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2019.10] 섬사람

사진 강제윤

 

1

 

바람 부는 날에는 섬으로 갔다.
바람 잔잔한 날에도 섬으로 갔다.
슬픔이 목울대까지 차오른 날에도 섬으로 갔다.
기쁨이 물결처럼 너울져오던 날에도 섬으로 갔다.
속절없이 그리운 날에도 섬으로 갔다.

······

인생이 나를 저버린 날에도 섬으로 갔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날에도 섬으로 갔다.
한 달 동안이나 아무도 나를 불러주는 이 없던 날에도 섬으로 갔다.
그 절망의 밑바닥에서 상현달처럼 다시 사랑이 차오르던 날에도 섬으로 갔다.
그 수많은 생애의 날에 나는 섬으로 갔다.

섬은 나를 비난하지 않았던 것처럼 애써 위로하려 들지도 않았다.
말없이 묵묵히 같이 있어주던 섬.
그래서 나는 또 남은 생애의 날들에도 더 자주 섬으로 갈 것이다.
당신 또한 섬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기를.
그 섬이 주저앉은 당신에게 새로운 ‘일어 섬’이 되어주기를.
이 사진들이 그 섬으로 가는 입구가 될 수 있기를.

- 〈속절없이 그리운 날에는 섬으로 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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