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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음 [2019.01] 진정 회복이 가능한 사회를 원한다면

글 김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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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마지막 날 강북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가 진료실에서 환자의 칼에 찔려 사망했을 때 정신질환자(정신장애인) 당사자는 물론 인권 운동을 하던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임세원 교수가 환자들에게 진심을 다하는 좋은 의사였기에 슬픔은 더 컸다.

 

억압과 폭력에서 생존한 사람들

임세원 교수의 사망에 충격을 금치 못하는 상황에서도 이 비극적인 사건이 어떤 식의 여론으로 퍼져나갈지도 함께 예상됐기에 비극의 한 가운데서 온전히 슬퍼할 수도 없었다. 예상대로 정신질환자를 강력히 통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구 정신보건법이 폐지되면서 비자의 입원(강제 입원) 요건이 강화된 것이 원인이라는 성토도 들려왔다.

정신질환자의 일반적인 범죄율은 비질환자에 비해 결코 높지 않다는 점은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상식이 됐다. 그러자 중대 범죄의 경우에는 치료시기를 놓친 조현병 환자 등에서 훨씬 범죄율이 높다는 통계가 제시됐다.

일반적인 수준에서 정신질환과 범죄 사이의 인과관계를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인과관계를 물음으로써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인과관계가 높다면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이 작동하는 정치 공동체에서 정신질환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공권력의 강제 개입이 언제든 허용될 수 있는 걸까? 왜 한국에서 특정 정신질환은 종종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전환하는가? 정말 사회의 안전과 환자의 치료를 원한다면 우리는 다른 물음을 던져야 한다.

오래전부터 정신장애 운동 단체들은 스스로를 ‘생존자’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생존이란 특정한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지켰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질병을 가지게 된 순간 당사자들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살아남았다는 의미에 가깝다. 우리는 종종 터지는 범죄 행위의 근거에 어떤 정신질환이 있는지 지속적으로 물어왔다. 그러나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억압과 폭력, 배제에 노출돼 있는지는 거의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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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치료는 무엇인가

2013년 처음 정신과 보호(폐쇄) 병동을 방문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된 진정사건 조사를 위해서였다. 문을 열자 병동 전체를 가득 채운 지린내가 엄습했다. 환자들은 한 방에 7명씩 바닥에 깔린 매트리스 위에 아무렇게나 누워있었다. 햇볕이 잘 들지 않았고 산책을 나설 장소도 없었다. 옥상에서 몇 사람에게 담배 피울 시간을 주는 것이 전부였다. 내가 만난 환자는 3개 병원을 회전문식으로 돌며 461일간 입원해 있었다.

적지 않은 정신질환자들이 열악한 치료 환경에 놓여 있다. 특히 가난한 정신질환자들이 정신과 병동에 더 많이 더 오래 입원한다. 2016년 기준 정신과 병동 전체 입원 환자의 66%는 의료급여 환자였고, 의료급여 환자는 건강보험 환자 대비 입원 기간이 2배나 길었다. 최근 개선되고 있지만 2년 전까지 의료급여 환자에게 지급되는 약 값과 치료비는 하루 2,770원이 전부였다. 정신질환의 치료와 회복은 여느 질병 이상으로 계급화돼 있는 실정이다.

물론 열악한 재정 여건에서도 병원 규모와 관련 없이 질 높은 진료를 위해 애쓰는 의료진과 병원 직원들이 있다. 그럼에도 의료급여 환자들을 주로 수용하는 작은 규모의 병원들을 방문할 때마다 정신질환에 걸리는 것,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일이 암이나 척수손상 같은 중대한 질병이나 사고보다 더 치명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과연 그런 강제 수용은 치료 효과가 있을까? 환자들은 질병이 만성화되면서 사회·가족·자신의 인격으로부터 소외된다. 어떤 환자들은 트라우마를 겪고 원한을 품는다. 이런 환경에서 누가 치료를 기대할 수 있고 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가?

정신질환 병력이 있는 사람의 범죄가 터질 때마다 모든 언론이 그 위험성을 주장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왜 정신보건시스템을 이런 상황으로 존속했을까? 2015년까지 우리나라의 강제 입원 비율은 73.5%로 10~20% 내외의 미국, 대만, 영국, 이탈리아 등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다. 정신질환에 걸려 일할 수 없게 된 가난한 사람들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격리하는 데만 성공한 것이다.

정신질환자는 위험하니까 강제 입원을 더 쉽게 시켜야 한다는 주장에는 강제 입원이 치료에 도움이 되는지, 환자들을 더 위험하게 하지는 않는지, 자발적으로 치료에 나서는 환자조차 병원에서 멀어지게 함으로써 위험을 증가시키지는 않는지에 관한 고려가 없다. 2017년 새로운 법이 시행되면서 감소했지만, 여전히 한국은 일본 다음으로 높은 강제 입원이 이뤄지고 있다.

 

생존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얼마 전 가칭 ‘임세원법’ 공청회가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 주최로 열렸다. 더 좋은 치료 방안, 불가피한 경우 강제 입원을 안전하고 합당하게 할 수 있는 방안을 토론하는 일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번 공청회에서도 결국 주요 쟁점은 강제 입원의 형식과 요건으로 돌아갔다.

정신장애인 단체들이 현장에서 반발한 것은 당연했다. 이 모든 논의도 중요할 수 있지만, 그전에 ‘생존자’들과 ‘생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눈을 돌려야 한다. 임세원 교수의 죽음만큼 안타까운 죽음이 정신병원 폐쇄병동 안에서 일어나지 않았는가? 제대로 된 치료 없이 폐쇄된 곳에 가둬두고, 온몸을 강박하고, 모멸적인 대우를 받아 더욱 질병이 악화된 사람이 영원히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일은 없었을까?

의료 현장의 어려움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인권, 사회 보장 재정, 의료 행정의 불가피성, 사회 안전, 의사 집단의 합리적인 경제적 요구, 환자 가족의 어려움 등 다양한 가치와 고려사항을 터놓고 이야기하며 더 나은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전에 국가가 그동안 방치해온 가운데 죽어갔고, 인격을 잃어왔고, 자신을 파괴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진지한 관심을 가져야 하며, 필요하다면 사과와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회복의 시작이며 좋은 의료 시스템과 인권의 토대다. 그러한 토대가 없다면 어떠한 대화가 됐든 정신질환에서 생존한 사람들에게는 기만적이고 모멸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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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영 님은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을 거쳐 현재는 서울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으며, 장애가 있어 휠체어를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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