사정 때문에 재판이 느려지면 당사자가 피해를 보게 된다. 유대교인인 대리인이 종교 축제에 참여할 권리보다는 재판이 제때에 진행될 필요가 더 크다고 보았다.

 


어떤 이가 인권침해를 주장할 때 그 반대편에는 다른 이의 인권 문제가 발생할 때가 있다. 개인과 국가권력의 대립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권리가 부딪치는 사례다. 이런 경우 특히 양자의 권리의 무게를 재는 일이 중요하다. 이 사건에서는 대리인보다는 당사자의 재판에 대한 이해관계가 더 크다는 점이 고려되었다. 나아가 재판을 받을 권리는 평일에 법원이 지정한 날짜에 진행되는 데에 반해, 종교의 자유는 평일에 특별히 휴식을 요구하는 특수한 예외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도 감안되었다.

 


종교의 자유에서는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해서는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지만 타인이 따르는 종교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은 비단 종교의 자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다른 여러 권리가 다양한 국면에서 갈등을 빚곤 한다. 그때마다 무게를 달아 어느 쪽이 더 중한지 면밀히 살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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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철 님은 변호사로 법무법인 지평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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