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6.11] 아기 장수

글 박애진 그림 조승연

 

아기장수


옛날 옛날 먼 옛날에 어리석은 임금이 살았습니다. 임금은 신하들의 간언에도, 백성들의 탄원에도 귀를 막고 깊은 궐 안에서 자기가 믿는 사람 말만 들었습니다. 임금에게 신뢰받는 사람들은 임금을 앞세워 수많은 재산을 모았습니다. 또한 임금으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는 백성들에게는 불리하고, 많은 재산을 소유한 상인들에게 유리하게 법을 바꾸도록 했습니다.


  그 무렵 어느 마을에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아이는 이내 날개를 펴고 날아다녔으며 힘이 어른 못지않은 장사였고, 말과 행동이 곧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날개 달린 아기를 아기 장사라고 불렀습니다.


  임금은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 아이가 자라면 장차 자기에게 위협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몰래 사람을 보내 아기 장사를 돌로 눌러 죽였습니다. 아기 장사는 죽기 전 부모에게 콩 닷 섬과 팥 닷 섬을 같이 묻어달라고 했습니다. 부모는 유언대로 아이의 무덤에 콩 닷 섬과 팥 닷 섬을 함께 묻었습니다.


  폭정을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임금에게 직접 뜻을 알리기로 했습니다. 그간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한을 풀고, 부유한 상인에게만 유리한 법을 전체 백성을 위한 법으로 바꾸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우게 하기 위해 궐 앞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때 아기 장사의 무덤에 같이 묻었던 콩 닷 섬은 말이 되고, 팥 닷 섬은 군사가 되어 사람들을 도우려 했습니다. 


  임금은 혹시 몰라 아기 장사 무덤을 철통같이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기 장사가 그들을 지휘하기 위해 막 깨어나려는 순간 관군을 보내 다시 죽이려 했습니다. 아기 장사는 의식을 잃었습니다. 많은 의원이 극진히 치료했지만 아기 장사는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아기 장사를 태우러 하늘에서 내려온 용마(龍馬)는 아기 장사의 죽음에 구슬피 울다 근처에 있는 용소(龍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임금은 이로써 모든 우환이 다 사라졌다고 믿었습니다. 아랫사람들을 시켜 아기 장사가 죽은 이유는 아직 어린아이가 산과 들을 뛰어다니다 넘어져 다쳐 죽은 것이지 자기가 한 짓이 아니라고 말하게 했습니다. 임금의 명을 받은 의원은 즉각 임금의 말이 맞다고 발표했습니다. 임금은 심지어 거짓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아기 장사의 시신을 가져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백성이 아기 장사가 관군의 손에 죽는 모습을 똑똑히 봤습니다. 눈을 가려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늘이 없어진 게 아닙니다. 백성들은 힘을 합쳐 밤을 새우며 아기 장사의 시신을 지켰습니다. 정직한 의원들이 아기 장사는 관군의 손에 죽은 것이라며 백성들과 목소리를 함께했습니다. 아기 장사를 기다리던 콩 닷 섬과 팥 닷 섬은 말과 군사로 깨어나지 못했지만, 전국 각지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몰려왔습니다.


  백성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임금의 나라는 오래갈 수 없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는 사람들이 긴 세월 힘겨운 노력을 기울여 쟁취한 것입니다. 아기 장사는 떠났지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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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진 님은 환상문학ㆍ과학소설 작가로 장편소설 <지우전-모두 나를 칼이라 했다> <부엉이소녀 욜란드>, 작품집<각인>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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