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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중 녹색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특집] Interview [2020.02] 전염병의 그늘에 가린 인권 실태
백재중 녹색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글 김혜정 / 사진 봉재석

 

코로나19의 등장으로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코로나19는 초기 확산 속도가 빨랐던 데다가 정확한 감염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사람들은 더욱 불안에 떨었고 사회는 우왕좌왕했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 속에서 드러난 환자와 의료인, 국민들의 인권 실태는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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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코로나19에 대응하시느라 바쁘실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어떤 일을 하시고 계신가요?

녹색병원은 민간병원으로 현재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원이 아니어서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환자가 언제 어떻게 병원을 방문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긴장을 하고 있죠. 병원에는 아무래도 면역이 약한 환자들이 입원해 있고 외래 방문도 많아 이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방역 활동은 중요 과제입니다. 전염병이 확산되어 지역사회에 본격적으로 전파된다면 모든 지역 의료기관들이 최일선에 나섭니다. 이런 경우에도 대비하고 있죠.

 

첫 발생지가 중국 우한지역이라는 점 때문에 중국인과 동양인에 대한 혐오가 확산되고 있는데요. 직접 경험하신 혐오나 차별 사건이 있으신가요?

중국인에 대한 차별은 아니지만 중국에서 귀국한 분들의 경우 잠복기에 해당하는 이주간은 의료기관에서 근무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간병인으로 일하는 중국 동포들이 꽤 많은데요, 이분들의 경우 고향에 다녀오게 되면 근무를 못하시게 되는 거죠. 권고 사항이긴 하지만 다른 의료기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단 의료기관뿐만이 아니에요. 식당에서도 입구에서 손소독제를 주며 중국에 다녀온 적이 있느냐고 묻는데, 이런 중국 기피 현상이 결국에는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환자의 인권이 지켜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감염자의 ‘신상털이’를 하거나 혐오 발언을 하는 등의 사건도 있었는데요. 이런 현상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환자 정보 공개의 문제는 ‘적절성’과 ‘사생활 보호’ 측면에서 명확하게 지침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메르스가 유행했을 때에는 정부가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이번에는 투명하게 공개하는 듯하지만 환자와 관련된 정보 공개가 지나치게 자세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역학 조사 보고서가 그대로 유출되기도 하는데, 지금 같으면 신상털이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많은 환자들이 이런 부분에서 스트레스와 우울감,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전염병에 걸린 것 자체로도 불안하고 공포스러운데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격리돼야 하고, 치료 과정도 불편합니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는데, 메르스 환자와 환자 가족들은 아직도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트라우마로 남지 않도록 관심과 배려를 가져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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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들이나 감염 의심환자들에 대한 강제 격리는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되지만 한편으론 인권 침해가 되기도 할 텐데요.

일반적으로 질병 치료에서 ‘자기 결정권’은 중요한 원칙 중 하나입니다. 완치 가능한 조기 암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 명백한 자해 행위일 테지만 강제로 수술실로 끌고 갈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의심환자나 확진자들은 강제로 격리하거나 강제치료에 들어가는데요, 어떻게 보면 강제로 치료를 하는 셈이니 헌법이 보장하는 자기 결정권과 충돌합니다. 정신 질환도 마찬가지이고요. 인신구속이 따르는 강제치료는 전염병 전파를 방지하기 위해 환자 본인이 희생을 감수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이분들에 대해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격리된 상황에서도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전염병 환자나 정신 질환자는 범죄자가 아니라는 전제를 반드시 기억하고 강제격리나 강제치료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질병과의 싸움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의료진들의 인권도 짚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의료진들은 어떤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나요?

일차적으로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들은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이 있습니다. 중국에서도 수백 명의 의료진이 코로나19에 감염돼 다수가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의료진의 건강권과 노동권을 지키기 위한 지침이 마련돼 있지 않지만 있다고 해도 지켜지기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우선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들에 대한 격려와 응원이 필요합니다.
공항과 항만 방역 일선에 계신 분들, 접촉자를 추적하는 분들, 격리병원과 선별진료소에 계시는 의료진들 모두 탈진 상태입니다. 전염병 유행이 길어질수록 피로감이 더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전염병의 경우 환자분들이 혐오와 낙인에 시달리지만 이를 진료하는 의료진들도 마찬가지예요. 의료진들의 가족까지 학교나 직장에서 기피 대상이 되기도 하죠. 환자가 입원해 있는 병원 자체도 마찬가지고요. 감염환자가 다녀가거나 입원해 있다는 소문이 돌면 병원 매출에도 타격을 줍니다. 민간병원은 이런 환자를 기피하게 되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죠.

 

의료인들의 노동환경은 환자의 건강과도 직결돼 있습니다. 전염병 대응 측면에서 봤을 때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까요?

전염병 유행에 대한 대응 성공 여부는 시설이나 인력, 시스템이 평소에 얼마나 갖춰져 있느냐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합니다. 전염병 치료를 위한 격리병상은 대부분 공공병원 중심으로 구성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국내 공공병원 비율이 6~7% 정도라는 겁니다. 민간병원에 의존하는 의료공급 체계에서는 전염병 대응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죠. 전염병에 대응하려면 공공의료를 확충하는 게 필수 조건입니다. 전염병에 유행할 때는 다들 인정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잊어버려요. 메르스 유행 이후 역학 조사관 인력을 확충하기 위한 예산이 의회에서 삭감됐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사스와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 등 최근 5~6년 간격으로 신종 전염병이 유행하고 있어요. 어쩌다 발생하는 재난이 아니고 예고된 재난으로 받아들이고 대비해야 합니다.

 

코로나19를 둘러싼 혐오와 차별과 관련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지금 우리 사회에는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뿐만 아니라 질병과 장애에 대한 혐오가 만연해 있다고 봅니다. 본인이 원해서 병에 걸리거나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평생 질병과 장애를 피해갈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도 없는 거고요. 질병과 장애도 자연스러운 존재 방식의 하나일 뿐입니다. 누구나 완벽하게 건강한 상태를 지속하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건강과 질병, 장애는 서로 의존적입니다. 코로나19에 대한 걱정은 불안과 공포를 넘어 혐오와 낙인, 배제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마케팅에 이용하는 언론과 정치인도 결코 질병과 장애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겁니다. 일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분들께 혐오와 배제라는 돌을 던지지 말고 연대와 응원으로 함께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재중 교수는 녹색병원에서 호흡기내과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으며 인권의학연구소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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