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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원(犬猿)의 연대, 개와 원숭이는 어떻게 악수하게 되었는가
등록일 : 2017-08-18 조회 :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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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프라이드』

 

견원(犬猿)의 연대, 개와 원숭이는 어떻게 악수하게 되었는가

 

 

 

네모 마가렛 대처가 1979년에 영국 수상에 오른 뒤 그 악명 높은 대처리즘이 1980년대의 영국을 휩쓸었다. 시장경제 원리 혹은 신자유주의 정책이 강조됐고 기존에 국유화되어 있던 많은 것들이 민영화되었다. 사회복지는 후퇴했고 계층 간 갈등은 심해졌고 실업률과 빈곤율은 치솟았다. 기본적인 인권이 전방위적인 면에서 심각하게 추락한 암울한 시기였다. 훗날 2013년 대처가 사망했을 때 영국의 감독 켄 로치(『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감독)는 이 시기의 불운에 관하여 새삼 분노하며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울화의 말을 남겨 화제를 낳았다. 켄 로치는 대처를 가리켜 “영국 현대 총리들 중 가장 분열적이고 파괴적인 사람”이라며 “우리 사회가 엉망인 이유는 그가 남긴 유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고 나서는 이렇게 꼬집었다. “대처의 장례식은 왜 국장으로 치르는가? 그것도 민영화하자. 경쟁 입찰을 붙인 다음 가장 싼 업체를 골라서 그의 장례식을 치르자. 대처도 그러기를 바랐을 것이다.”그러자 여기에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공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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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런던 프라이드』는 1984년 6월 30일 토요일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그러니까 대처리즘의 한복판이 이 영화의 배경이다.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생존권을 위한 광산 노동자들의 파업과 그에 뒤따른 유혈 진압 사태들에 관한 소식이 전해지고 뒤이어 일련의 사태들을 무시하는 듯한 대처의 인터뷰도 등장한다. 런던에 살고 있는 젊은 청년 마크는 이 장면을 보다가 불현듯 무언가를 깨닫는다. 그리고 친구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호소한다. “대처가 광부들을 싫어하니까 우리가 광부들에게 연대감을 보이자”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그다지 문제될 게 없는 말인 것 같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누구인지가 바로 문제다. 그리고 이 점이 영화 『런던 프라이드』의 획기적인 재미다. 마크는 게이이고 그가 말하는 우리란 게이 레즈비언 공동체다. 광부들의 탄광노조를 위해 게이 레즈비언 공동체가 연대하자는 것이 마크의 생각인 것이다. 그러자 그의 게이 레즈비언 친구들은 대개 아연 실색한다. 혹은 그중에 하나는 마크의 말에 끝내 화를 참지 못하고 광부들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다. “그놈들은 등교할 때마다 나를 팼던 놈들이야. 물론 하교할 때도 마찬가지였고 말이야.”

 

광부와 게이 레즈비언, 그들은 상극이었다. 영국 광부들의 마을이 얼마나 거칠고 투박하며 보수적인 분위기인지는 영국의 여러 영화에서 자주 표현된다. 예컨대 영화 『빌리 엘리어트』 에서 탄광 마을의 게이 소년 빌리는 무용가가 되는 것이 꿈이지만 보수적인 아버지는 아들이 게이인데다 춤까지 추고 싶어 한다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게이 레즈비언이란 정체성은 그와 같이 광부들의 사회에서 오랫동안 수긍되지 않는 절대적 타자였고 1984년 그해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런던 프라이드』에서도 다음과 같은 상황이 등장한다. 게이 레즈비언 공동체가 돈을 모금하여 전해주겠다는데도 영국의 탄광 노조 대부분은 그걸 거절한다. 아무리 어려워도 게이 레즈비언들의 돈은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웨일즈의 노조 한 곳이 흔쾌히 수긍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기막히다. 마크와 그의 친구들은 자신들을 ‘광부를 지지하는 레즈비언 게이들(Lesbians and Gays Support the Miners)이라는 뜻에서 약자를 사용하여 ‘LGSM’으로 소개한다. 그런데 때마침 전화를 받은 광산의 노부인이 무심코 그 L이 런던을 가리키는 L정도 되겠거니 잘못 알아들으면서 성사된 일이었다.

 

그렇게 하여 광산노조와 게이 레즈비언 공동체는 역사적인 연대를 결성하게 되는데 광산의 파업 지도자 ‘다이’와 마크의 일행이 만나 나누는 첫 대화의 내용이 다음과 같은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사실… 저… 게이 처음 봐요”라고 다이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마크는 “알고 있는 한에서는 아마 그렇겠지요”라며 당신이 모를 뿐 주변에 게이들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는 투로 응대한다. 그러고는 이번엔 마크가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저, 광부 처음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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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프라이드』의 흥미로운 장면들은 광부와 게이 레즈비언의 이 기상천외한 연대가 각자의 방식으로 혹은 서로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성사되는 순간들에 집약되어 있다. 먼저 이런 장면을 보자. 광산 노동자를 대표하는 다이는 게이 레즈비언 바의 무대에 올라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 한다. 객석의 게이 레즈비언들 중 일부는 처음에 그를 심드렁하게 대하며 야유도 보낸다. 다이의 짧은 연설이 시작된다. “저는 말이죠, 파업 기간 중에 여러 경험을 많이 했어요.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하거나 피켓을 들고 서 있기도 하고요. 오늘은 게이 바까지 왔네요” 그러자 삐딱한 누군가 소리친다. “있기 싫으면 집에나 가쇼” 하지만 반전은 그 다음부터다. 다이는 진솔하고 유머러스하게 연설을 이어간다. “솔직히 여기 마음에 들어요. 오늘 느낀 건 웨일즈 남부에 있는 술집과 게이바의 차이는 단 하나, 여자인데요, 여기 분들이 더 아름답네요”라고 여장한 게이들을 추켜세우자 객석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다이의 연설은 더 이어진다. “제가 정말 드리고 싶은 말은 감사하다는 겁니다. 이 양동이에 돈을 넣어 주신 분이거나 LGSM을 지지해 주셨다면 감사드립니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준 건 돈 그 이상입니다. 바로 우정이죠. 전쟁을 치를 때 당신보다 힘 좋고 강한 상대를 만난 상황에서 있는 줄도 몰랐던 지원군을 만난다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일 겁니다” 하고 다이는 진심을 다해 말한다. 많은 파업현장에서 동료들에게 힘을 불어 넣었던 그의 말의 힘, 즉 ‘연설’의 힘은 새롭게 맞은 친구들 앞에서도 효력을 발휘한다. 그날 밤 모금함의 돈은 더 쌓이고 동료는 더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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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재미있어지는 대목은 그 다음이다. LGSM의 모금액으로 도움을 얻었건만 여전히 광부들은 무관심하게 혹은 누군가는 심지어 적대적으로 마크의 일행을 대한다. 심지어 마크의 연설은 수줍고 힘도 없고 감동도 부족하다. 결국 그는 연설로써 새로운 동료를 얻는데 실패한다. 하지만 반전은 며칠 뒤에 일어난다. 도대체 춤이라고는 출 줄 모르는 이 마을의 남자들에 관하여 마을의 어느 여인 한 사람이 “여기 남자들은 춤을 안 춰요”라고 불평하자, LGSM의 가장 나이 많은 게이 한 명이 “그렇다면 뭘 놓치고 있는지 보여줍시다” 하면서 무대에서부터 시작하여 식탁과 식탁을 뛰어다니며 디스코를 선보인다. 그러자 노소를 막론한 마을의 여인들이 모두 환호하기 시작하고 그녀들의 마음이 움직이자 마을 남자들의 마음도 서서히 움직인다. 탄광 노조를 이끄는 지도자 다이가 감동을 전하는 방식이 연설이었다면, 게이 레즈비언 공동체의 일원들이 감동을 전하는 방식은 ‘춤’이다. 런던에서 온 이 게이 레즈비언들은 춤으로 자신들을 멋지게 표현하며 그날 밤 새로운 동료들을 감격시킨다.

 

영화는 여기에서 유쾌하게 한 발짝 더 나아가 따뜻한 한 장면을 만든다. 광부와 게이 레즈비언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마침내 상대에게서 배운 방식으로 다시 그 상대에게 호의를 베푸는 장면이라고 해야 할까.

 

인권이란 나와 다른 타자의 존재와 삶의 방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때로는 배우는 것까지 포함되는 문제일테니 이건 인권이 복구되는 장면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런 장면이다. 예상보다 모금 수익도 적고 광부들에 대한 탄압도 더 거세지는 바로 그때다. 마크는 벌떡 일어나 식탁 위로 올라가 주변의 광부들에게 연설을 시작한다. 그렇게나 연설이라면 신통치 않았던 그가 말이다. “런던에 돌아가면 약속을 꼭 지키겠습니다. 우리는 런던에서 엄청난 일을 벌일 겁니다. 끝내주는 일이고 획기적인 일이라 분명히 약속드립니다. 그러면 석탄 공사가 알아서 기어오게 될 겁니다. 여장차림으로 말이지요. 여러분께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 말이에요”라고 말하자 광부들은 환호하며 웃음을 터뜨린다.

 

마크는 덧붙인다. “승리를 기원합시다. 광부들에게 승리를!” 박수가 쏟아진다. 원래 유능한 연설이란 광부들의 지도자인 다이의 장기였지만, 게이 레즈비언의 지도자인 마크가 다이에게서 배운 것인지 이제는 마크의 장기도 된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저 어딘가에서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광산의 여인 한 사람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연설의 소통에서는 실패했지만 춤의 소통으로 성공하면서 게이 레즈비언 공동체가 광산의 마을 사람들과 친해졌던 그 장면을 생각해보자. 마크의 감동적인 연설에 광부들은 또 한 토막의 연설이 아니라 노래로 응답한다. 노래로 마음을 전하는 것, 그건 아마도 춤으로 마음을 전한 게이들에게서 광부들이 배운 것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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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종반부에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의 짧은 자막이 흐른다. 광부들의 파업이 종료되고 1년이 지났을 무렵 노동당 회의에서는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그러니까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당 강령에 포함시키자는 안건이 상정된다. 물론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늘 좌절되었던 것이 비로소 이때 통과되었다. 동성애자들의 인권의 기초가 확립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안건이 통과하는 데에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핵심 노조 한 곳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니라 전국 광부노동조합이었다. 이러한 자막과 함께, 다이가 마크에게 말하곤 하던, 그들 광산 마을에 누누이 전해져 온다던 그 깃발의 그림이 마침내 실체를 드러낸다. 거기엔 두 손이 악수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인권

 

 

 

정한석 님은

저서로 『성질과 상태』를 펴냈으며, 영화평론가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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