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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2021.07] 군 성폭력 방치 돌림노래, 멈출 때 한참 지났다

글 조혜지(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

 

군 성폭력 방치 돌림노래, 멈출 때 한참 지났다

 

군사법원 판결문, 인터넷 공개

 

군사법원 최근 2년간 성범죄 판결 158건 분석. 해당 기획보도의 첫 발은 단신 기사 제목 한 줄이었습니다. 법조팀 직전 일터인 정치부에서 잠깐 스쳤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현장의 한 장면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굵직한 주무부서들에 대한 질의가 끝나면 늘 잠시잠깐 언급됐던 ‘군사법원’ 대상 감사. 주제도 늘 반복됐습니다. 형편없는 성폭력 사건 실형율과 군 조직 중심의 판결을 향한 비판, 나아가 전체 판결 중 10%도 차지하지 않는 순정 군 사건을 처리하는 군사법원이 ‘왜 필요 하느냐’는 군사법원 ‘존재 회의론’까지. 지난해 10월 국감 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덮고, 봐주고, 지적만 하고 ‘군 성폭력’ 방치 3박자

 

여당 S의원 2020년 9월에 군 장교가 디지털 성범죄로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받았어요. 피해자와 합의가 안 돼 엄벌을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피해자와 합의도 안 된 상황에서 집행유예를 하면 어느 국민이 (군사법원을) 신뢰하겠습니까.

 

야당 J의원 실형률, 집행률, 벌금형… 민간법원과 군사법원의 차이가 큽니다. 군사법원에 성범죄 전담 재판부가 있습니까?

 

고등군사법원장 현재 없습니다. (중략) 지리적 문제, 인력의 효율적 운영 측면에서 굉장히 어려움이 있습니다.

 

국감 때마다 돌림노래처럼 제기되는 이 문제를 실제 판결문을 통해 분석해보기로 했습니다. 지난 2월 검색 서비스가 시작됨과 동시에, ‘성범죄’를 키워드로 판결문을 추출하고 사건 행태와 양형을 기준으로 데이터베이스를 쌓아갔습니다. 현실은 국회에서 접했던 통계 이상을 입증했습니다.

 

동료 부대원과 그의 친구로부터 끔찍한 성폭력을 당하고도 군에서 부적응자 취급을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여군,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하급자에게 ‘너만 괜찮다고 하면 다 괜찮다’는 취지로 설득하려 한 상관, 한미연합훈련 중 술에 취해 미군 여군을 성추행하고 ‘주취 감경’으로 항소심에서 벌금형으로 감형된 가해자.

 

판결문은 반듯한 글씨로 적혀 있었지만, 판결문 속 군 내 성폭력 피해자가 감당해 온 현실은 어지럽게 꼬여있었습니다. 부대에선 ‘묻으라’ 했고, 어렵게 고발이 받아들여지면 군사법원은 ‘봐준다’ 했습니다. 국회는 부조리를 인지했지만, 대책 마련만 지시할 뿐 사실상 방치했습니다.

 

개선책은 임시방편 뿐. 정부가 군 성폭력 방지를 위해 신설한 군 인권자문변호사 제도가 대표적입니다. 대부분 군법무관 출신들로만 구성돼 ‘조직 보신주의’ 한계가 우려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위촉 자문변호사 중에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성폭력 사건의 구체적 사실을 언급하며 성폭력 가해자들을 대리한 경험을 다수 광고한 인사도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 이전에, 모두가 알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그리고 지난 5월 22일. 군과 군 사법, 입법부의 오랜 방치 속에 한 군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군은 참상을 묻으려 했고, 심지어 바로잡고자 한 피해자의 의지를 ‘비정상’으로 몰아갔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군 사법전문가들은 두 가지 태도로 답했습니다.

 

‘이번에도 바뀌긴 힘들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바뀌어야 한다’. 회의감과 간절함이 교차하는 데엔 그간의 숱한 피해 사실과, 수십 년 동안 반복돼 온 군·정부·국회의 돌림노래가 있을 것입니다. 대선 정국을 앞두고 관심이 꺼질까 전전긍긍하는 한 군 인권 전문가는 또 다시 긴 방치가 이어질까 걱정했습니다.

 

“중간에서 사건을 포기하는 피해자들이 정말 많아요. 부대에서도 이말 저말 듣고, 남은 군 생활을 ‘가해자와 함께 있을 수밖에 없다’는 압박도 있고…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원하지도 않는 처벌 불원을 해주는 경우가 정말 많죠.”

 

결혼을 앞둔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뒤, 국민들은 정확하게 죽음의 진원지들을 가리켰습니다.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국민동의 청원부터 군사법원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국회는 국민적 공분에 한참 늦었지만 폐지에 준하는 군사법원 개혁론과 성폭력 방지를 위한 입법에 발을 뗐습니다. 죽음에 함께 분노한 시민들은 이제 압니다. 무엇부터 잘못됐는지를 말입니다. 이제 정말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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