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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생각 [2019.10] 사람을 생각하는 건축

글 류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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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행주4호 전경

 

 

‘소행주’는 마을을 품은 집이며,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을 말한다. 인권 친화적인 집은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는 집일 것이다. 여러 집들이 마을에 살면서 서로 돌봄을 실현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마을을 만드는 것이며 옛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이다.

 

인구의 10%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

얼마 전 강원도로 휴가를 가는 길에 나는 청천벽력 같은 전화를 받았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한동안 하늘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다. 평소 아팠던 여자 동기지만 그렇게 황망히 죽을 줄은 몰랐다. 황급히 차를 돌려 병원으로 달려갔다. 장례식장에서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친구를 보내고 다음날 나는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된다. 자살이란다. 아마 직접적 사인은 투신 후 즉사겠지만 짐작건대 이 친구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우울증이 아닌가 생각된다. 심한 우울증으로 제대로 먹지 못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려야만 했을 것이다. 뼈만 남은 상태에서 심한 통증으로 고통을 호소했을 것이다. 소통이 필요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전체 인구의 10%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 한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우울증은 기분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 체계에 이상이 생긴 질환이다. 특히 노인들의 우울증이 증가되는 추세이며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보통 정신과 병원에서는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친구의 보호자에게 우울증 극복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알려 준다. 이야기 들어주기, 함께 시간 보내기, 스트레스 요인 줄여주기 등이 대표적 방법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친구에게는 언제나 옆에서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그런 이웃이 있는 공간과 집이 필요한 것이다.
우울증이 오기 전에 앞서 찾아오는 것은 외로움이다. 혼밥·혼술이 유행하며 혼자 살 수밖에 없는 환경적 요인이 사회적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그들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은 턱 없이 부족하다. 모든 사람이 외롭지 않게 일상에서 커뮤니티가 이뤄져야 한다. 서로가 ‘따로 또 같이’ 관계 맺고 소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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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행주 옥상. 빨래대에 널린 이불이 햇볕과 바람에 잘 마르고 있다.

 

 

사람은 행복을 위해 함께 살아야 한다

소행주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지어지는 집이다. 아이를 함께 키우고 서로 돌봄을 실현하는 공간이다. 아이들은 학원이 아닌 동네마당에서 뛰어놀고, 부모들은 함께 모여 식사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행복한 공간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15개동 143세대 350여 명이 사는 소행주 건축이 지어졌고 또 진행 중이다. 소행주 건축에는 인권친화적인 요소가 많다. 2016년 1월 19일에 개정된 ‘장애인 엘리베이터의 건폐율·용적률 완화’ 건축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소행주 1호를 짓기 시작한 2011년에는 엘리베이터가 옥상까지 올라가는 것이 불법이었다. 옥상에 휴게 시설을 만들어 놓아도 엘리베이터가 옥상까지 올라가지 않으면 입주민들은 출입하지 않는다. 편하게 옥상을 이용하기 위해선 불법을 감행해서라도 엘리베이터를 만들어야 했다. 많은 사람이 옥상 마당을 자유롭게 이용함으로써 도시의 밤하늘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옥상도 공용공간으로 보고 텃밭과 녹화는 물론 바비큐 장, 그늘 가림막, 빨래 건조대 등을 설치했다. 더 나아가 옥상에 공용 세탁기를 설치해서 이불 빨래를 권장했다. 소행주 입주민들은 이불 빨래를 옥상에 너는 것에 후한 점수를 줬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합법화를 위한 움직임이 많아졌고, 그 결과 3년 전에 어느 정도 완화된 법이 통과됐다. 이는 소행주가 만들어낸 직접적인 성과였다.
더불어 소행주 건물을 지을 땐 이웃에 대한 배려를 꼭 마련한다. 가능하면 ‘반평 공원’이라 칭하는 다양한 형태의 쉼터를 마련한다. 이곳은 이웃과 소통하는 자리이자 사람을 귀중히 여기는 공간이며 자연스럽게 관계가 맺어지는 공간이다. 산을 올라가는 노인들은 툇마루 같은 쉼터에 앉아 땀을 식히면서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복받을 것이여!”라며 배려의 공간을 칭찬한다.
그리고 어린이와 노인, 장애를 가진 사람이 편안해하는 공간이면 모두에게 편하다는 건축관을 반영해 화곡동 소행주 ‘이을’의 계단 높이를 낮췄다. 보통 계단의 높이인 175mm에서 20mm 정도 낮춰 155mm로 만들었다. 이윽고 아이들이 신나게 계단 위를 뛰어다녔으며, 2~3층 정도의 높이는 계단을 이용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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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곡동 소행주 ‘이을’. 계단의 높이를 낮춰 아이들도 편안하게 오르내릴 수 있다.(좌) / 소행주4호 반평공원. 주민들의 휴식처이자 놀이공간으로 활용된다.(우)

 

 

함께 소통하며 만들어가는 주택

사실 잘 상품화된 풀-옵션 주택은 반 인권적이다. 붙박이 가구의 경우 포름알데히드 등 몸에 안 좋은 화학성분이 들어가 있어 신축 병의 근원이 된다. 나아가 이러한 부분은 집 구성원의 요구에 맞게 살림을 장만하고 고르는 재미를 빼앗는 측면으로 봤을 때 행복추구권의 박탈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소행주를 인권 친화적 집이라 칭해도 좋다. 사람은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개성을 존중받으며 살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 그 문화적 취향이나 다양성을 표현하고 발휘하는 행위가 집을 마련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드러나야 한다.
소행주는 잃어버린 마을을 살리려는 공동체 복원을 취지로 삼는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함께 집을 만들어간다. 사람은 인성도 감성도 풍성하게 성장해야 한다. 지나가다가도 서로서로 인사할 수 있도록 집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웃사촌이 있어야 한다. 때문에 마당이라는 공간을 통해 자연을 배울 수 있도록 한다. 더불어 마당에서 흙냄새를 맡고, 새싹이 자라는 것도 보고,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꽃과 나무를 통해 자연을 느끼도록 한다. 하지만 요즘은 도심 건물 1층에 흙이나 녹지공간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어, 대부분 옥상 녹화를 통해 마당의 장점을 살리려고 노력한다.
또한 생활문화운동 측면으로도 접근한다. 로컬 푸드 차원의 동네 생협 이용을 늘려 신선한 채소와 야채를 그때그때 사서 요리하도록 한다. 요즘 냉장고가 계속 대형화되면서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양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럴수록 냉장고 안에 보관되는 음식은 점점 오래되고 결국 신선하지 않은 것을 먹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작은 냉장고를 활용해 음식의 내용물을 쉽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부족한 것은 아침저녁으로 시장과 생협에 방문해 재료를 마련하는 것이 건강하게 사는 지름길이다.
마지막으로 소행주의 핵심은 커뮤니티실이다. 모든 소행주에는 커뮤니티실이 있다. 세대 당 3.3㎡의 분양가 비용을 부담해 만드는 공간으로 주민들의 소통의 장이다. 함께 식사를 함으로써 혼자 밥을 먹는 외로움도 극복할 수 있는 장소다. 이를 전체 세대의 공동 거실이라고도 표현한다.
사람을 생각하는 건축이란 ‘따로 또 같이’를 실현하는 것이다. 마당을 통해 입주자들의 외로움과 단절을 해결하고 또 관계를 새롭게 형성하면서 공동체의 의미가 꽃피우는 것 아닐까.

 

 

류현수 님은 건축운동가로서 소행주 공동대표이자 자담건설 대표이사, 공유주택협의회 이사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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