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들의 인권침해,
피해자 외면에 대한 책임,
과연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최근 뉴스거리로 등장하는 기업 오너들의 횡포는 타인을 본인의 배려에 의해 인권이 부여되는 존재로 착각하는 데서 기인한다. 월급을 주는 대가로 타인의 인권까지 양도 받았다고 믿는 것일까?
누구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삶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돈을 얻는 것이다. 특히 기업과 투자자에게 요구되는 지침이다. 그런데 사람을 해치고 심지어 죽이는 일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돈을 얻는 기업과 투자자를 어렵지 않게 접하는 세상이다. 심지어 이들은 제대로 된 처벌도 받지 않는다. 관할 정부는 처벌할 능력이 없거나 인권침해를 규제할 수 있는 법과 능력이 있는 경우에도 이를 집행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사법정의가 없으니 개인의 인권은 유린되고 피해를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구제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기업과 인권에 관한 유엔지침(UNGPs)에 의하면, 국가는 ‘인권보호’라는 국제법상 지닌 의무에 근거해 법률과 정책, 규제, 사법적 판결을 통해 기업의 인권침해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기업은 인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피하고, 인권침해에 연루된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적절한 조치란 이사회 등 최고 수준에서 인권정책을 마련해 공개하고 정책이 실행될 수 있도록 실천·점검 의무를 시행하며, 피해자 구제 절차를 갖추는 것이다. 기업의 인권침해 유형 세 가지와 그에 대한 기업의 대응방법도 안내되어 있다. 하나는 상품과 서비스, 기업 활동이 직접적으로 인권침해를 유발하는 경우다. 이 경우 기업은 즉각 관련 행위를 중단하고 피해자 구제에 나서야 한다. 8월 말이면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알려진 지 7년째를 맞이하게 된다. 5,657명의 피해자가 신고를 했고, 사망자는 1,212명에 달하고 있는 이 참사와 연관된 어떤 기업도 자발적으로 상품 판매를 중단하고 피해자 구제에 나섰던 곳은 없다.
‘유해물질 없는 미래를 위한 국제 네트워크(IPEN)’의 과학전문 상임고문 조 디간지는 작업장의 유독성 화학물질로 인권침해에 연루된 기업들의 대응 방식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우선 해당물질의 유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독성이 밝혀지면 이젠 질병과의 관련성을 부정한다. 관련성이 밝혀지면 노출된 양은 질병을 유발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모든 것이 밝혀진 마지막엔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되면 경제적 타격이 있다고 말한다.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협박이다. 조사과정에서 영업비밀 등 온갖 핑계와 거짓으로 증거를 은폐하고 조사를 방해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기업의 편에 선다.
두 번째 유형은 제3자가 인권을 침해하는 데 기여하는 경우다. 이 경우 마찬가지로 관련 활동을 즉시 중단하고 피해자 구제에 참여해야 한다. 현대중공업 사업장에서 근무하던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경우가 해당된다. 원청사업자의 공기단축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일명 ‘물량팀’을 구성, 무리하게 작업을 진행하다가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경우 원청사업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의미다.
세 번째 유형은 기업 활동, 제품 및 서비스가 인권침해와 직접 연관이 되는 경우다. 이 경우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삼성전자, LG전자 휴대폰 부품을 납품하는 3차 협력업체에서 메탄올 중독으로 인한 급성 시신경 손상을 입은 근로자가 발생한 경우에 해당된다. 원청 사업자는 작업장 안전 교육 및 보호 장구 지원 등을 통해 인권침해 예방에 기여할 수 있다.

일주일에 평균 15시간 이상 일할 경우 시간 외 수당은 물론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는 규정을 피하기 위해 유수의 국내 호텔들이 일명 ‘알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하지 못하게 관리하고 있다. 패밀리레스토랑이나 패스트푸드점은 아르바이트 근무수당을 30분 단위로 정산하는 것을 이용해 25분 근무 후 귀가조치시킨다. 프랜차이즈 오너는 재료공급 과정에 친인척 기업을 끼워 넣어 가맹 점주들에게 비싼 가격으로 재료를 공급한다. 그리고 가맹 점주들의 어려움을 생각해 가격을 인상한다고 말하고 소비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한다. 기업 회장은 위계에 의한 권력으로 20대 여직원을 성추행하고, 운전기사, 경비원을 상습 폭행한다. 인격권 침해는 예사다. 온갖 횡포와 갑질 논란 모두가 기업에 의한 첫 번째 인권침해 경우에 해당된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할 것은 기업들이 활동하는 모든 나라에서 같은 사안에 대해 동일하게 대응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가습기살균제는 환경기준이 낮고 독성물질 관리가 허술한 우리나라에서만 판매되었고, 폭스바겐은 배기가스 저감장치 조작에 따른 소비자 손해배상 과정에서 미국과 캐나다, 유럽, 한국의 소비자를 차등적으로 대우하고 있다. 국가에 따라 달리 대응하는 것이다. 기업은 진출한 국가마다 사업관행도 달리하는 데 시장의 크기, 사업관계 등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 해당 국가 정부의 인권보호 의지와 관련 법, 제도 수준은 핵심 고려사항이다. 인권보호 수준이 높은 국가에서는 기업에 의한 불법행위나 인권침해 발생 빈도도 낮고 발생한 경우라도 피해자는 신속하고 충분하게 구제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상의 기준과 사례에서 우리나라는 해외기업은 물론 국내기업들로부터 인권후진국으로 대우받고 있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주재국 정부의 인권보호 수준에 따라 기업의 행동이 달라진다는 면에서 현재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기업들의 횡포와 인권침해, 피해자 외면에 대한 책임은 한국 정부에게도 있는 것이다. 많은 국가들이 관할권 내 다국적 기업의 인권침해 행위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법이 있으면서도 집행할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기업들이 자신의 활동이 미치는 부정적 인권 영향을 관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물론 개인의 문제도 있다. 요즘 자주 뉴스거리로 등장하는 기업 오너들의 횡포는 타인을 인권의 자격을 부여받은 당당한 주체로 인식하지 않고, 시혜관점에서 본인의 배려에 의해 인권이 부여되는 존재로 착각하는 데서 기인한다. 그래서 월급을 주는 대가로 타인의 인권까지 양도 받았다고 믿는 것이다. 노예를 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반대로, 노동자이면서 소비자인 다른 개인들은 국가를 대신해 기업의 횡포와 인권침해, 사기극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나서는 오지랖을 발휘한다. “당신이 가습기살균제나 전자회사 작업장 유해물질,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조작된 자동차, 기업 오너의 운전기사, 프랜차이즈 가맹점과 무관하다고 그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당신이 기업에게 당할 때 아무도 당신을 위해 말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연대요청에 화답한 것이다.
2006년 올해의 인물로 ‘당신(YOU)’을 선정한 『타임』지는 표지를 반들반들하게 처리해 거울처럼 독자의 얼굴이 비치도록 제작하였다. 기사의 첫머리는 “세계 역사는 위대한 개인들의 전기일 뿐이다”라는 토머스 칼라일의 명언이었다.
재스민 혁명, 아랍권 민주화 운동, 월가 점령 시위가 있었던 즈음인 2011년에는 올해의 인물로 ‘시위자(PROTESTER)’가 선정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정작 필요로 하는 것은 시위자가 아니라 그들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정의가 작동되는 국가 상황이다. 
김용구 님은
기업과인권연구소 소장으로 국가인권위원회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서 장애인정책 모니터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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