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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고 하는 수용 시설의 학대

우리 곁의 인권위원회 [2018.02] 수용 시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②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 수용 시설의 학대

글 이인영

 

일러스트

 

‘불량아 감화’로 출발한 선감학원

선감학원이란 이름이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선감학원은 1942년부터 1982년까지 40여 년의 긴 시간 속에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도에 자리하고 있었다. 조선을 강탈한 일본은 1923년 「감화령」을 발표하여 8~18세의 소년으로 불량 행위를 하거나, 할 우려가 있는 자를 감화시킨다는 명분으로 감화원이란 곳을 설치했는데, 절도, 폭행 등의 범죄를 저지른 불량아를 끌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항일 독립운동, 정치범이나 사회주의자, 또는 이유없이 잡혀오는 청년들도 많았으며, 명목상은 부랑아 교화였으나 소년병으로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내보내기 위해 군사교육까지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방을 맞아 당연히 폐쇄되었어야 하는 ‘선감학원’이란 이름으로 경기도로, 또 미군에 의해, 그리고 또 다시 경기도로 이관되면서 1982년 폐쇄되기 전까지 부랑아 선도 수용시설로 악명을 떨쳤다.

 

선감학원

5·16 쿠테타 이후 국정 홍보 방송에는 선감학원을 모범적 복지시설로 소개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아동들에게 자행된 ‘학대’
선감학원은 섬에 있었기 때문에 외부와의 접촉이 끊어져 있었고,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알기 어려웠다. 원생이었던 아동들은 흡사 죄수들처럼 머리를 빡빡 깎인 채 똑같은 색깔의 옷을 입고 하루 종일 농사일과 청소와 풀 뽑기 등에 내몰렸으며, 직원들은 원생 중 힘센 아이들을 골라 사장과 방장으로 내세워 다른 아이들을 관리하게 하면서 기합과 구타로 규율을 세우게끔 충동질했다. 혹독한 기합과 구타를 못 이겨 사망한 아이들은 선감학원 부근 야산 한 곳에 웅덩이를 파고, 가마니에 둘둘 말아 집단으로 매장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배고픔과 매질을 피해 도망이라도 치면 이웃 주민들은 이들을 다시 시설로 돌려보내거나 혹은 자신의 집에서 노예로 부리기까지 했다. 부랑아 시설이었으나, 부산의 형제복지원과 마찬가지로 의탁할 곳이 없는 아동뿐 아니라 부모가 있는 자녀들까지 마구잡이로 데려갔다고 하며, 정확하지는 않으나 그 수가 500여 명에 달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유해발굴 작업 시 발견된 신발

유해발굴 작업 시 발견된 신발. 원생의 신발로 추정되는데,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로 봐서는 아주 어린아이의 것으로 추정된다

 

장항 수심원, ‘거대한 감금 시설’의 섬
장항 수심원은 정신 요양시설로 1974년부터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보도를 계기로 1997년 폐쇄되기까지 충청남도 서천군 송림리 유부도에서 23년간 운영된 시설이다. 유부도는 군산 앞바다에서 배를 타고 10여 분 정도 들어가는 곳으로 인간의 힘으로는 뭍으로 갈 수 없어 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감금 시설로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격리된 지형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재 수심원 건물은 굳게 닫힌 입구 안으로 잡초가 무성히 자라나 흉물스러울 정도다.


장항 수심원의 입소는 ‘보호자’의 신고에 의해 관계자가 뭍에서 잡아 수갑을 채워서 끌고 오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원생들은 보통 시설 내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지만, ‘수감자’라는 글씨가 쓰인 앞치마를 걸친 조악한 작업복을 입고 유부도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운영하던 염전이나 농사, 각종 마을 잡역에 보조 인력으로 동원되어 섬 노예 수준으로 착취를 당했다. 구타도 일상적이었으며, 작업을 나가지 않았다고 몇 개월 동안 수감자끼리 수갑으로 묶어놓거나 학대로 인해 발가락이 없어진 사람도 있었다.


SBS 보도팀과 함께 시설을 나온 故 김삼식 씨는 동료를 폭행했다는 이유로 48일간 독방에 구금되었고, 전쟁 포로를 연상케 할 정도로 비참한 수준의 몰골이었다. 당시 요양시설에 감금되었던 사람들에 대한 처우는 수년 간 빨지도 않았던 담요 및 기자재들, 칸막이도 없던 화장실, 빗물을 그대로 식수와 생활수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비인간적인 환경이었다고 보도된 바 있다. 시설 원생이었던 제보자에 의하면 당시 시설 관계자 및 재단장에 의해 다른 원생으로 하여금 맞아 죽게 하는 일이 일상이었고, 탈출을 시도하다가 사망한 사람도 속출했는데, 사망자들은 보통 거주민들이 막섬이라 부르는 인근 섬의 야산에 암매장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유부도에서 보이는 군산의 모습

 유부도에서 보이는 군산의 모습. 지척의 거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건널 수 없는 바다여서 섬 자체가 수용소라 할 수 있다

 

1997년 폐쇄된 시설

1997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로 인권유린이 보도되자 급작스럽게
폐쇄되었으나, 시설은 그대로 남아있고, 폐건물 앞에는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있는 상태다

 

건물 앞 굳게 닫혀있는 철창살

건물 앞 굳게 닫혀있는 철창살만으로도 당시 시설 원생들에 가해진 통제와 감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수용 시설 학대의 공통점
인간을 인간 이하로 만들어왔던 수용 시설들이 무수히 많지만, 이런 수용 시설의 인권유린에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은 그럴 듯한 명분을 가지고 시작하지만 결국 그 목적이 사회로부터 ‘분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 불법 감금, 일상화된 폭력과 학대, 엄격한 통제와 규율이 수단으로 쓰였고, 횡령과 강제 노역 등이 부수적으로 따라 붙는다. 그리고 그로 인해 희생된 많은 이들이 그 후로도 회복되기 어려운 고통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장항 수심원 폐쇄 이후 당시의 원생들의 삶을 추적했는데, 당시 원생들은 교회 쉼터 등을 전전하다가 대다수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며 자살, 사망, 병사, 고독사,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전한 바 있다. 선감학원의 생존 피해자들 역시 그 악몽을 잊지 못하고, 평생 ‘부랑아’라는 꼬리표를 달고, 이렇다 할 교육도 받지 못해서 변변한 직업조차 얻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또한 이 시설 안의 인권유린에 대해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장항 수심원의 경우 당시 시설 원장은 1년 6개월 징역을 받은 것이 고작이며, 선감학원은 그 안에 누가 있었는지조차 그 기록조차 없다.


사회에서 살 수 있는 권리
지금까지 짧게나마 시설의 기원격인 소록도와 선감학원, 장항 수심원을 통해 수용 시설의 우울한 역사를 돌아봤다. 다행히 지금 이 시설들은 폐쇄되었고, 이러한 흉칙한 시설은 없다고 믿고 싶다. 그런데 과거와 같은 인권유린이 없어졌다고 정말 시설의 삶이 나아졌고, 그곳에서 계속 살기를 원할까? 감히 말할 수는 없으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돌봐줄 가족이 없어 시설이란 곳으로 오게 된 그들이 ‘또 다른 삶’이라는 것을 상상조차 해볼 수 없었고, 그들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탈시설 논의에 대해 시설 관계자들은 ‘사회로 나갈 수 있는 기반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사회가 위험한데 보호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나와서 산다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누가, 누구에게 지역 사회에서 살 수 있는 그들의 권리를 뺏을 자격이 있는 것일까? 물론 그 어떤 누가 지역 사회에 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하고, 기반과 지원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이러한 말을 했었다. 언제까지 “내(우리)가 너를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려”라고만 할 것인가? 수용 시설의 인권 문제의 마지막 공통점은 그러한 학대가 가능하게 묵인하고 방조했던 이웃, 사회, 국가가 있었다는 점은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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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님은 국가인권위 장애차별조사1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화면설명.

이 글에는 극심한 고통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의 그림과 여러 장의  선감학원 관련 사진이 있습니다. 5`16 쿠데타 이후 국정 홍보 방송에 선감학원을 모범적인 복지시설로 소개했다는 사진으로 검정고무신과 하얀 옷을 입은 아이들이 한줄로 길게 늘어섰고 아이들의 사열을 받으며 신사복을 입은 남자들이 걸어오고 있습니다. 두번째 사진은 장항 수심원 정신요양시설 유해발굴 작업 시 발견된 신발 위로 손바닥을 올려놓아 신발의 크기를 가늠해보는 사진이 있습니다. 손바닥에 비해 매우 작아 신발의 주인은 아주 어린아이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세번째 사진은, 수심원이 있던 유부도에서 바다 건너 군산이 아주 지척인 듯 보이는 사진입니다. 거리가 가까워도 건널 수 없는 바다여서 섬 자체가 수용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번째 사진은 1997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로 인권유린이 보도되자 급작스럽게 폐쇄된 수심원의 건물 사진입니다. 건물은 그대로이나 잡풀이 무성하게 자란 전경입니다. 마지막 사진은 건물 앞에 굳게 닫혀있는 철창살 사진입니다. 당시 시설 원생들에 가해진 통제와 감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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