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 > 현장이슈 > 장애를 넘어 시민과 함께

현장이슈 [2016.11] 장애를 넘어 시민과 함께

글 김신애

 

내 아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겨우 받아들이고 유치원에, 학교에 보내고자 했을 때 사회의 시선은 냉정했고 그 길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누구나 학령기가 되면 당연히 가는 학교인데 그것이 그리도 어려울 줄은 몰랐다.


  전국의 장애인 부모가 모여 내 자녀의 교육권을 위해 기자회견도 하고 집회도 열고 교육청 점거 투쟁까지 했다. 그 결과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제정되었다. 장애아를 위한 교실이 생기고 특수교사가 임용되었다. 너무 기뻤다. 이제 다 된 줄 알았다. 장애아들이 학교에서 교육도 잘 받고 사회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 살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학교에서 장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교사들, 학부모, 아이들을 만났고, 이들과 싸우고 때로는 울면서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의 의미와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장애아를 둔 부모들은 아이의 교육 권리를 찾으면서 자존감이 높아졌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정을 이끌어낸 경험을 발판으로 삼아 가족 지원을 요구하게 되었다. 장애인 자녀를 키우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서로 공감하고 나누는 지원, 체계적인 복지 정책을 요구해 드디어 장애인가족지원센터가 설립되었다.


  장애인 부모들은 장애인가족지원센터 사업에서 부모 역량 강화, 가족 기능 보완과 더불어 장애 인식 개선을 중요하게 생각해 이에 대한 사업을 추진했다. 학교에서 내 자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해 지역사회에서 인식 개선을 이끌 강사를 양성하고, 단순체험활동으로 장애를 대상화하기도 하는 등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우리는 '인권'이라는 지점에 도달하게 되었다.



1

┃인권에 눈뜨다


인권을 알게 되면서 만나는 세상은 새로웠고, 우리가 해온 일이 우리 권리를 찾아가는 인권 활동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족을 위해 애쓴 시간은 행복했지만 나의 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시간이기도 했고 오히려 내가 내 자녀의 권리를 빼앗거나 무시하는 일이었음도 알게 되었다. 참 불편했고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권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힘이 생기기도 했다.


  경북 장애인부모회는 2016년 봄부터 국가인권위원회 대구 인권사무소와 함께 인권강사양성과정을 운영하면서 생활 속 세세한 인권침해 사례와 다양한 인권 상황을 접하게 되었다. 장애 인권 특히 발달장애인인 내 자녀가 세상에서 가장 차별받고 고통받는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소수자, 여성, 아동, 노동자 인권을 접하고 인권침해 사례, 차별 사례를 알게 되면서 열악한 인권 상황에 있는 모든 당사자들이 함께 어우러지고 연대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장애인가족사례관리 사업 추진 과정에서 인권침해 요소들을 찾기도 하고, 인권침해나 차별 사건이 일어날 때 어떻게 대응하고 어떤 활동으로 연계할 것인지 배우고 생생한 이야기도 들었다. 뜨거웠던 지난여름에는 국가인권위원회 대구 인권사무소와 함께 인권강사, 활동가 워크숍을 하면서 활동 방식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인권위의 참여자 중심 진행 방식을 보면서 늘 일방적이던 우리의 활동 방식을 돌아보게 되었다.


  가을에 인권문화주간을 진행하자는 의견이 모이고 어떻게 추진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장애인부모회라는 명칭은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의 문제만 이슈화하고 고통과 어려움 속에 살아가는 부모의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어 보편적인 인권문제로 접근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이미 여러 차례의 교육과 인권상담으로 친밀해진 대구 인권사무소는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약속한 터라 지역사회의 시민단체들과 연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장애인부모회 활동가들과 부모들은 장애 문제로 접근할 것인지 보편적인 시민의 권리 문제로 접근할 것인지를 놓고 회의를 거듭했다. 회의 결과 '장애인이 행복해야 모든 사람이 행복하다'라는 장애인부모회의 기존 정신을 뒤집고 '모든 사람이 행복한 세상이 장애인에게도 행복하다'는 것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시민단체들을 설득하기로 했다. 포항부모회원들을 중심으로 포항 YMCA, 포항여성회, 경북혁신교육연구소 공감, 사회적기업 까리타스 보호작업장, 포항 우함주간보호소, 포항 바이오파크, 김상민 시의원을 만나 취지를 말하고 동의를 구했다. 좋은 일이기에 모두 흔쾌히 동참해주었다.


  첫 전체 회의 때는 장애인 부모가 왜 장애 인권이 아닌 보편적 인권으로 접근하는지에 대해 한참을 설명하고 토론했다. 아마도 장애인에 대한 사회, 시민단체의 책무라고 생각해 참여했다가 시민의 보편적 권리에 관해 토론하는 것이 놀랍기도 했을 것이다.



2

┃시민과 함께하는 인권문화주간


기본적으로 토론회와 인권영화 상영, 인권박람회를 추진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실무자들은 참여 기관 섭외부터 포스터, 리플릿 홍보까지 준비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함께  한다'는 것이 소박한 우리의 마음이었다. 첫 회라 많은 기대를 하기보다는 시민이 함께  한다는 것과, 연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지역사회 인권 의제를 발굴하는 것으로 하고, 토론회는 인권조례 제정을 안건으로 시민단체들이 토론하는 것으로 기획했다. 실무자들은 처음 하는 행사라 참여단체에 과제나 참가 의사만 확인하고 진행 과정에 대한 설명을 빠뜨리기도 하는 실수도 하면서 한발 내디디게 되었다.


  욕심을 내지 않았지만 실은 많은 사람이 참여해주길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바랐는지 모른다. 10월 12일 토론회 첫날 참여 단체들의 분야별 활동 소개 자료를 PT 쇼 형태로 진행함과 동시에 인권주간선언 개회를 했다. 참여 단체들과 포항시청 복지과장, 차동찬 포항시의회 복지환경위원회 위원장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된 시민인권옹호실천선언은 포항시의 책무를 인정하게 함과 동시에 관심을 유도하는 데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이후 진행된 토론회에서는 권혁일 대구 인권사무소 팀장이 인권조례 제정의 필요성에 대해 발제했고, 시민단체 대표들이 다양한 영역의 인권 상황에 대해 발표했다. 특히 김상민 시의원은 포항시 조례를 조사해 인권침해 요소가 있거나 인권의 요소가 포함되어야 할 내용을 정리해 발표해 참석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고, 시민 패널이 노인, 학생 등 당사자가 토론자에 없음을 지적하기도 하는 등 분위기가 매우 뜨거웠다. 장애인 부모들은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YMCA 성문화 센터장의 이야기에 매우 놀랐고 그동안 무성 인간으로 바라봤던 우리의 편견에 대해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10월 14일 둘째 날 이벤트는 인권영화 상영이었다. 홍보 기간이 짧아서인지 시민들의 참여는 생각보다 저조했지만, 주관 단체인 우리 부모회원들과 인권강사, 일부 장애인 시설에서 단체 관람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영화 <4등>은 일상화된 폭력, 최고가 되기 위해 억압적인 상황을 참아야 한다는 우리 인식에 일침을 가하는 내용이었다. 무척 감동적이었다. 모든 부모가 꼭 봐야 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날에는 인권박람회를 진행했다.


  10월 15일에는 인권 부스를 운영했다. 인권상담, 인권체험활동과 더불어 먹거리 장터, 프리마켓, 사회적 경제 생산품 판매, 로컬푸드 판매, 지역민의 공연으로 시민의 참여를 유도했다. 가장 인기 있었던 프로그램은 대구 인권사무소에서 진행한 '인권 골든벨'이었다. 가족, 친구, 개인이 자유롭게 참여해 인권 상식 문제를 맞히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너무나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특히 지역 봉사단인 민들레라이온스클럽에서 상품을 협찬해 시민들이 더 신나게 도전했다.


  보수의 텃밭인 경북에서 인권은 말 그대로 진보 진영에서 하는 이야기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고 대다수 사람이 불편해하는 단어다. 그렇지만 그냥 처음 시작해보는 것이다. 인권이 정말 불편한 이야기인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인지는 만나봐야 아는 것이다.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되어 장애인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장애의 특수성이 존중받고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장애 이전에 사람이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를 우리도 누려야 하는 것이다. 함께한다는 목표를 두고 진행한 이번 인권축제, 인권주간선언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다. 그저 함께해주신 모든 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김신애 님은 경상북도 장애인부모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전 목록 다음 목록

다른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