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 > 인권수첩 > 학생운동선수의 삶을 들여다 보다
초·중·고 학생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

인권수첩 [2019.12] 학생운동선수의 삶을 들여다 보다
초·중·고 학생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

글 김현수 사진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전국 5,274개 초·중·고교 선수 63,211명을 대상으로 한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성폭력 피해자는 2,212명으로 전체 3.8%에 달할 정도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지속가능한 정책권고안을 마련해 학생 선수의 인권 보장으로 체육계의 혁신을 이뤄내야 하는 이유다.

 

1

 

학교 안에 ‘섬’처럼 합숙소가 있다. 학생들은 가지 않는 곳, 오직 선수들만 생활하는 곳. 실태조사 결과 이곳에서 심각한 인권침해 사례들이 드러났다. 오른쪽 건물이 학생선수 합숙소이다.

 

 

다시 문제의 시작

지난 해 12월, 쇼트트랙 국가대표 조○○ 코치는 자신이 가르치던 선수를 미성년자이던 시절부터 폭행하고, 성폭행했다는 사실이 미투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고 호소한 피해자가 유명 선수였기에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스포츠계 인권침해 문제의 심각성이 또다시 제기된 가운데 정부는 즉각적으로 대응에 나섰다. 그 결과 지난 2월 교육부, 문체부, 여가부 등 관련 기관들이 합동으로 인권위에 총 14명으로 구성된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하 특조단)을 출범하게 되었다. 이런 규모와 속도로 대응조직을 출범한 것은 스포츠 역사상 처음이라 이번 기회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왜 전수조사인가?

특조단은 지난 11월 7일 초·중·고교 학생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이번 조사는 인권위 차원에서 두 번째다. 전수조사는 아니지만 2007년 실태조사를 실시한 경험이 있었다. 다른 기관에서는 대한체육회가 2010년부터 2년 주기로 스포츠계 폭력·성폭력 실태조사를 벌인 바 있는데 가장 최근인 2018년 조사가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 코치 사건이 발생하면서 조사방식이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때문에 이번에 출범한 특조단에서는 인권침해의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요구와 인권위의 의지를 통해 전수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인원은 올해 5월 1일,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학생선수 전체 5,274개교 63,211명을 대상으로 했다. 그리고 특조단은 학교별 조사 담당 교사 지정, 조사 전 과정에서 코치나 감독등을 내용으로 하는 교사용 매뉴얼로 만들어 배포했다. 또한 스포츠 인권이 무엇인지, 조사의 목적이 무엇인지 등의 내용을 짧은 동영상으로 만들어 학생들이 동영상 시청 후 조사에 응하도록 설계했다.

 

학생인권과 아동인권의 사각지대, 학생선수의 삶

인권위가 처음 실태조사를 벌이던 10여 년 전에는 현장에서 조사에 응하는 학생선수들이 편하게 답변하기도 어려웠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언어폭력 74.3%, 신체폭력 74.9%, 성폭력 14.9%가 나왔다. 수치만으로도 충격적인 결과였다. 이번 조사는 이에 비해 낮은 수치인 언어폭력 14.9%, 신체폭력 14.7%, 성폭력 3.8%로 조사되었다. 수치상으로는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지만 지난 10년간 스포츠 분야는 물론이고, 학생, 아동 인권의 상황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조사 결과는 교육부가 매년 실시하는 학교폭력 전수조사 결과의 두 배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원으로 보면 심각성이 더 잘 드러나는데 언어폭력 9,035명, 신체폭력 8,440명, 성폭력 피해를 입은 학생선수들은 2,212명에 이른다.

 

폭력이 내 잘못이라 여기는 아이들

가장 심각한 건 폭력의 내면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학생선수 14.7%가 신체폭력을 경험했다는 사실도 심각하지만 더 큰 문제는 폭력 피해자인 학생선수들이 스스로 피해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초등학생 때부터 나타나고 있다. 이번 조사에 나타난 답변을 보면, 다음과 같다.

“미워서 맞는 것이 아니니까 맞아도 괜찮아요. 아니 그냥 운동하면서 맞는 거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요.”(초등, 남자, 배구)
“코치님에게 맞는 이유는 제대로 하지 않아서니까 맞는 건 상관없어요.” (초등4, 여자, 태권도)

조사결과에서도 폭력 피해를 입은 후 무려 38.7%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답변했다. 지도자가 ‘너를 위해서 그런 것’이라고 말하고, 부모님도 피해를 입은 학생선수에게 앞으로 더 잘해서 맞지 않도록 격려하면서 학생선수는 이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신체폭력 피해를 입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답변도 무려 84%에 이른다.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인식, 즉 인권감수성을 높이는 교육이 초등학교부터 시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밖으로 드러낼 수 없는 아이들

두 번째 특징은 폭력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것이다. 학생선수 2,212명이 성폭력 경험을 호소하였고, 이 중 성관계 요구-강간 피해도 24명에 이르는데 초·중·고등학생 모두 과반수 이상이 피해를 내면화하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했다. 괜찮은 척 웃거나 그냥 넘어감, 얼굴을 찡그리는 등 소심한 불만표시 등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문제가 나타났다. 이와 같은 소극적 대처와 관련한 응답은 폭력 피해에서 중학생은 78.6%, 고등학생은 80.8%에 이르고, 성폭력 문제는 중학생 52.3%, 고등학생 55.7%에 이른다. 만약 피해를 요청한다고 해도 대부분은 가족이나 동료들에게 이야기 하는 정도이고, 체육단체, 상담원, 경찰 등 수사기관에 신고한 경우는 극히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학생의 경우 더욱 심각했다.

 

공부할 시간이 없는 아이들

세 번째 특징은 학생선수들에게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공부하는 학생선수’라는 개념을 현장에 정착시키기 위해 교육당국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학생들의 운동시간이 턱없이 길어서 학업은 오히려 학생선수들에게 이중고가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루 평균 4시간 이상 훈련한 초등학생이 24%, 수업결손도 24.9%가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학생 선수의 32.7%가 4시간 이상 훈련을 하고, 고등학생 선수는 무려 4시간 이상이 55.9%로 나타났다. 주말·휴일에 운동하는 빈도도 초등학교 71.6%, 중학교 80.1%, 고등학교 83.1%로 이런 상황에서는 학습권 보장은 고사하고, 성장기 아동들의 휴식권도 심각하게 침해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스포츠, 그들만의 세상

사실 그동안 스포츠분야의 ‘특수성’이라는 것은 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 중요한 부분이다. 학생선수들은 ‘학생’이나 ‘아동’이라는 관점에서 조망된 것이 아니라 ‘학생선수’라는 특수한 관점에서 문제를 보아왔다. 비단 스포츠계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도 마찬가지였다. 이를테면 ‘운동하는 선수들이 좀 맞을 수도 있지, 강하게 푸시하지 않으면 실력이 늘겠냐’ 등의 시각이 그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일반적인 훈련 상황이나 합숙훈련 환경을 통해 주요 가해자들인 지도자나 선배선수들이 권력화, 서열화를 만들어내고 이것이 대물림되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진학이나 취업의 열쇠를 쥐고 있는 지도자가 절대 권력자로 군림하는 구조를 공고히 하게 되고, 선배가 후배를 지배하는 계급구조를 만들어낸다. 이런 문화가 존재하는 이상 이 문제는 근절되기 어렵다.

 

2

 

군대 내무반을 연상하게 하는 한 중학교 축구선수들의 합숙소

 

 

외국의 스포츠와 우리

우리나라 스포츠계에서 벌어지는 폭력, 성폭력 문제를 비롯한 인권침해 문제들은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다. 이런 점은 우리나라 스포츠계의 독특한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스포츠는 놀이문화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놀려고 하는데 갑자기 이기라고 때리고, 윽박지르고 지배한다면 이미 그것은 놀이도 스포츠도 아니다. 외국에서는 이런 이해들을 적절히 공유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스포츠는 놀이라는 접근보다는 승리지상주의와 같은 경쟁의 민감함이 상당히 큰 편이다. 이런 점에서 해외에는 스포츠분야에서 인권침해 문제가 생기면 스포츠계의 문제로 국한시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사회문제로 바라본다.
이 같은 차이로 스포츠는 경쟁의 민감함을 줄이기 위해 해외사례를 통한 해법을 당연히 검토해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반발은 늘 ‘현장을 모른다’는 목소리로 이 문제를 치부해 왔다.

 

특조단의 미래

실제로 지난 10여 년간 사회에서 스포츠인권문제를 몰랐던 것이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올림픽, 월드컵 등을 비롯한 국제 경기대회에서 성과가 나오면 다시 묻히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이런 점에서 완결성과 지속성 있는 문제해결 원칙은 매우 중요하다. 첫째, 그동안 스포츠계 인권침해 문제들과 관련하여 좋은 대책이 상당히 많았지만 이런 대책들이 현장에서 동의를 얻지 못하면서 다시 10년이 흘러 또 같은 대책들을 이야기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실천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 문체부 스포츠혁신위원회를 비롯하여 대한체육회와 대한장애인체육회, 그리고 각 종목경기단체 및 지역 체육회들을 대상으로 더 듣고, 더 알리는 일을 지속해야 한다. 둘째, 스포츠인권실태 전수조사를 정례화해 실시할 필요가 있다. 전수조사 자체로 예방효과가 상당하기 때문에 그동안 지적되어 온 사각지대를 없애고, 전후 비교를 통한 지표의 관리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본다. 이외에도 상시 합숙훈련 폐지, 운동시간 제한, 아동인권 증진을 위한 인권교육, 스포츠사교육 시장 모니터링, 스포츠인권캠페인 등 수많은 일들이 산적해 있다. 앞으로 특조단은 먼저 각종 실태조사와 현장 모니터링 등 다각도의 조사 결과와 각 경기 단체들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직권조사결과를 종합해 실현 가능하고 지속가능한 정책권고안을 마련하여 스포츠 혁신에 앞장 설 것이다.

 

 

김현수 님은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 단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전 목록 다음 목록

다른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