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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3 <특집> [2019.01] 운동하기 편한 나라가 스포츠 선진국

글 남상우

 

칼에 베일 듯 날카로운 말들이 한국 스포츠계를 배회한다. 예전부터 개혁해야 한다는 말은 많았지만, 지금 것은 유독 날이 서있다. 인내의 문턱을 넘어섰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진짜 바꿔보자.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분노의 역류. 개혁을 위한 위원회가 총 가동됐다. 바야흐로 개혁의 시기다.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

 

한국 스포츠, 왜 엘리트 중심이 됐나

한국 스포츠의 독특성은 정부 주도성에 있다. 정부를 위한, 정부에 의한 스포츠 육성이 70년대부터 지금껏 이어졌다. 70년대에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엘리트 스포츠를 키웠다. 수출 중심의 경제가 절실했던 상황이라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려야 했다. 올림픽이 좋은 홍보 수단이었다. 정부가 나서서 엘리트 스포츠를 키웠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TV에 울려 퍼지는 애국가에 국민들의 자긍심은 고양됐다. 국가의 투자와 국민의 지지가 공모해 한국 스포츠의 엘리트 스포츠 중심성이 구축됐다. 엘리트 스포츠는 상징자본을 획득하며 존재의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상징자본을 획득한 엘리트 스포츠는 80~90년대로 와 일본과 북한과의 우월감 경쟁으로 그 정당성을 유지했다. 여기에 올림픽 성적이 곧 국력이라는 이데올로기도 한몫했다. 전국체전까지 가세했다. 시도 대항전의 전유물이 되고, 대회 성적은 대학 입시와 결탁했다. 결국 엘리트 스포츠는 국가 홍보, 지역 홍보, 학교 홍보의 손쉬운 수단이 됐다. 선수들은 그 홍보 수단의 부품으로 다뤄졌다. 이들에게 인권은 사치였다.

그렇게 한국 스포츠는 병들어갔다. 선수 저변이 궁핍해지는 상황에서도 마른 수건 쥐어짜듯, 엘리트 스포츠는 지금껏 홍보 기계로 유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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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중심의 한국 스포츠,
무엇이 문제인가

엘리트 스포츠는 제도 자체가 경쟁, 승리, 모범을 지향한다. 모범적인 승리를 위한 경쟁 시스템이 핵심이다. 전체 스포츠계에서 볼 때 없어서는 안 될 제도다. 문제는 우리 스포츠계가 엘리트 스포츠 중심으로 지나치게 쏠렸다는 사실이다. 특히 각 종목 단체에 그 쏠림 현상이 심하다. 인력 부족과 자금 부족, 행정력 부족 때문이다. 대한체육회 역시 엘리트 중심으로 조직이 돌아간다. 지역 체육회는 말할 것도 없다.

모든 제도가 그렇듯 한국의 엘리트 스포츠 역시 많은 문제를 지닌다. 첫째, 폐쇄성이다. 선수가 되려면 운동부에 들어가야 하는데, 문제는 그 운동부가 ‘섬’이라는 사실이다. 지도자가 왕인 섬.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다. 둘째, 비가역성이다. 운동선수를 꿈꾸고 2~3년 훈련하다 다시 제자리로 회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운동선수를 하려면 폐쇄된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왕복 경로가 아니라 편도다. 셋째, 폭력성이다. 지도자 폭력도 있지만, 엘리트 스포츠 제도 자체가 폭력적이다. 가해자는 없지만 구조가 가해를 하는 상황이다. 전국체전 성적만 대학 입시에 반영되거나 시스템의 부재가 대표적인 구조적 폭력이다.

이러한 엘리트 중심의 시스템은 다른 문제도 파생시켰다. 우수 선수로 길러지는 경로 구축 작업에 소홀하도록 만들었다. 스포츠를 성적 중심의 활동으로 변질시켰고, 그 과정에서 선수를 인간이 아닌 기계로 관점화했다. 성적에만 신경 쓰니 생활스포츠와 학교스포츠와의 연계가 끊겼다. 학교 울타리에 엘리트 선수 육성 제도(운동부)를 내재화시켜 운동 성적과 공부 성적을 충돌하게 만들었다. 선수 풀에 신경을 쓰지 않아 인구 감소에 따른 엘리트 선수 자원 부족에 당황한다. 지속 가능성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이젠 체질 개선을 위한 한약만으로는 어림없다. 수술이 답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스포츠계, 어떤 모습인가

스포츠 강국에서 스포츠 선진국으로, 지속 가능한 스포츠 생태계 구축, 우리 동네 스포츠클럽 등 스포츠 개혁을 외치는 이들이 추구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스포츠 선진국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스포츠 생태계를 만들려면 뭐가 필요할까? 학교체육을 강화하면 스포츠 선진국이 될까? 소년체전이 ‘축전’으로 바뀌면 스포츠 생태계가 완성될까? 스포츠클럽은 모든 병을 고치는 만병통치약인가? 내가 생각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스포츠계’의 모습은 단출하다. 운동하기 편한 나라다. 단출해 보이지만, 만들긴 쉽지 않다.

아이들은 아파트 놀이터에서 쉽게 운동한다. 지금의 놀이터는 좀 더 운동 친화적인 공간으로 변모해야 한다.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운동을 쉽게 할 수 있다. 경기단체는 운동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시설과 수요가 넘치는 학교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부모들은 아이를 맡기고 지역 스포츠클럽에서 필라테스 강습과 배드민턴 시합을 즐긴다. 스포츠클럽에 놀이방도 시급하다. 시간 내기 어려운 직장인들에겐 찾아가는 운동 버스가 제격이다. 운동을 권하는 직장문화가 선행돼야 한다. 스포츠 사랑방에선 노인들이 모여 체력을 기르고 교류한다. 그리고 이 모든 운동 활동은 기록돼 데이터로 누적된다. 스포츠 시설은 지금보다 더 많아지고 다양해진다. 나랏돈은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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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기 편한 나라, 시스템 구축 필요

운동하기 편한 나라는 학교 운동부를 없애고 학교 스포츠클럽을 활성화한다고 만들어지진 않는다. 핵심은 시스템이다. 시스템이란 한 개인으로 하여금 미래를 기획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요소의 총체다. 버스정류장의 전자 안내 시스템이 없었을 때 우리는 82번 버스가 언제 올지 몰랐다. 미래의 행동이 기획되기 어려웠다. 시스템이 생기자 기다리는 버스가 5분 후 도착할 걸 알게 되고, 옆에 있는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사 올 기획력이 생겼다. 시스템이란 이런 거다. 문제는 우리 스포츠계가 기본적으로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있어도 기형적이거나 내재화돼 유용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내 손안의 스포츠 시설 정보 시스템, 스포츠 지도자 선택 시스템, 지도자 평가 시스템, 스포츠클럽 예약 시스템, 스포츠 정보 누적 시스템 모두 없다. 체력 관리 시스템은 있지만 빈약하다. 학교 체육관 예약 시스템의 경우 동호회가 독점했다. 스포츠 공정 시스템은 대한체육회 내에 있어 무용지물이며, 학교 운동부 시스템은 학교 울타리에 내재화돼 학업과 충돌한다.

우수 선수 육성 시스템 역시 기형적이다. 이젠 시스템에 집중해야 한다. 운동선수들도 그 시스템 안에서 인권을 향유할 수 있다. 선수들이 지도자를 평가하도록 하면 지금과 같은 지도자의 무소불위 권력 지형에 자그마한 균열을 낼 수 있다. 자신의 운동 경력을 누적시킬 정보관리 시스템이 마련되면 국민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가진다. 재미는 배가 되고 운동은 편해진다. 삶의 질은 이럴 때 높아진다.

 

스포츠 개혁, 한 방에 되는 게임이 아니다

이런 환경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대화다. 엘리트 중심의 한국 스포츠계를 개혁하는 일은 한 방에 되는 게임이 아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대화로만 가능한 일이다. 어떤 시스템이 필요한지, 기존의 무엇을 줄이고 어디를 늘려야 할지, 그 일을 누가 할지 등에 대해 묻고 답하고 논쟁하고 타협해야 한다. 지식보다는 지혜가 요구되고, 상호 간의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다.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개혁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상호 이해관계자들과 꾸준히 만나야 한다. 방향은 운동하기 편한 나라다. 방안은 시스템 구축이다. 선수들의 희생으로 겨우 잡은 개혁의 기회를 부디 이번에는 살렸으면 한다. 한 방의 개혁이 아닌, 장기 수선의 마음가짐이 필요한 때다.

 

 

남상우 님은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스포츠정책연구실 연구위원으로 근무 중이며, 스포츠사회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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