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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기 [2022.10] [기후위기 속의 인권] ⑤ 인류 종말, 파국의 경고를 계속 외면하면?

글 강수돌(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인권」은 기후위기로 인해 소외당하거나 발생할 인권 침해의 오늘과 내일을 직시하고 경각심을 높이고자 ‘기후위기 속의 인권’ 연재를 기획하였다. 빠른 이해를 돕기 위해 강수돌 교수가 선택한 대중영화를 통해 기후위기 사례를 알아보았다. 「인권」은 독자와 함께 2022년 기후위기와 인권위기를 넘어서는 변화와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⑤ 인류 종말, 파국의 경고를 계속 외면하면?

 

어떤 40대 초반의 남자가 갑자기 죽었다. 아내와 어린 자녀를 남겨놓고 홀로 떠났다. 그는 너무 억울해서 염라대왕에게 호소했다. “대왕님, 저는 아직 젊고 자식도 있으며 할 일이 태산인데, 왜 이렇게도 일찍 저를 데려오셨나이까? 정말 억울합니다.” 이 말에 대왕이 답했다. “자네에게 이미 그렇게 살면 위험하다고 세 차례나 거듭 경고하지 않았나?” 이에 남자가 물었다. “아니, 언제 그런 경고를 하셨단 말인가요?” “어허~, 자네가 16살 때 너무 위험하게 놀지 말라고 다리를 부러뜨린 게 첫 경고요, 자네가 28살 때 술을 너무 마시지 말라며 졸도시킨 게 둘째 경고요, 자네가 37살 때 만성 과로하지 말라고 대상포진을 내린 게 셋째 경고였다네. 그런데도 이를 모두 무시했으니 마침내 여기 오게 되었느니라.” 염라대왕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선 남자는 가슴을 치며 눈물로 후회했다.

 

우리는 평소에 염라대왕의 경고는 아니지만 교육과 언론, 과학자와 사회운동가를 통해 삶의 위기나 파국에 대한 경고를 거듭 듣는다. 경제위기, 정치위기, 금융위기, 일자리위기, 기후위기, 코로나위기, 미세먼지 위기, 미세플라스틱위기, 쓰레기위기…. 나열하면 끝이 없다. 그러나 이런 경고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그때뿐, 우리는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마치 아무 일 없는 듯 살아간다. 아직 세상은 돌아가고 나도 아직 숨은 쉬니까! 그러나 우리의 인생과 세상을 자세히 보면 죽음이나 파국은 한순간에 다가오는 결과가 아니라 늘 진행되는 ‘과정’이다.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는 이미 생명체가 편히 살 수 있는 임계치인(산업화 이전에 비해) 1.5℃ 상승에 근접했다. 게다가 벌과 나비의 개체수가 현저히 줄고 있다. 남극과 북극 빙하도 급속도로 녹고 있다. 알프스계곡의 눈이 녹아 재난도 반복한다. 국내외를 막론, 가뭄과 산불, 홍수와 폭풍 같은 재해도 수시로 닥친다. 2022년 한국도 연초에는 산불과 가뭄이, 여름에는 폭염과 홍수가, 초가을에는 태풍(힌남노, 무이파, 므르복)이 닥쳐왔듯이 지구는 거듭 경고장을 보내고 있었다. 문제는 이 경고장들을 얼마나 진지하게 인식하면서 얼마나 철저하게 그 위기들에 대응하고 있느냐인 것이다. 생각건대, 우리 인류는 불과 500년짜리 자본주의 삶의 방식에 중독된 나머지 자연(대우주)의 경고에 대해 무감각해졌다. 그간의 삶의 방식(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중독된 탓이다. 일부 위기를 인식한 이들조차 근본적인 대응보다는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기 일쑤다. 그리하여 상황은 더 심각해지고 마침내 파국을 맞는다.

 

 

혜성과 지구와의 충돌을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은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에 대한 경고로 시작한다. 천문학 대학원생 케이트와 그의 담당교수 랜들 민디 박사는 태양계를 떠도는 혜성이 지구와 직접 충돌하는 궤도에 들어섰다는 충격적 사실을 발견한다. 지구를 파괴할 수 있을 에베레스트산만한 혜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불편한 이야기를 아무도 진지하게 생각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남은 시간은 6개월 14일이다. 이 시한 안에 혜성과 지구의 충돌을 막을 근본적 대책을 세워야 인류가 생존할 수 있다. 과연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며, 그 과정은 인권 차원에서 어떤 교훈을 줄까?

 

첫째, 지구가 혜성과 충돌하게 되면 미국은 물론, 지구 자체가 박살 날지 모른다. 온 인류가 생존 위기에 빠지는 것. 그런데 이 이야기를 두 과학자가 맨 먼저 보수 공화당 출신 대통령에게 전하고 합당한 대응책을 논의하고자 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이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 백악관에서는 아무도 진정성을 보이지 않았다. 영화 속 공화당 대통령 올리언은 민주당과 경쟁하는 차기선거에만 정신이 팔려 혜성 충돌 이슈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또 그 아들이자 비서실장인 제이슨 역시 농담하듯 건성으로 대했다. 국가 안보를 담당하는 국방부 장관 또한 ‘똥별’의 인상만 남겼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 욕망에 충실한 물신주의자들일 뿐, 진심으로 세상과 인류의 안위를 걱정하는 휴머니스트는 아니었다. 그들은 이 중차대한 이슈를 당분간 ‘국가기밀’로 묻어 두기로 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인권의 가장 기본인 인간의 생존권과 생활권에 무관심한 이들을 우리의 지도자로 뽑는 선거제도, 이것은 과연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는가? 그리고 오늘날 기후위기라는 범지구적 경고에 무관심한 정치 지도자들, 권력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은 과연 국가와 세상을 이끌 기본 자질이 있는가?

 

둘째, 정치가들에 실망한 두 과학자는 언론을 통해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했다. 언론이야말로 보통 사람들과 가장 쉽게 만나는 지름길이라 판단했다. 영화에서는 브리와 잭이 진행하는 인기 프로그램 <더 데일리 립>에 출연한다. 그러나 이 인기 프로그램은 지구가 혜성과 충돌할 것이라는 예고를 충격적 위험으로 인지하기보다 흥미로운 가십거리 내지 과학을 빙자한 장난 정도로 취급하려 했다. 오히려 혜성 충돌 소식보다 인기 가수의 결별 소식이 더 중요하게 다뤄졌다. 전형적인 ‘기레기’였다. 인기 중독, 재물 중독의 결과다. 심지어 방송 진행자 브리는 과학적 경고에 발 벗고 나선 랜들 민디 교수와 바람까지 피운다. 현실이 이 정도이니 24시간 내내 뉴스와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져도 보통사람들의 의식이 고양되기가 쉽진 않다. 사람들은 대개 나르시시즘을 자극하는 소셜 미디어(SNS)에나 빠져있을 뿐, 정작 인류 자신의 생존이 걸린 문제엔 무관심하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에는 한국도 잠시 나오는데, 서울역 대합실, 어느 사찰 모습이 나온다. 대합실 사람들은 온종일 돌아가는 TV에 눈길을 줄 뿐, 혜성 충돌 같은 이야기에는 무심하다. 심지어 사찰에서는 ‘수능 100일 기도’ 식의 개인 구원에만 열성일 뿐, 지구의 운명에 관한 토론은 없다. 여기서도 대중적 무관심, 언론의 무관심, 정치의 무관심이 일맥상통하고 있다.

 

셋째, 늦게나마 대통령이 혜성 충돌 사인에 관심을 보이는데, 그 이유는 결코 진지한 접근이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정치적 이유로는 일례로 자신의 스캔들을 은폐하기 위해 핵무기를 활용, 혜성 궤도를 바꾼다는 구상이었다. 경제적 이유로는 혜성에 존재하는 32조 달러 규모의 희귀 광물을 통해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다는 어느 기업가의 제안을 듣고 나서다. 대기업 배시 사의 CEO 피터는 로켓 발사 당일 혜성을 폭파하지 말고 그 대신 성능 좋은 드론을 날려 혜성을 30개로 조각내자고 제안한다. 지구에 떨어진 희귀 광물을 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이야기다. 여기서 드러나듯, 경제인들은 세상 만물을 돈벌이 기회로 이용하려 할 뿐, 인류의 운명에 대해선 결코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자본은 그 어떤 조건에서도 오로지 무한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재물 중독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인권, 즉 사람들의 생존권이나 생활권은 체계적으로 무시된다.

 

현실이 이러하니 지구나 인류의 운명을 진실하게 걱정하는 학자들은 현실 직시(저스트 룩 업)가 아니라 현실 외면(돈 룩 업)만 일삼는 세태에 대해 절망하고 좌절한다. 실제로, 나사(NASA) 기후과학자인 피터 칼머스 역시 진짜 울면서 얘기한다. “기후과학자인 나는 매일매일 삶이 돈 룩 업이다. 이대로는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기후위기는 거짓말도 과장도 아니다”라고 호소한다. 그는 체이스은행 입구에서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 평화시위를 하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에서는 혜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우리 현실은 자본이 만들어낸 현실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후위기다. 이런 위기에 대해 사람들은 돈과 권력에 중독되어 불감증을 드러낸다. 경남 하동에서 40년 가까이 양봉하는 농민은 이렇게 말한다. “벌들에게는 겨울이 너무 따뜻해도 안 좋고 차라리 추운 게 나아요. 추우면 동그라미를 그려 집단으로 뭉쳐요. 어린 벌이 가장 안쪽 가운데에 자리 잡고 나이 많은 벌이 어린 벌을 둘러싸고요. 그래야 어린 벌이 살아남아 개체수를 이어나가죠. 벌들의 세계는 그렇게 장래를 생각하는데 우리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스스로 장래를 생각하지 못하는 까닭은 영화에도 나오듯, 권력 욕망, 인기 중독, 재물 중독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개체수가 급감하는 벌의 현실조차 인간(자본)이 만든 기후위기나 화학농약, 전자파의 희생양이다. 그 개체수가 급감한다는 뉴스가 종종 나온다. 앞의 양봉 농민도 “올해 290통(1통은 약 2만 마리) 정도 벌을 키우는데, 봄에 보니까 50% 정도 죽고 약 140~150통이 남았어요. 그동안 잘 관리해서 벌을 좀 늘리긴 했는데, 올겨울을 또 지나 봐야 압니다”라고 밝혔다.

 

 

 

삶을 지키기 위해 현실을 직시하라!

 

현실 직시나 삶의 성찰, 민주적 토론과 숙의, 근본 대안과 실천을 거부하는, 재물 및 권력 중독자들에게 과연 미래가 있을까? 그들 자신에게만 미래가 없다면 그나마 괜찮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무지와 무관심, 무감각, 무책임으로 인해 대다수 민초들의 생존권이 송두리째 박탈당한다면? 그래서 현실과 진실을 정직하게 보는 눈, 즉 ‘돈 룩 업(Don't Look Up)’이 아니라 ‘저스트 룩 업(Just Look Up)’이 필요하다. 그것도 일국 차원이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말이다. 왜냐하면 기후변화로 인한 인류 보편적 문제는 초국가적 대응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전 세계 나라들은 경제적 이해득실만 따지지 말고 인류의 생존을 지킨다는 발본의 자세로 세계적 공감대 형성과 초국가적 연대에 나서야 한다. 무관심과 무책임이 인류를 공멸로 이끌기 때문이다. 마치 추운 겨울날 좀 큰 벌들이 어린 벌들을 첩첩이 에워싸 삶을 이어가듯, 인류도 ‘어머니 대지’와 자녀들을 잘 보살피고 지켜내야 한다.

 

이렇게 우리네 실제 삶은 늘 ‘현실 직시냐, 현실 외면이냐?’라는 물음 앞에 선다. 외면하면 당장은 몸이 편할지 모르나 마음은 불편하고, 결국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차라리 몸이 좀 불편하더라도 늘 현실을 대면, 직시, 행동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능력, 귀찮음을 감수하는 능력, 이것이 ‘나부터’ 변화의 출발점이다. 나아가 그렇게 살면 세상이 더 살맛 나는 것으로 변한다. 그래야 나중에 혹시 염라대왕을 만나도 억울함과 후회의 눈물이 아니라 맘껏 수다를 떨며 웃을 수 있는 얘기가 생길 것이다. 인생살이에 닥치는 온갖 문제, 직면이냐, 외면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저스트 룩 업, 현실을 직시하라!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는 기업과 공공부문 노사관계, 이주노동자의 삶과 운동, 일중독과 건강 문제, 중독 시스템 문제 등을 연구했고, 주경야독을 하며 학생과 시민들을 위한 인문학 특강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 『함씨네와 함께 하는 ‘나부터’ 밥상 혁명』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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