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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8.01] 갑질, 갑과 을 그리고 병과 정이 만드는 피라미드

글 편집부 / 일러스트 이선희

 

 

 갑질

이집트의 왕, 파라오는 자신을 위한 거대한 무덤을 짓게 했고 그 무덤을 우리는 피라미드라고 부른다. 사각뿔 모양의 이 건조물은 위로 올라갈수록 면적이 좁아지며 뾰족하기에 과거 왕족과 귀족, 평민이 있던 시절의 사회구조를 설명하는 예로도 사용되었다. 문제는 이 사각뿔이 신분제가 폐지된 지 100년도 훨씬 넘은 오늘날의 갑과 을을 설명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모양이라는 것에 있다.

 

현재 우리 사회의 신분은 족보가 아닌 사회적 지위와 돈, 그리고 권력이 만들어내고 있다. 부정하고 싶지만 ‘갑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여기에 있으니 어쩔 수 없다. 각종 계약 관계에서 ‘갑’이 되는 대기업이나 주요 기관과 함께 일을 하는 ‘을’ 업체가 있기 마련이고, 그 ‘을’ 업체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나 다시 재하청을 받는 업체는 ‘병’이 된다. 그리고 그 아래 또 ‘정’이 있는 것도 이제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얼마 전 한 설문조사기관이 만 19세에서 59세까지의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갑질에 대해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95.1%가 우리나라의 갑질 문화가 심각한 편이라고 응답했으며 이 중 ‘갑질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 사람도 54.3%나 되었다. 갑질을 당한 ‘을’들의 직업은 프리랜서가 62.1%로 가장 많았으며 전문직과 직장인도 50%가 넘었다. 손님을 맞는 서비스업의 상황도 덜하지 않다. 점원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라고 요구하거나 상담원을 상대로 막말을 하는 사람들도 어딘가에서는 ‘을’일 것이고, 그렇게 고객에게 시달린 그 사람들도 다른 곳에서는 ‘갑’이 될 수 있다.

 

피라미드의 꼭대기는 언제고 변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100년 전과 다른 점이다. 계약서 상에서 편의를 위해 계약의 주체를 A를 ‘갑’이라 하고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B를 ‘을’이라고 지칭한 것에서 유래한 갑과 을. 시작은 단순한 지칭이었으나 지금 우리를, 사회를 힘들게 하는 이 뾰족한 피라미드가 평평해질 날은 언제일까? 02

 

 화면 해설,

이 글에는 재벌로 보이는 사람이 피라미드 정상에 서서 아래를 향해 엄청 화를 내고 있고, 중간에는 명품백을 든 여성이 흘리는 돈은 바닥에 주저앉아 줍고 있는 남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여러 사람이 온몸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로 무거운 피라미드를 들고 주저앉아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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