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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음 [2019.01] 학생 인권을 말하다 드라마 <SKY 캐슬>

글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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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SKY 캐슬>은 시청률 1%에서 시작해 최고 시청률 23%를 기록하는 신드롬급 성공을 거뒀다. 이러한 신드롬급 성공이 가능했던 건 무엇 때문일까? 거기에는 ‘입시’라는 이름으로 고통받는 ‘학생 인권’의 문제가 놓여 있다.

 

대한민국 상위 0.1%의 사교육

드라마 <SKY 캐슬>은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SKY 캐슬 단지 내의 사교육을 소재로 하고 있다. 재력과 정보력을 모두 갖춘 부모들은 자신들의 자녀를 이른바 SKY로 불리는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온갖 사교육을 동원한다.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영재(송건희) 가족을 축하하기 위해 파티가 벌어지지만, 다른 부모들의 목적은 오로지 영재의 합격 비결이 뭔지 알아내는 것뿐이다.

결국 영재 뒤에 성공률 100%를 자랑하는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한서진(염정아)은 자신의 딸 예서(김혜윤)를 김주영에게 맡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결국 한서진은 김주영을 입시 코디로 들이지만, 영재 엄마 이명주(김정난)의 자살 사건이 벌어지며 그 이면에 김주영이 연관돼 있다는 걸 눈치챈다. 영재가 좋아하던 입주 도우미를 부모가 내쫓자 이에 반발하는 영재에게 김주영은 “최대의 복수는 서울대 의대에 들어간 다음 그걸 다시 포기하는 거야”라고 말해 한 가정을 철저히 무너지게 하는 데 일조한다. 한서진은 이 일을 알고 김주영에게 자신의 딸을 맡기는 게 꺼림칙하지만 딸의 간절한 요구에 결국 그를 받아들이게 된다.

<SKY 캐슬>이 방영 후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요인은 두 가지였다. 먼저 대한민국 상위 0.1%의 사교육은 도대체 어떠한가에 대한 호기심이다. 일반적인 형편의 시민들 관점에서 보면 이런 사교육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이를 전담시키는 입시 코디를 기용하는 데 수십억을 쓴다는 건 물론 과장된 면이 있지만, 실제로 강남권에서 꽤 큰 비용으로 거래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입시 코디네이터라는 새로운 직업이 등장하게 된 건 이른바 ‘학생부 수시전형’이라는 입시제도 때문이다. 학력고사 점수만이 아니라 아이의 포트폴리오를 제대로 갖춰야 수시로 합격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입시 제도를 이용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주는 새로운 직종이 생겨난 것이다. 입시 컨설턴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은 한때 사교육의 중심이었던 학원 강사들만큼 중요한 직업군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강남의 부유층에서 기용한다는 컨설턴트에 대한 호기심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정작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요인은 또 다른 이유에 있다. 그들이 막대한 투자를 들여 성공시키고자 했던 사교육은 결국 파국으로 끝난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김주영은 자신이 맡은 예서를 전교 1등으로 만들기 위해 시험지 유출 사건을 조작하고, 그 사실이 들통나자 살인을 저지르고 다른 학생에게 누명을 씌운다. 결국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시험지 유출 사건에 연루된 예서는 자퇴를 선택하게 되고 홀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드라마는 이러한 전개를 통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던 시청자들에게 판타지적인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엇나간 사교육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입시라는 이름으로 무시돼왔던 학생들의 인권을 찾아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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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욕망에 반기를 든 아이들

<SKY 캐슬>에는 이른바 ‘스터디 큐브’라고 불리는 일종의 미니 공부방이 등장한다. 이 스터디 큐브는 실제 시중에서도 팔리는 제품으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작은 공간에서 공부에만 집중하도록 만들어진 곳이다. 이 드라마 때문에 불티나게 팔렸다는 스터디 큐브는 사실상 공부방을 빙자해 만든 작은 감옥이나 다를 바 없다.

극 중 변호사인 차민혁(김병철)은 가부장적인 아버지상을 연기했다. 쌍둥이 아들들을 위한 공부방을 직접 만들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그 안으로 밀어 넣는가 하면, 피라미드 상을 놓고 그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지 않으면 누릴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언어폭력이 일반화돼 있고, 미국 하버드에 들어갔다는 맏딸과 쌍둥이 아들들을 비교하며 입에 담지 못할 말까지 내뱉는다.

폭력적인 상황을 자주 겪는 아이들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아이들은 편의점에 떼로 몰려가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려 하고, 부모는 그 사실을 알고도 대수롭지 않게 치부한다. 오히려 편의점 사장에게 돈을 주며 아이들의 도둑질을 못 본 척해달라고 요구한다. 차민혁의 딸은 자신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 아버지 때문에 하버드에 들어갔다고 거짓말을 하고 가짜 대학생으로 지내다 발각돼 벌금을 물고 만다.

결국 엇나간 어른들의 욕망에 반기를 들고 나선 건 아이들이다. 3대째 의사가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집착을 갖고 있는 예서 할머니 윤여사(정애리)에게 예서는 의문을 제기한다. “3대째 의사가문, 그거 왜 만들어야 되는데요?” 당연하다 생각하고 있는 게 전혀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아이는 말한다. 차민혁은 가짜 대학생으로 돌아온 딸에게 ‘실패작’이라고 했고, 딸은 아빠에게 ‘실패한 인생’이라고 역공했다. 자식한테 존경받지 못하는 부모야말로 실패한 인생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피라미드 경쟁에 인권은 있나

<SKY 캐슬>에 등장하는 김주영은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상상 초월의 일도 서슴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내신 관리 및 자·동·봉·진(자율·동아리·봉사·진로활동), 교우관계, 심리, 건강, 수면 스타일 등을 모두 분석해 최적화시키는 일을 한다. 실제로도 이런 입시코디네이터가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 이런 일을 담당하는 건 학부모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많은 학부모들은 어째서 자녀의 입시에 온 힘을 다하려고 하는 걸까? 그건 아마도 본인이 먼저 스펙사회의 피라미드 경쟁을 몸소 겪어서일 수 있다.

<SKY 캐슬>은 아이들의 사교육 시스템과 동시에 SKY 캐슬에 입주하기 위한 자격 조건인 주남대 병원의사 사회의 피라미드 시스템도 언급한다. 정형외과의사인 예서 아빠 강준상(정준호)은 어떻게든 병원장이 되기 위해 로비를 일삼고, 강준상의 밑으로 줄 서기를 한 우양우(조재윤) 같은 인물 역시 마찬가지다. 또 강준상이 줄을 대고 있는 병원장은 정치인과 로비하며 더 높은 자리로 가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결국 이 주남대 병원의 구조는 스펙으로 엮어진 수직 계열화된 피라미드와 같다. 그들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안간힘 쓰고, 다른 동료들을 자신이 밟고 올라갈 디딤돌 정도로 여긴다. 그러다 보니 실력보다는 로비와 연줄 그리고 스펙이 그 사람의 성공을 가늠하는 엉뚱한 결과로 이어진다.

<SKY 캐슬>은 대한민국의 입시 제도를 꼬집는 풍자극으로,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드라마다. 그것은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바라봐야 하는 일이 영 불편하게 느껴지는 데다 그것이 실제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또는 감당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최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시험지 유출 사건을 보며 우리가 어찌 이 드라마를 그저 드라마일 뿐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SKY 캐슬>은 치열한 경쟁사회야말로 기본적인 인권을 파괴하고 나아가 가정을 파괴시키는 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꼬집는다.

 

 

정덕현 님은 대중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분석하는 대중문화평론가로, 현재 SBS 열린TV 〈정덕현의 TV 뒤집기〉에 출연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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