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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인권 [2018.02] 그림 속 여성과 여신들은 왜 헐벗고 있을까?

글 조이한

 

파리스의 심판

피터 파울 루벤스<파리스의 심판> 1636년작
캔버스에 유채, 145x194cm
런던 국립미술관 소장

 

파리스의 심판

 

제목이 내게 주어진 원고 주제다. 제목이 의도한 것은 “그림 속 여성과 여신들이 주로 헐벗고 있으니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이 아닐까?” 내지는 “서양 미술문화 속 여성차별과 여성혐오를 누드 작품에서 찾아보기” 정도가 아니었을까 한다. 그렇다면 살펴봐야겠다. 정말로 그런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주제로 그린 그림을 일단 살펴보자. 그 말은 부분만 맞다. 아테네는 태어날 때부터 완전무장하고 태어났다니 벗은 그림을 그리기는 애매했다. 주로 벗고 있는 인물은 아프로디테다. 반면에 고대 그리스 신상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이라고 칭송 받는 대표작은 아폴로인데 그는 벌거벗었다. 뿐만 아니라 헤르메스도, 디오니소스도, 헤라클레스도 누드다.


고대 그리스 신상만을 따져 본다면 “여신들은 왜 헐벗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할 수가 없다. 하지만 훗날 그려진 그림 중에서 ‘파리스의 심판’에서는 아테네와 헤라, 아프로디테가 모두 벌거벗고 있는 것을 떠올릴 수는 있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뽑아야 하는 난관에 부딪힌 제우스가 그걸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판단의 임무를 넘겨버린 것이다. 여신들은 어쨌든 신이기 때문에 완벽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어서 우열을 가릴 수가 없는데 누구 하나를 뽑게 되면 뒤탈을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서 부린 제우스의 꼼수였다. 파리스는 세 여신 중에서 아프로디테를 뽑았다. 그녀가 제일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를 주겠다”는 이면계약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만으로 나의 의도를 의심할 수 있다. “뭐야? 그래서 성적 대상화는 외려 남자였다는 말인가?”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도 지금과 마찬가지의 젠더 불평등을 뽑아낼 수가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남자의 몸이었는데 그건 남자만이 유일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여자는 인간으로 치지도 않았기 때문에 누드를 만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고대에 기원전 4세기 전까지 여성 누드가 없었던 건 여자를 인간 취급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여자를 성적 대상화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상황은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로 가면서 뒤바뀐다. 기독교가 중심이 된 중세에 남녀 모두 누드 표현이 금지되었다가 조금씩 금기가 풀리면서 남자의 몸은 가리는 대신 여성의 몸만 벗기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이후 그렇게 벗은 여성의 몸은 특이하게도 ‘진리’라거나 ‘자유’, 혹은 ‘승리’라거나 하는 추상적 개념에서부터 ‘회화’나 ‘조각’, ‘시’ 등의 예술을 상징하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런 추상 개념을 남자의 누드로 표현하는 일은 거의 없다.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남성의 몸은 이미 그 시대 도시 국가의 윤리와 도덕을 체화해서 드러내는 ‘의미화 된’ 몸이지만 여성의 몸은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은 빈 원고지, 혹은 빈 캔버스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빈 캔버스에는 이제 어떤 것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앞의 ‘파리스의 심판’에서도 젠더 불평등은 내포되어 있다. 아테네, 헤라, 아프로디테는 신이다. 하지만 그 신들은 일개 인간 남성 앞에서 옷 벗고 미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심판자는 인간 남성. 그러므로 고대 그리스 사회의 위계는 제일 위에 남신, 그 다음이 인간 남자, 그 다음은 여신,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인간 여자 순서가 된다.


이제 미술관은 벌거벗은 여자들로 차고 넘친다. 순결을 가르치는 그림에서도 여성들은 벌거벗고 유혹적인 자세를 취하고 적군을 죽여 나라를 구하면서도 어여쁜 얼굴에 가슴을 드러내야 하고 자살을 하면서도 교태를 부린다. 현실 속 여성들은 남자의 에스코트 없이는 공공장소에 맘대로 드나들 수 없었던 시절이었을 때도 미술관 안에는 순결하면서 동시에 에로틱해야 하는 그 어려운 ‘미션’을 수행하는 여성들로 그득하다.02

 

 

화면해설.

이 글에는 피터 파울 루벤스 <파리의 심판> 사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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