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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동행 [2018.01] 삐뽀삐뽀 출동합니다 직장갑질119

인터뷰 정별님 / 사진 봉재석

 

직장갑질 119 총괄스태프 오진호

 직장갑질 119

 

작년 11월, ‘직장갑질119’라는 민간 공익단체가 출범했다. 이들은 직종별 온라인 모임을 만들어 임금체불, 일방적인 인사이동, 비정규직 차별, 성폭력 등 업계의 불공정 관행을 공론화하고, 업계 종사자들과 함께 해결책을 찾는다. 노무사, 변호사, 노동전문가로 구성된 200여 명의 스태프들은 상담이나 법률 지원도 해준다. 일터에서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기 위해, 직장갑질119는 오늘도 열심히 달린다.

 

인권 직장갑질 119(이하 119)는 갑질 당한 직장인을 돕는 민간 공익단체로 알고 있는데요, 119의 출범 계기가 궁금합니다.
오진호 고민의 시작은 지난 촛불집회였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광화문 광장에는 많은 시민들이 모여 불의한 권력을 몰아내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어요. 그러던 중 밤 9시가 넘어 광화문광장 9번 출구로 촛불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밤 9시면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잖아요? 이들은 이제 막 근무를 마치고 온 직장인들이었습니다. 대통령도 바꾸고, 본인의 삶도 바꾸기 바랐던 시민들이었지요. 그 모습을 보며 ‘광장의 민주주의가 직장의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라는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갑질 3

 

이후 노동시민사회들과 공개 토론회를 가졌습니다. 사원 수 100명 미만 사업장의 노동조합 가입률이 2.7%밖에 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조합 가입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직장인들이 어떻게 하면 자기 권리를 보장받게 할 수 있는가가 화두였죠. 그 결과 ‘카카오톡 오픈채팅’과 이메일을 중심으로 직장 내 갑질을 제보받고 해결하는 플랫폼을 만들어보자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 취지에 동의하는 노동단체 활동가, 변호사, 노무사님과 함께 11월 1일 ‘직장갑질 119’를 출범했습니다.

 

인권 119의 운영 방식을 알고 싶습니다. 사용자들은 어떻게 119를 이용할 수 있나요?
오진호 119의 상담 및 제보는 두 가지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하나는 ‘카카오톡 오픈채팅’입니다. 카카오톡 검색창에 ‘직장갑질 119’를 검색해서 입장하시면 되는데요, 인터넷 주소창에 gabjil119.com을 입력하셔도 됩니다. 오픈채팅방에서는 공휴일과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스텝들이 상주하며 상담 및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메일인데요, gabjil119@gmail.com으로 본인이 직장에서 겪은 갑질이나 부당한 일을 제보해주시면 스텝들이 검토해 3~4일 내로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인권 상사에게, 혹은 회사에 ‘갑’질을 당한 ‘을’들은 119로부터 어떤 도움이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나요?
오진호 기본적으로 자문이나 조언을 합니다. 사건이 사업장 전반적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을 요청하기도 하고, 언론을 통해 사건을 공개하기도 합니다. 직장 내 갑질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이고 위력적인 수단은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입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직장인들에게 노동조합은 먼 나라 이야기지요. 이에 119는 직종별 모임을 운영하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직장갑질119 출범행사

 

인권 회사 내 갑질 외에 아르바이트나 일용직 노동자, 외주 업체도 119를 이용할 수 있나요?
오진호 아르바이트, 일용직, 외주 업체도 당연히 직장인입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요, 제보 사례 중에서도 이용 사례가 꽤 됩니다.


인권 현재 119에서는 <보건의료노조 한림대학병원지부>를 포함해 다양한 모임들을 결성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운영 중인 모임은 어떤 것들이 있고 이곳에서는 무슨 활동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진호 문제 해결에는 소송, 공정거래위원회·노동부·인권위원회 신고 및 언론제보 등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같은 회사, 같은 업종의 종사자와 동료들이 온라인에서 직종별 모임을 만들어 사례를 수집하고 대응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때문에 저희는 동종 업계 분들을 모아 함께 직장갑질을 없애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 운영 중인 온라인 모임은 5가지입니다. 1호 노동존중 한림성심병원모임, 2호 병원간호사-직원 노동존중모임, 3호 어린이집 갑질 근절 보육교사 모임, 4호 방송계 갑질119, 5호 반월시화공단 노동권리모임 등입니다. 이 외에도 콜센터 노동자들을 위한 집중적인 상담 체계를 갖춰 보다 적극적인 문제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후로도 계속 직종별 모임을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인권 가장 많이 제보되는 갑질 유형에는 어떤 것이 있었나요? 또 상담을 진행하시면서 인상적이었거나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오진호 얼마 전 119는 11월 1일부터 1월 20일까지 제보된 갑질 사례 5,478건을 분석했는데요. 한국인의 직장 생활이 ‘재난’ 수준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기본적인 노동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물론, 노동법을 어겨도 뻔뻔한 사업주와 전근대적이고 가부장적이면서 동시에 서열화된 직장문화는 황당한 갑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예상하셨겠지만 가장 많은 사례는 ‘임금을 떼였다’였고요. 무려 전체 제보의 24%인 1,314건이었습니다. 사례 중에는 다소 황당한 갑질도 많았습니다. 사장이 닭모이를 주라고 시킨다든지, 자기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을 하고 오라든지, 퇴사를 시켜주지 않는 등이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도 15%, 851건에 달했습니다.


박스로 만든 고발마스크

 

인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 회사와 사람 사이의 문제뿐 아니라 요즘에는 회사와 개인의 삶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한 화두인 것 같습니다. 오진호님께서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란 무엇일까요?

오진호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워라밸’을 말하기 앞서 ‘상식’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필요한 야근을 없애고, 직장인들의 창의력을 촉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워라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회사와 개인의 삶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이를 위해 직장에서 최소한의 상식을 지켜야겠죠. 하지만 직장갑질119를 찾는 제보자들은 직장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이 무너져 있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직장갑질은 직종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만연해 있으며, 피해자들은 이를 고발하려 노동부를 찾아가지만 근로감독관은 악성 민원인 취급하기 일쑤입니다. 사업주는 되려 뻔뻔하게 나오고요. 피해자는 휴가도 제때 쓰지 못하고 퇴근도 마음대로 못합니다. 퇴사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죠. 이러한 상황에서 워라밸을 말하기에 앞서 ‘상식’이라는 말이 통하는 정책과 방안이 마련되는 것이 최우선이지 않을까요?


인권 119는 앞서 설명했듯 민간 공익 단체인데요, 그러다 보니 단발성 모임에 그칠 수 있다는 염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운영해 나갈 생각인가요?
오진호 100일 동안 5,478건의 제보를 받았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119 카카오톡 오픈채팅과 이메일에는 직장인들의 절규가 쏟아지고 있으며 운영에 참여하는 스태프들은 한국사회의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불의한 정권을 몰아낸 한국 사회는 여전히 많은 과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국가기관’, 즉 인권과 노동권을 도외시한 국가기관들의 정상화일 것입니다. 직장갑질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고용노동부와 국가인권위원회 이 두 기관이 주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물론, 이 두 기관이 포괄하지 못하는 직장갑질도 있을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겪는 부조리한 관행들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방안은 집단적으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우리 노동법 또한 노동조합을 결성해 목소리를 내라고 말하고 있죠. 하지만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10%도 채 되지 않습니다. 할 일도 많고 정상화해야 할 영역도 많습니다. 단발성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투성이죠. 저희 119 스태프들은 현재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해 논의를 진행 중입니다.


인권 마지막으로 119를 찾는 이용자들과 지금 이 순간에도 밥벌이를 위해 고군분투중인 근로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오진호 언제든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119와 함께 회사를 바꿔나가요.02

 

 오진호 사진

 

 

화면해설.

이 글에는 직장갑질 119 총괄스태프 오진호 씨 사진 몇장과 '함께하니 쫄지마' 토론회 사진 애그리버드, 눈물 흘리는 그림 등 박스로 만든 고발마스크 사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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