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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인권위 [2019.10] 2019 인권옹호자회의를 마치며

글·사진 최준석

 

예정된 3일 행사 중에 이틀 동안 비를 내렸다. 제주도답게 빗줄기는 소나기처럼 거칠었다가 이슬비처럼 포근하기도 했다. 늦여름 비의 심술로 자칫 행사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슬며시 생겨났지만, 다행히 비는 적당히 그리고 바람도 필요한 만큼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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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옹호자회의를 준비하기까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인권의 지역화 및 지역의 인권화를 도모하기 위해 협력 사업을 벌인 지 몇 년이 됐지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인권위가 2012년과 2017년에 지방자치단체의 인권제도 및 행정과 관련해 2차례 권고를 한 뒤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유야 어쨌든 인권의 지역화 및 분권화 그리고 인권위와 지방인권기구의 협력은 단순히 구호만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고민 속에서 연대·협력 방법의 독자적인 생존이 선택과 집중의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권위가 쇠퇴에 길을 걷던 몇 년 동안 지자체의 인권제도와 행정이 오히려 활성화됐다”고 평가했다. 양쪽의 관계가 꼭 그렇게 반비례했던 건 아니지만 시기적으로 비슷하게 들어맞았다. 그 즈음 지역에서는 자생적으로 인권업무에 대한 고민을 했고, 그것을 지원하고 협력해야 할 인권위는 오히려 방기하고 있었다는 비판이 그 핵심이라고 할 것이다.
2012년 인권위의 지방인권제도 및 행정에 대한 첫 번째 권고 이후 지자체에서는 인권조례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이를 추진할 전담 부서나 전담 인력을 배치하고, 인권위를 구성하고 인권기본계획을 수립해 효율적인 집행 체계의 기본 틀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권업무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았다. 지자체에서 하는 대민업무의 대부분이 인권업무이기도 했고 또는 아니기도 했다.
인권위를 포함한 지자체 인권업무는 원칙적으로 규범·제도·정책의 유기적인 조화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결국 그 또한 사람이 수행하는 것이라 사람의 유기적 조화가 필수적이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 간의 유기적 조화란 논의를 통해 방향에 합의하고 가치를 맞춰 나가며 실무 역량을 쌓아나가는 것이다. 인권옹호자회의는 그런 취지에서 기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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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인권 업무를 위한 토론

전국에서 140여 명의 참가자들이 2박 3일의 일정으로 지자체 인권제도와 행정, 인권정책의 각 분야에 대해 논의했다. 첫날은 한상희 교수의 기조연설을 시작으로 각 2개의 세션으로 나누어 논의가 이뤄졌다. 첫날 오후 세션에는 협력적 거버넌스를 주제로 지방자치단체 인권위의 위상과 역할 그리고 지자체 인권 행정의 미래에 대해 발표 및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동시에 진행된 다른 세션에서는 지자체에서의 공무원 인권교육을 주제로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공무원 인권교육의 경험을 공유하고 공무원 인권교육을 수행하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참가자들은 동시에 진행된 2개의 세션 중에 원하는 곳에 참석해 토론할 수 있었다. 각각의 세션은 주제에 맞게 일반론적이고 원칙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이 제시되고 다른 발표는 실제 지자체에서의 경험을 공유하는 발표였다. 세션별로 2개의 발표가 배치되고 토론은 분임토론으로 진행됐다. 분임토론에 참가한 사람들이 실제 많은 시간 동안 다른 지자체의 경험을 듣고 자신의 기관에서 업무에 참고할 수 있도록 기획했으나 항상 그렇듯 시간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분임토론에서 토론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몇 가지 과제를 던졌다. 예를 들어 지자체에서 공무원이나 시민을 대상으로 교육을 잘하기 위한 방안이나 효과적인 기본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방안을 분임토론 참가자들의 지혜를 모아 각각의 분임에서 과제를 도출하고 그것을 다시 전체 모임에서 토론해 공유했다. 직접 그 세션에서는 참여하지 않았어도 다른 분임의 발표를 듣는 것만으로도 어떤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으나 의도를 충족시키기에는 역시나 시간 부족이 문제였다.
지자체에서 수행하고 있는 인권 행정은 다양하다. 인권교육을 하고, 인권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인권영향평가를 하고 조사와 구제 업무를 담당하기도 한다. 거기에다 지역의 시민사회와 협력해 지역의 인권 현안을 해결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인권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도 턱없이 모자랄 뿐만 아니라 지역의 시민사회 또한 그리 우호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게다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이런 업무들이나 활동에 대해 잘 이해하지도 못한다. 이런 배경 속에서 어떻게 지속 가능한 인권 업무를 할 것인지가 여전히 과제로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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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옹호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고민 필요

140명의 참가자는 지자체에서 인권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 광역 지자체 인권위원, 지역의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주를 이뤘다. 이들은 지역에서 인권 거버넌스를 이루는 핵심 구성원들이다. 인권옹호자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독립성과 다양성의 원칙 속에서 기존에 존재하는 규범과 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뒤집어 보는 지혜와 습관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국가기관이나 지자체 기관의 업무는 법적 안정성을 중요 가치로 삼고 반복적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인권기구의 업무 그리고 인권옹호자의 활동은 법적 안정성보다 인권 친화적 변화를 주요 가치로 추구해야 하는 본질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김원규, ‘인권 침해 구제업무를 하는 인권옹호자의 역할’). 그 일선에서 업무를 하고 있고 인권옹호자들이 업무 방식이나 추구하는 가치에서 혼란을 느끼는 것은 이러한 면에서 당연하다. 인권옹호자들에게 앞으로도 인권 친화적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다양하고 열린 실험적 시도를 필요로 할 것이다.
빡빡하다고는 하지만 며칠 동안의 일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업무와 활동에서 앞으로의 방향이나 구체적인 지향을 발견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이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약간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모두 몇 번의 실패를 거듭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을 때 더불어 우리는 약간의 안도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2박 3일 동안 서로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고 발표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무엇 하나라도 담아 가는 것이 있다면 여전히 이런 자리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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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님은 국가인권위원회 홍보협력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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