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6.10] 마술피리

글 정도경 그림 조승연

 

마술피리


 

옛날 옛적 어느 나라에서 새로운 왕이 왕좌에 올랐습니다. 새 왕의 등극에 하늘도 땅도 기뻐했고, 남쪽 바다의 용왕은 사신을 보내 왕에게 피리를 선물했습니다. 그것은 마술피리였는데, 그 피리 소리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듣는 사람에게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주고 마음속을 기쁨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나 새 왕이 등극한 이후부터 나라에는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새 왕이 왕좌에 오른 이듬해에는 큰 배가 뒤집혀 타고 가던 사람들이 많이 죽었고, 그다음 해에는 역병이 돌았으며, 또 한 해가 지나자 가뭄이 들고 땅이 흔들려 곡식이 모두 말라 죽었습니다. 연달아 이런 큰 사건이 일어나자 나라의 금고는 점점 비었고, 그래서 조정에서는 세금을 더 걷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역병과 가뭄과 재난으로 인해 곡식이 여물지 않아 배가 고픈데 관청에서는 구휼해주지 않고 오히려 세금을 독촉하니 궁지에 몰려 대대손손 살아오던 고향을 떠나 객지를 떠돌며 구걸하는 거지가 되거나 도적이 되었습니다.


  한 해, 또 한 해가 지나도, 여름에는 장마철에도 비 한 방울 오지 않고 불에 타는 듯이 가물었고, 가을에는 때 아닌 비로 홍수가 져 그나마 여문 곡식도 모두 떠내려갔습니다. 백성들은 비축한 곡식도 없이 얼어붙을 듯이 추운 겨울을 맞이했고 아이와 노인이 먼저 죽어갔습니다. 부모와 자식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슬픔과 절망과 분노가 차올랐습니다.


  그러나 왕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왕은 왕이니까 먹을 것과 입을 것은 언제나 풍족했고 주위 사람들은 왕을 소중히 떠받들고 치켜세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왕의 창고에는 마술피리가 있었습니다. 나라에 상서롭지 못한 큰일이 일어날 때마다 왕은 가장 신뢰하는 대신들을 시켜 마술피리를 불었습니다. 역병이 돌면 의원이 피리를 불었고, 가뭄과 재해가 일어나면 풍수를 보는 점술사가 피리를 불었으며, 도적이 들끓으면 관군을 지휘하는 의금부 도사가 피리를 불었습니다.


  누가 피리를 불든지 그 소리는 언제나 황홀하고 매혹적이었습니다. 아름다운 피리 소리는 바람을 타고 널리 퍼졌고, 그 소리를 듣는 백성들은 기쁘고 감동해 역병을 앓고 음식을 먹지 못해 죽어가면서도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를 띠었습니다. 곡식은 여전히 여물지 않고 바닷가 마을들은 가을과 겨울에 때 아닌 태풍에 시달렸으며 가축도 사람도 굶주려 죽어갔고 산도 들도 시신으로 뒤덮였지만 피리 소리가 들리는 곳은 어디나 더없이 평화로웠습니다.


  피리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는 힘없는 사람들이 굶주림과 병으로 죽어갔습니다. 조금이라도 기운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비참한 지경에 빠져 절망하고 슬퍼하고 시달린 끝에 짐승처럼 사나워졌습니다. 그리하여 나라 곳곳에서 도적이 벌떼같이 일어나 마침내 관군도 제압하기를 두려워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신하들이 전국 각지에서 이러한 소식을 전하면 왕은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무얼 그리 걱정한단 말이오. 이 아름다운 피리 소리가 근심걱정을 모두 씻어주고 더없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걸 모르시오? 어서 이리 와서 피리 소리를 들으시구려.”


  그러면 신하들은 번갈아 마술피리를 불었고 왕과 함께 모두 평화롭고 안정됐다는 착각 속에 빠져 기뻐하며 즐겼습니다.


  피리를 선물한 남쪽 바다의 용왕은 이 사실을 알고 크게 분노했습니다.


  “만백성과 함께 기뻐하라는 뜻에서 마술피리를 선물했건만 사람이 짐승처럼 굶주리고 병들어 죽어가는데 위정자는 자기의 즐거움만을 위해 신성한 피리를 악용한단 말이냐!”


  그날 밤 지진과 해일이 수도의 왕궁을 덮쳤습니다. 피리 소리에 취해 안락함을 즐기던 왕과 신하들은 모두 해일에 휩쓸리고 갈라지고 무너진 땅속에 묻혔습니다. 백성들은 달콤한 거짓 평화와 행복을 퍼뜨리던 마술피리를 바닷속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진짜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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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경 님은 소설가로 중편 <호(狐)>로 제3회 디지털문학상 모바일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장편 <문이 열렸다> <죽은 자의 꿈>과 단편집 <왕의 창녀> <씨앗>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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