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의 청년들,
무엇이 그들을 아프게 하는 것일까?
나만 아프다?
청년들을 상대하다보면 ‘다른 청년들은 다들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만 왜 이럴까?’라는 얘기를 자주 듣게 된다. 내가 ‘너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들 너처럼 힘들어 한다’고 말해주면, 그들은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며 깜짝 놀라곤 한다. 모두들 아파서 끙끙대고 있는데, 어떻게 해서 청년들은 다른 사람들은 멀쩡하고 자기 혼자만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요즈음의 청년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 문제도 없는 척, 괜찮은 척을 한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 혼자 있게 되면 베개에 머리를 박고 눈물을 흘린다. 이렇게 우울한 데도 남들 앞에서는 웃는 얼굴을 하는 변종 우울증을 ‘가면 우울증’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한국 청년들이 이 가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결론적으로 모두들 아파하면서도 가면 우울증으로 인해 남들 앞에서는 웃는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에 청년들은 자기 빼고는 다들 괜찮다고 착각하면서 괴로워하는 것이다.
청년들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아프다는 내색을 하지 못하고 웃는 표정을 짓는 것은 왜일까?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드러내면 남들이 자기를 무시하거나 거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한국은 치열한 경쟁사회이다. 이런 한국 사회에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공개하는 것은 일종의 자살행위라고 할 수 있다. 다들 아프면서도 아픈 티조차 못 내는 세상에서 살다 보니 청년들은 남들은 다 괜찮은데 자기 혼자만 아프다는 착각 속에 빠져 신음하고 있다.

자존감 손상
청년들 속에서 가면 우울증이 유행하는 것은 한국이 잔인한 경쟁사회라는 사실만이 아니라 자존감 손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존감이 손상되어 자기를 존중할 수 없는 사람의 정신건강은 필연적으로 악화된다. 자기를 존중할 수 없다는 것은 곧 자기를 형편없는 존재로 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을 형편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감이 부족해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처신하지 못하고, 타인들의 인정이나 존중에 집착하며, 남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 식한다. 나아가 자기 자신을 혐오하여 공격하게 될 위험이 커진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스 스로가 자기를 존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타인들의 인정이나 존중에 목을 맨다. 반면에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타인들의 인정이나 존중이 그다지 필요치 않다. 통속적으로 말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미움 받을 용기’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다수의 청년들이 자기한테 돈, 지위, 학력 등이 없으면 타인들이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을 것, 무시하고 혐오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이들의 자존감 손상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청년들이 낮은 자존감을 갖게 된 것은 부모로부터 무조건적 사랑을 받지 못했던 어릴 적 경험이 크게 작용한 경우가 많았다. 부모의 무조건적 사랑이란 자식을 하나의 존엄한 인간으로 대하면서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즉 자식이 공부를 잘하든 못 하든, 돈을 많이 벌든 벌지 못 하든 간에 변함없이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무조건적 사랑을 받은 자식은 ‘나는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무의식적 신념을 갖게 된다.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은 이렇게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사랑받고 존중받는 경험에서 출발한다.
만일 부모가 조건부 사랑을 하면 자식은 사랑과 존중을 받지 못했다고 느껴 애정결핍이나 무가치감 등에 시달리게 된다. 또한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사랑과 존중을 받지 못할 거라는 공포와 불안에 쫓기게 된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식이 공부를 잘하면 사랑해주지만 공부를 못 할때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면, 자식은 ‘나는 나라는 존재만으로는 사랑받을 수 없는 무가치한 아이’라는 무의식적 신념을 갖게 된다. 또한 그 결과 공부를 못 하면 부모의 사랑을 잃게 될 거라는 공포와 불안에 쫓기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조건부 사랑을 받으며 자라난 아이들은 남들의 기대에 부응해야만 비로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즉 돈이나 학벌 등을 갖춰야만 타인에게서 사랑과 존중을 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집착하게 된다. 이렇게 자존감이 손상된 사람일수록 허세나 과시에 집착하며 타인들에게 자신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데, 청년들이 아프면서도 괜찮은 척 하는 것은 그들의 자존감이 이미 손상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청년들을 아프게 하는 것들
일부 심리학자들은 청년의 문제는 곧 부모의 문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청년들이 아픈 주요한 원인이 그들을 건강하게 사랑하지 못하고 공부를 강요했던 부모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연 청년들을 아프게 만든 주요한 책임이 부모에게 있는 것일까? 한국과는 달리 북유럽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원하는 일을 하렴.” 그들은 자식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으며 진로선택에 간섭하지도 않는다. 반면에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공부 열심히 해서 반드시 좋은 직업을 가져야만 한다.” 그들은 집요할 정도로 자식에게 공부를 강요하며 진로선택에 간섭한다.
왜 북유럽의 부모들과 한국의 부모들은 이렇게 다를까? 무엇보다 북유럽의 경우에는 직업 간 소득격차가 크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직업, 즉 돈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며 무시하는 병적인 사회풍조가 거의 없다. 직업 간 소득격차가 적고 직업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면 어떤 직업을 선택하더라도 먹고사는 데 별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타인들에게서 무시당할 일이 없다. 한 마디로 어떤 직업을 선택하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한국도 북유럽처럼 직업 간 소득격차가 별로 없고 직업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병적인 사회풍조가 없다면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뭐라고 말할까? 분명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렴.”이라고 말할 것이다. 공부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한국 청년들이 고통에서 해방되려면 사회가 건강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청년들이 더 이상 아파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청년들은 무엇보다 자기의 상처부터 치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배가 아프면 제아무리 좋은 경치라도 눈에 들어오지 않듯이, 마음에 상처가 있으면 질 높은 삶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일단 상처부터 치유해야 비로소 행복한 삶을 그려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청년들은 나만 아픈 것이 아니라 모두가 아프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더 이상 상처를 숨기지 말아야 한다. 청년들은 다음으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고립되어 있으면 고독감은 물론이고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굳게 품은 결심도 혼자이면 흐지부지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청년들은 고립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청년들은 마지막으로 힘을 합쳐 고통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특히 청년들을 아프게 만드는 사회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서로 힘을 합쳐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
지금까지 청년들은 대체로 ‘공부나 열심히 해라!’, ‘부당한 일을 당해도 참아라!’와 같은 어른들의 잘못된 훈계를 따르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 결과는 행복과 기쁨이 아니라 아픔과 고통이었다. 이제는 어른들과 세상의 잘못된 훈계를 거부해야 한다. 진정으로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서로의 손을 맞잡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김태형 님은
심리학자이자 심리연구소 ‘함께’의 소장으로, 심리학 연구성과를 대중에게 소개하고 심리학을 누구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학문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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