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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다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인권이 자란다 [2020.02] 군과 트랜스젠더 인권
군은 다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글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2020년 1월 22일 육군은 복무 중 성전환수술을 받고 여성으로서 군 복무를 이어가기를 희망한 변 하사에 대해 강제 전역을 결정했다. 변 하사의 수술은 부대의 승인 하에 해외여행 허가를 받아 이루어진 것이며, 같이 복무하던부 대원 및 상급자들도 변 하사가 계속해서 군인으로 복무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군은 단지 「군인사법」 등 계관법령상 음경·고환 결손이 심신장애 3급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전역심사 연기 권고조차 불수용한 채 전역조치를 내렸다. 그렇게 하여 “성별 정체성을 떠나 군에 남고 싶다”는 한 군인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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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병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이 사건의 의미는 단지 법적인 쟁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설령 법원에서 강제 전역 처분의 위법성을 인정하여 변 하사의 복직을 인정하더라도 막상 군이 트랜스젠더 군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여전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사건은 단지 한 트랜스젠더 군인에 대한 강제 전역이라는 위법성을 넘어, 군이 트랜스젠더를 어떤 존재로 바라봤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광범위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그간 군과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주로 병역 이행과 관련해서 이루어졌다. 2002년 병무청 웹진 통권 51호에는 징병전담 의사가 작성한 성주체성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와 트랜스젠더에 대한 글이 게재되었다. 병무청 웹진에 이런 글이 실린 것은 그만큼 병무 행정에서 트랜스젠더를 마주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병역법」에 따라 일정 연령 이상의 법적 남성들은 모두 병역의무를 지는 상황에서, 법적 성별은 남성이지만 여성으로 정체화한 트랜스젠더 여성, 반대로 법적 성별은 여성이지만 남성으로 정체화한 트랜스젠더 남성들은 계속해서 병역 문제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트랜스젠더 이슈를 상대적으로 일찍 다루어왔음에도 군이 트랜스젠더를 대하는 방식 은 이들의 인권을 존중하기보다는 무지와 혐오, 나아가 폭력적으로 이루어졌다. 2006년 트랜스젠더 남성에 대한 징병검사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 사건의 당사자는 법원에서 허가를 받아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별 정정을 마친 사람이었다. 그는 징병 신체검사 시 법원 결정문 및 자신의 상황에 대한 진단서를 제출했으나, 징병전담의사는 하체의 상태를 직접 봐야 한다며 초음파실로 데려가 두 명의 의사가 보는 앞에서 바지를 내리게 했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격권 침해를 인정하고 구제권고 결정을 내렸고(국가인권위 2007. 7. 20.자 07진인533결정), 이후 병무청은 관련 규정을 개정해 트랜스젠더 남성의 경우 서류 제출만으로 ‘전시근로역’ 등급을 받도록 했다.
징병과정에서의 트랜스젠더 인권침해는 이후에도 이어졌다. 특히 2010년대 병역 비리 문제가 불거지자 병무청은 자의적으로 징병신체검사 기준을 강화했고, 이 과정에서 병역이행을 면제받기 원하는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해 고환, 음경 적출 등 신체 침습적 외과수술을 받을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해서는 병역기피 혐의로 표적 수사를 벌이고 잇달아 병역법 위반으로 고발조치를 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9년 전 병역을 면제받은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해 병무청이 수술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병역기피 혐의로 고발하고 병역면제 처분을 취소하면서 입대를 요구한 사례도 있었다. 문제는 병무청이 트랜스젠더 여성을 병역기피자로 낙인찍고 군대에 갈 것을 요구했음에도 막상 군에서는 이를 받아들이기 위한 어떠한 준비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수술을 받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입대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훈련소에서 바로 귀가 조치를 당하고 또다시 재검을 받아야 하는 상황들도 이어졌다. 그렇게 트랜스젠더의 삶과 정체성에 대한 군의 무지 속에서 많은 이들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나마 위 병역기피 고발 건에 대해서는 잇달아 무죄판결이 나왔고 2014년 사건 역시 병역면제취소가 위법하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징병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이 개정되어 성주체성장애를 이유로는 4급 보충역, 5급 전시근로역 처분만 이루어지게 되었고, 징병 과정에서의 신체 침해적인 수술을 요구하는 일은 비교적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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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의 존재에 대한 부정

군과 트랜스젠더의 문제는 주로 징병과 관련되어서 이야기되었던 것에 비해, 이번 강제 전역 사건은 트랜스젠더 직업군인이 계속해서 복무할 권리를 침해당한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이 문제는 국가공무원의 하나인 군인으로서 계속해서 노동할 권리를 침해당한 것이기도 하며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고용차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노동권 침해와 차별의 위법성은 앞으로의 법적 투쟁에 있어서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될 것이다.
이 사건과 앞서 이야기한 징병 과정에서의 트랜스젠더가 겪은 인권침해는 본질적으로는 같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바로 트랜스젠더 개인의 성별 정체성이 오롯하게 인정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령 육군이 강제 전역을 결정한 것은 성전환수술 결과 음경·고환을 상실했고 이것이 심신장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규정의 문언만을 보면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군인사법」 상 심신장애 등급은 1982년 제정된 것이다.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사회적으로 알려지기도 전에 만들어진 이 규정을 과연 오늘날 2020년의 시점에서 트랜스젠더 군인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육군은 강제 전역 결정을 내리기 전에 앞서 이 점을 치밀하게 검토했어야 함에도 이에 대해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군의 판단은 변 하사를 트랜스젠더 여성이 아닌 음경·고환을 상실한 한 명의 남성군인과 동일하게 취급한 것이며, 그녀의 정체성을 사실상 부정한 것이다. 이는 앞서 징병 과정에서 병무청이 트랜스젠더 여성의 삶을 거짓된 것으로 보고 병역기피자로 낙인찍은 것과 동일한 문제를 갖고 있다. 바로 개인의 성별 정체성을 존중하지 않고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부정한 문제다. 그렇기에 이 사건은 단지 군 복무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넘어 트랜스젠더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침해당한 중대한 인권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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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군인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일반 국민과 동일하게 헌법상 보장된 권리를 가진다. 제1항에 따른 권리는 법률에서 정한 군인의 의무에 따라 군사적 직무의 필요성 범위에서 제한될 수 있다.”
2016년 제정된 「군인복무기본법」은 제3조 제1항에서 위와 같이 군인의 기본권 보장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과거에는 특별권력관계 이론을 들어 군인의 기본권을 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이 법을 통해 군인의 기본권도 당연히 보장되며 오직 한정된 이유에서만 제한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간 군은 트랜스젠더를 마주하며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하기는커녕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권침해와 차별을 앞장서서 만들어왔다. 앞서 말했듯 병무 행정을 통해 이미 오래전부터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인식하고 고민해왔을 군이기에 지금의 이러한 태도는 실로 문제가 있다.
변 하사 사건에 대한 육군의 결정에 시민인권단체들의 규탄이 이어졌고 변 하사의 복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대리인단이 결성되었다. 이들은 소청 및 행정소송을 통해 법적 투쟁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이 이루어지기에 앞서 군 스스로 트랜스젠더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들의 존재가 오롯하게 인정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법원은 2018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리며 ‘다를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군에 묻고 싶다. 군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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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희 변호사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대변하고 있으며 성적지향 및 성별 정체성(SOGI) 인권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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