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사회, 국경 없는 추석이 되기를 바라며 읽기 :
모두보기닫기
다문화사회, 국경 없는 추석이 되기를 바라며
등록일 : 2017-09-29 조회 : 79

 9-1-1

 

다문화사회,

국경 없는 추석이 되기를 바라며

    

 

 

우리의 추석은 이제 태어나서 자란 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주자들이 만나는 특별하고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올해는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추석이 되기를 바라본다.

 

 

 

rec 이제 곧 추석 명절이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기억 하나가 있다. 10년 전 이맘때였을까? 베트남에서 온 빅녹 씨가 명절에 같이 밥 한 끼 먹자고 집으로 초대를 했다. 빅녹 씨는 그때 갓 서른이 넘은 젊은 여성이었는데, 산재로 손목 아래로 손 하나를 잃고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허름한 골목 안, 여기저기 빈 페인트 통이 뒹굴고 있는 넓은 시멘트 마당에 슬레이트 지붕이 얹힌 작은 집에는 빅녹 씨 고향 친구들이 모여서 복작복작했다. 친구들 중에는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도 있었지만 다른 먼 도시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작은 방안에 겨우 엉덩이를 들이밀고 끼어 앉았는데, 어디서 ‘꼬꼬’거리는 닭소리가 들렸다.

 

“저 닭은 뭐예요?”

“먹으려고 사왔지.”

 

다친 손에 아직 붕대를 감고 12번째 수술을 앞두고 있던 빅녹 씨가 버스를 갈아타가며 먼 시장에 가서 생닭을 사 들고 온 것이었다. 그 닭은 우리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이웃에 사는 빅녹 씨의 ‘고향 오빠’ 손을 거쳐 쌀국수가 되었다.

 

부엌에서는 네모난 나무틀에 바나나 잎을 깔고 찹쌀과 녹두, 돼지고기를 넣고 여러 시간 푹 쪄내는 ‘반뗏’이 익어가고 있었고, 방 안에서는 둘레둘레 모여 앉은 이들이 여러 가지 채소와 고기, 해물을 라이스페이퍼에 돌돌 말아 싸서 기름에 튀겨내는 베트남 만두 ‘넴’을 만들고 있었다. 그때는 그 요리의 이름을 몰랐었다. 그렇지만 푸짐한 요리와 가난하지만 정겨운 사람들의 수다로 떠들썩하던 그날은 참으로 명절다웠다.

 

예전의 추석은 봄에서 여름 동안 길러낸 곡물과 과일의 수확을 감사하며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함께 농사를 지은 사람들끼리 나누어 먹으며 그해의 농사를 마무리하는 의미가 컸다. 그러나 지금은 멀리 흩어져 살아가는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모이는 날이라는 의미가 더 큰 것 같다. 그래서 귀성길 차량이 길게 줄을 지어 선 고속도로 풍경을 담은 TV 뉴스가 설과 추석에 빼놓을 수 없는 배경이 되었다.

     

그래서 명절날이면 우리 모두가 이주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어느 집이나 일자리를 찾아서, 결혼을 해서, 공부하러, 태어나서 자라던 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가족이 있다. 최근 십 수 년 사이에 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역시 일자리를 찾아서, 결혼을 해서, 공부하러, 때로는 박해를 피해, 먼저 간 친지와 친구가 간 길을 따라 지역이나 도시의 경계보다 더 멀리 국경을 넘어 한국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는 정도일 것이다.

 

국경을 넘은 이주자는 거리, 때로는 제도의 장벽 때문에 명절날 고향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이전에 먹었던 명절 음식을 통해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고향의 명절을 불러오는 것 같다. 미국에서 10년 이상을 살다 온 한국인 친구는 그곳에서 명절을 맞으면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가며 녹두빈대떡을 부치고, 토란국을 끓여 먹었다고 했다. 가족과 함께하는 명절을 먼 곳으로 불러오는 요리니 그때 그 방식으로 만들어져야 그 느낌, 그 분위기가 함께 따라올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빅녹 씨는 생닭을 사 왔을 것이다.

 

빅녹 씨는 이듬해 치료가 끝나고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빅녹 씨를 대신해 더 많은 이주민들이 한국으로 왔다. 2016년 국내 체류 외국인은 200만 명을 넘어 주민등록인구의 4%가 되었고, 3개월 이상 장기체류 외국인도 150만 명을 넘었다. 그리고 10년 전에는 이름도 몰랐던 베트남 요리를 파는 음식점이 이제는 동네마다 생겼다. 그런 요리의 재료를 파는 아시안 마트도 곳곳에 생겼다. 중국집에 탕수육을 주문하면 군만두 대신 ‘넴’이나 남아시아의 대표적인 튀김 만두인 ‘사모사’가 서비스로 따라 오기도 한다. 캄보디아나 네팔 스타일의 문양이나 옷이 유행을 타기도 한다. 한국 사회는 말 그대로 여러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다문화사회’가 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다문화’는 다양한 문화의 공존과 조화라는 원래의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다문화 가족 구성원의 “삶의 질 향상과 사회통합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다문화가족지원법’은 ‘다문화가족’을 결혼이민자와 한국국적자로 이루어진 가족으로 제한했다. 그래서 이 법에 근거해 만들어진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전국의 200개를 훌쩍 넘었는데 빅녹 씨와 같은 이주노동자, 재외동포, 유학생 등으로 이루어진 가족 구성원은 이를 이용하기 어렵다.

 

그러나 통계청의 2016년 ‘외국인 고용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기체류 이주민을 가구 유형으로 구분했을 때 가족가구가 57%로 가장 많고, 그 증가율도 가장 높다. 실제로 조부모는 재외동포로, 부모는 이주노동자로, 자녀는 유학생으로 입국해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이나, 부부가 각각 취업비자를 받고 들어와서 국내에 살고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고, 한국에 입국한 후에 가족을 형성하는 경우는 더욱 흔하다. 그래서 국내에서 태어나는 이주아동의 수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다문화가족지원법’에 따르면 이들이 이룬 가족은 ‘외국인 가족’일 뿐 ‘다문화가족’은 아닌 셈이다. 그렇다고 법에 따른 ‘다문화가족’이 특별한 대우를 달가워하지만은 않는 것 같다.

 

정책은 동등한 권리의 보장보다 일방적 시혜와 지원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결혼이주여성은 빨리 한국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한 동화압력으로 몸살을 겪어야 했다. 그 결과 이제 ‘다문화’는 다문화가족에 이어 다문화 아이들, 다문화 친구들, 다문화 병사까지 특정 그룹의 사람들을 지칭하면서 편견과 차별을 내포한 말이 돼버렸다. 오죽하면 이제 ‘다문화’라는 말을 쓰지 말자는 학자들까지 있다.

 

결혼이주민을 비롯해 150만 장기체류 이주민 중에 약 100만 명은 어딘가에 고용되어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다. 어디에나 이주노동자가 있지만 특히 최근에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면서 인권침해를 당하는 사례가 많은 농축산어업 이주노동자들이 많아지면서 추석의 의미가 또 다르게 다가오고 있다.

 

2007년 6,500여 명이던 고용허가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는 2016년 약 28,000명으로 증가했다. 이에 추석 차례상 먹거리의 재료들은 신토불이라도 그 먹거리를 기르고 수확한 이들은 이주노동자일 것이다. 사과는 네팔에서 온 노동자, 전으로 만들어진 버섯은 미얀마 노동자, 나물이 된 시금치는 캄보디아 노동자가 길렀을지 모른다. 또한 잡채에 들어간 돼지고기에는 우즈베키스탄 노동자의 땀이 배었을지 모른다. 2016년 원양어선 선원의 약 70%, 연근해 어선 선원의 30% 이상은 이주노동자다. 때문에 차례 상의 백미인 조기는 중국에서 온 선원 이주노동자가 잡은 것일지 모른다. 또한 음식을 올려둔 그릇과 상은 몽골에서 온 노동자가 만들었을 모른다.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 함께 차례상을 차리는 집도 있을 것이다. 함께 차례를 지내려고 먼 길 달려온 자녀들은 일자리가 많은 더 큰 도시로 가서 살고 있는 이들일 것이다.

 

우리의 추석은 이제 태어나서 자란 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주자들이 만나는 특별하고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그러니 올해는 한 해 중 가장 풍성한 만월을 보며 누구도 다른 지역 출신, 다른 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고, 차별받지 않게 해 달라고, 평범한 똑같은 사람으로 대우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함께 빌어볼 수 있지 않을까. end

 

 

 

이한숙 님은

2005년부터 (사)이주민과 함께의 부설기관인 이주와 인권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현재 이주와 인권연구소는 개별 단체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첨부파일

모두보기닫기
위로

확인

예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