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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슈 [2022.10] 제주지역에서 혐오와 차별 반대하기

글 신강협(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제주혐오표현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조례 제정 촉구 집회(제공: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제주혐오표현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조례 제정 촉구 집회(제공: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제주혐오표현은 무엇이 있나?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있어 가장 큰 비극 중 하나가 바로 제주4·3일 것이다. 제주4·3은 제주도민들에게 깊게 새겨진 트라우마와 같다. 그 두려움과 상처로 인해 제주4·3의 피해자들은 오히려 기나긴 세월을 숨죽이며 살아왔다. ‘빨갱이’로 딱지 부쳐지는 제주4·3 피해자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온갖 사회적 차별과 모멸적 시선을 겪어야 했다. 지금도 불쑥 사회 한편에서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혐오표현으로 인해 그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 제주4·3 수형인 재심과 관련 극우단체가 이념으로 재단하여 빨갱이로 낙인을 찍으니 검찰이 재심 청구를 망설이기도 했다. 여전히 제주4·3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장애인에 대한 동정 어린 시각은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삼는 인식으로 나아가고, 그러한 인식은 장애인 혐오로 나아가며 사회의 배타적 경계를 설정한다. 장애인에 대한 혐오는 장애인들이 사회로 나오는 데 있어서 광범위한 사회적 장애물로 작동한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이 사회로 나오는 것에 별로 호의적이지 않다.

 

여성에 대해서는 큰 사회적 이슈로 논쟁이 커지면서도 겉으로는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의 대표성으로서 여성에 대한 인식과 차별은 명료하게 존재한다. 제주도의회 여성들의 비율은 45명 중 9명이 여성이지만, 이중 선출직은 5명에 불과하다.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여성들에 대한 차별인식이 존재한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에 분풀이 폭력의 대상이 되거나, 심지어는 살해당하기도 한다.

 

제주에서 혐오와 관련하여, 가장 심각한 부분 중 하나는 학생들에 대한 혐오일 것이다. 제주라는 작은 지역 안에서조차 시 지역과 시외 지역으로 나누어 학교를 서열화하고 학생들을 차별한다.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된 학교와 학생은 아예 사회의 아래 계급으로 취급되고, 당사자들도 자존감에 큰 상처를 얻고 이미 패배감에 젖어 있거나 자존감을 크게 상실하기 마련이다. 본인들의 능력과 상관없이 학교의 등급에 따라 이미 사회적 낙오자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 제주가 가진 혐오와 차별의 문제는 상당히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여러 사회적 장애물을 만들었고 배타적인 사회적 경계선은 점차 늘고 있다.

 

 

 

제주혐오표현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조례 제정이 실패한 이유는?

 

제주에서 혐오표현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조례에 관한 고민은 사실 2021년 초부터 시작되었다. 제주에서는 서울과 전주에서 조례 제정 실패 사례를 거울삼아, 제주도의원과 인권단체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이 함께 공동작업으로 기초적인 조례 조항 구성하였다. ‘제주혐오표현 방지 및 피해자 지원조례 입법연구’를 통해 여러 근거를 마련하고 조례의 초안을 구성하였다. 입법 연구의 마지막으로서 다양한 시민사회 관계자를 초청, 시민사회의 의견도 반영하여 최종 보고서를 완성하였다. 이후 혐오표현에 대한 지역 조례는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진행하는 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잠시 논의되었지만, 본격적인 조례제정운동으로 나아가진 못했다. 이후 조례는 해를 넘겨 발의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도의회의 의결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많은 의원이 공동발의에 동의하면서 통과 전망을 밝게 하였다. 하지만 해당 상임위에 차별금지법에 관한 혐오세력들이 등장하면서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공동발의를 했던 의원들과 공동발의에 동참했던 해당 상임위 위원장조차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의식하면서 소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응해 시민인권단체들은 적극적 조례제정행동을 전개했다. 이후로 관망하던 장애인단체와 여성단체, 그 외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조례 제정에 연대를 표명하고, 조례 제정심사가 있던 날은 많은 소수자가 모여 조례 제정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혐오세력도 문제이지만, 선거를 의식했던 많은 의원의 소극적 태도로 결국 ‘심의 보류’라는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6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나고, 국회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이 좌절되는 등 상황이 정리되었다. 그러면서 제주지역 내 시민인권 운동진영을 중심으로, 특히 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를 중심으로 제주지역에서라도 차별금지에 대한 씨앗을 마련해보자는 의도로 두 번째 조례제정운동이 거세게 일었다. 심의보류 되었던 안건을 상정하기조차 꺼리던 의원들을 압박하여 상임위 안건으로 상정시켰고, 혐오세력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지방선거 결과 해당 상임위의 다수 의원과 대표 발의를 했던 의원이 낙선하면서 제정 동력이 많이 상실되었다. 대표 발의 의원이 끝까지 노력했지만 제정은 무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는 조례 제정에 대한 거부감 사유로 ‘법률 유보의 원칙’을 강하게 내세웠다. 이에 대해 시민인권단체는 ‘포괄적 위임 원칙’ 등 적절한 대응책을 활용하지 못했고, 결국 조례는 회기를 넘겨 자동 부결되었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전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전국 동시다발 기자회견 _ 2021. 5. 17. (제공: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전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전국 동시다발 기자회견 _ 2021. 5. 17. (제공: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

 

조례 제정 좌절, 이후 얻게 된 것은?

 

제주특별자치도 혐오표현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조례제정운동을 통해 제주지역 내 시민인권 운동진영은 여러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 제주지역의 혐오와 차별 상황을 제주사회의 다양한 진영에서 인지하게 되었다. 사실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을 통해 전국적으로 차별과 혐오의 문제, 평등사회에 대한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렸지만, 지역 내에서 여론은 뜨뜻미지근한 정도였다. 하지만 제주지역 내에서 지역 버전의 혐오표현 방지와 차별금지의 내용을 담은 조례 제정을 통해 다양한 영역에서 보이지 않는 듯 행해지고 있는 혐오와 차별에 관한 문제의식을 제주 전역으로 확산시켰다. 제주4·3 유족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 제주지역 내 장애인과 여성, 노동 그리고 청소년(학생), 이주민, 난민 등 다양한 소수자에 대한 혐오 차별의 현실적 사례를 발굴 인지하고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확산했다. 여러 차별과 혐오의 문제가 다양한 우리의 삶 영역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시민이 인지하게 된 것은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둘째, 차별금지와 관련된 지역 조례제정운동에 있어서, 시민인권단체는 혐오세력에 대한 대응도 중요하지만, 행정이 가지는 저항도 극복해야 함을 깨달았다. 조례 제정 과정 중에 ‘법률 유보의 원칙’과 ‘포괄적 위임 원칙’에 대한 법적 논쟁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법률 유보의 원칙은 법률에 근거하지 않는 조례로 시민들의 권익을 무분별하게 규제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포괄적 위임 원칙은 법률에 의거하지 않더라도 헌법 가치에 부합한다면, 지역민들의 권익을 위해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두 개의 원칙이 부딪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두 개의 원칙은 상호보완적이다. 법률을 위반하지 말되, 최대한 헌법적 가치를 보장하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하지만 선거를 앞둔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와 지방행정권력의 자기 이해 관계 안에서 포괄적 위임 원칙은 사라지고, 법률 유보의 원칙만을 강조하였다. 결국 조례 제정은 멈췄고, 지방자치를 지탱하는 법적 원칙이 활용되지 못했다. 필자가 보기에 헌법적 가치를 중심에 둔다면 모든 이들의 권익을 보장하고, 권리를 증진하는 데 있어서 혐오표현 방지 조례는 포괄적 위임원칙에 해당하며 꽤 정당한 명분도 있다. 정치 세력들과 행정부의 이해관계에서 이런 원칙들이 오용되고 있음이 매우 유감스럽다.

 

셋째, 제주지역 두 번째 조례제정운동의 전개 과정과 의회에서 제정 좌절의 과정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문제는 크게 대두되지 않았다. 즉 조례 제정에서 혐오세력은 특정 종교의 투표수에 기댄 정치적 압력에 지나지 않았다. 조례 제정 과정의 논쟁은 오히려 혐오와 차별에 대한 개념 논쟁, 현실적인 규제 원칙에 대한 우려, 법적인 원칙 문제에서 발생하였다. 지방자치단체 행정이든 의회든 간에 혐오세력 주장의 허위에 대해서 이제는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대한 갈등과 논쟁이 핵심이 되었다. 성소수자 논쟁이 여전히 작은 문제는 아니지만, 이제부터 혐오와 차별에 대한 법률 제정 운동은 다양한 이해관계, 즉 어떻게 다른 정치적 이해관계를 이해하고 설득하느냐의 문제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혐오방지 법안 제정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제주지역에서 혐오와 차별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은 지역적 차원에서 지금까지 차별금지법 제정운동과 조금 색다른 측면이 있었다. 전국적인 차별금지법제정운동과 그 맥을 같이 하면서, 지역적인 특징이 있는 혐오와 차별의 상황을 발견하고, 이를 근거로 차별금지법제정운동에 동참하며, 지역적 특색이 반영된 지역 버전의 차별금지법인 ‘제주 혐오표현방지 및 피해자 지원조례’에 대한 제정운동을 전하였다. 지역의 특성에 맞게 차별금지를 위한 법 제정운동을 전개했다는 의미가 생겼다. 각 지역의 현장에서 드러나는 많은 혐오와 차별의 사례들을 발굴하고 그 사례를 근거로 지역별 조례 또는 법률 제정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혐오와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또 다른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혐오를 방지하고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심정적 동조가 아니라 실제로 법적 동의를 얻을 수 있게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노력들이 필요하겠다.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는 제주지역의 평화와 제주도민 각 계층의 인권 증진을 위해 활동하면서 강의 등을 통해 인권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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