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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1 <특집> [2019.01] 체육계의 추악한 민낯, 인권은 없다

글 박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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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대한민국 체육계는 금은동메달의 색깔로 선수가 흘린 땀과 노력의 가치를 차등해 평가해왔다. 금메달을 딴 선수는 영웅이 되고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는 역적이 됐다. 그래서인지 선수들과 지도자들은 메달에 더한 집착을 보였다. 과연 메달 색깔로 선수들이 흘린 땀의 질량과 노력의 시간을 평가할 수 있는 걸까.

 

메달 지상주의가 만들어 낸 운동 기계

최근 쇼트트랙 간판스타인 심석희 선수의 용기 있는 성폭력 고발로 국내 체육계는 큰 혼돈에 빠졌다. 뒤이어 적지 않은 선수들이 추가로 체육계 성폭력·폭력을 고발하면서 충격은 더욱 커졌다. 여러 기관이 앞다퉈 철저한 조사를 공언한 것도 국민적 충격이 큰 까닭이었다.

우리는 이쯤에서 한 가지 자문할 게 있다. 체육계에 성폭력·폭력이 만연해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체육계에서 선수의 인권 침해를 유독 관대한 시선으로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체육인이 ‘메달 지상주의’를 첫 번째 이유로 꼽는다. 체육 시민단체 ‘사람과 운동’ 회장인 박지훈 변호사는 “아마추어 선수들의 꿈은 이미 정해져 있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따는 것이다. 지도자들 또한 자신이 지도하는 선수의 메달 획득 여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현실이다. 메달 색깔에 따라 선수의 가치와 지도자 능력을 평가받는 풍토에선 과정보다 결과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렇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도자들의 폭언·폭행에 시달려온 한 빙상 선수는 “코치들이 때릴 때마다 하던 말이 있다. 나도 맞으면서 운동했다는 말이다. 때리고 난 다음에는 이렇게 해야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억울하고 서러워도 메달을 따면 모든 고통이 사라질 것이라 믿고 숱한 폭언과 폭행을 눈물로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심석희 선수가 고발한 조재범 전 국가대표 쇼트트랙 코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조재범 전 코치는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심석희 선수를 심하게 폭행했다. ‘정신 무장’이 폭행의 이유였다. 매질을 해서라도 정신 무장을 시켜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다는 게 조재범 전 코치의 지도관이었다.

투기 종목에서 이름난 어느 지도자는 “내가 지도한 선수가 메달을 따지 못하면 무능력한 지도자로 낙인찍히기 때문에 폭언·폭행을 해서라도 선수를 메달리스트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과거에는 여성 선수들의 군기를 잡는다는 핑계로 자기 방으로 불러들여 몹쓸 짓을 한 지도자도 꽤 있었다”고 털어놨다.

과정보다 결과로 평가받는 메달 지상주의에서 선수는 운동 기계일 뿐이다. 그리고 지도자는 더 많은 메달리스트가 나오도록 메달 작업장을 독려하는 공장장일 뿐이다. ‘젊은 빙상인 연대’ 여준형 대표가 “이러한 환경에서 선수 인권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배부른 소리”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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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인권을 가로막는 거대한 카르텔

대한민국 체육계의 인권 침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실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성폭력·폭력 사건이 터지고 있었다. 최근엔 대전지역 고교 야구부 감독이 훈육을 명목으로 식칼과 프라이팬을 들고 학생 선수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심석희 이전의 또 다른 심석희는 없었을까? 과거에도 많은 선수가 스포츠계 인권 침해를 고발했다. 심석희 선수처럼 폭력을 견디다 못해 숙소를 이탈한 선수도 많았다. 하지만 바뀐 건 없었다. 도리어 체육계로부터 유무형의 불이익을 받고, 같은 체육인들로부터 배신자라는 악담만 들을 뿐이었다.

이런 비정상적인 일이 반복됐던 건 제대로 된 조사와 엄중한 처벌을 막는 ‘거대한 카르텔’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심석희 선수의 성폭력 고발 이후 여러 빙상 선수가 언론을 통해 성폭력의 악몽을 고백하면서도 “내 신분이 공개되면 보복이 들어올 것”이라며 두려움에 떤 것도 막강한 존재 때문이다.

거대한 카르텔의 실체는 바로 대한체육회를 정점으로 한 경기단체들의 연합이다. 정부가 제아무리 강도 높은 조사와 처벌을 외쳐도 경기단체는 조사하는 시늉만 낼 뿐이다. 경기단체가 조사 결과를 보고하면 대한체육회는 경기단체의 손을 들어준다. 대한체육회장을 뽑는 이들이 선수가 아닌 경기 단체 수뇌부들이기 때문이다.

대한수영연맹이 대표적인 예다. 2015년 수영연맹은 성폭행, 성추행, 폭력 등을 저지른 국가대표 지도자 A 씨에게 자격 정지 6개월의 솜방망이 징계를 내렸다. 그리고 3년 후 A 씨를 일선 지도자들을 교육하는 역할인 ‘수영연맹 지도자 위원’으로 선임했다. 수영계에서 “범죄 3관왕에게 지도자 교육을 맡기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란 한탄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참고로 수영 코치가 솜방망이 징계를 받을 당시 수영연맹 회장과 지도자 위원으로 선임될 때의 대한체육회 회장은 동일인이었다. 현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이다.

체육계 인권 침해를 바로잡으려면 대한체육회를 중심으로 한 카르텔을 먼저 해체시켜야 한다. 자기들끼리 면죄부를 주는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선수 인권이 보호될 수 없고,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나 징계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카르텔을 깨려면 정부가 나서서 대한체육회를 개혁하고 대의원 중심의 경기단체회장 선거 제도를 획기적으로 고쳐야 한다.

하지만 대한체육회장의 경우 사퇴하기는커녕 여전히 체육계 인권 침해를 자기 손으로 바로잡겠다는 허언만을 늘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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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보다 값진 메달은 없다

2월 1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체육계 성폭력·폭력 근절을 위해 ‘스포츠 인권 특별 조사단’을 구성하자 체육 전문가들은 “정부가 가장 실효성 있는 조사단을 구성했다”고 평가했다.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체육 시민단체 ‘사람과 운동’ 강윤기 간사는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경기단체는 참여하지 않고, 외부 전문가와 인권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조사단을 구성하면 카르텔이 개입할 소지가 적다. 또 체육인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필요도 없어 냉철한 조사가 가능하다. 무엇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정치권의 입김에도 자유로운 조직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체육인들이 결과를 신뢰하고 수용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는 2014년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CCTV 사찰’을 엄정하게 조사해 체육계로부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인권위 조사관은 구단, 선수, 호텔 등을 상대로 발로 뛰는 조사를 진행해 베일에 가려져 있던 CCTV 사찰이 사실이었음을 밝혀냈다. 당시 조사로 프로 스포츠에 만연해 있던 구단의 선수 감시는 일시에 중단됐다.

2월 12일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년 혐오·차별 대응과 스포츠 인권 특별 조사를 중점 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연중 사업으로 스포츠 인권을 바로 세우겠다는 선언에 체육인들은 ‘이번만은 다를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이번 조사를 통해 체육계의 추악한 민낯이 더 많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엘리트 체육에 적잖은 충격파가 전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무지개를 보려면 세찬 비바람은 참아야 한다. 이제 경기장의 아이들에게 “노력이 메달 색깔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알려줄 때가 됐다.

 

 

박동희 님은 MBC 스포츠 플러스 뉴스의 기자이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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