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근수당이냐, 귀향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달력을 보고 또 봤지만 이번 추석 연휴는 내겐 너무 길다. 해외여행, 가족끼리의 오붓한 명절 등 내겐 그저 꿈같은 소리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쿨하지 못하게 왜 이래?, 누가 내려가라고 등 떠민 것도 아니잖아!’란 생각에 내 맘을 다잡아보곤 하지만 내 처지가 조금은 서글픈 건 어쩔 수 없다.
나도 한때 서울에서 착실한 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밝은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았던 적이 있었다. 많은 수입은 아니었지만 저축도 하고, 사고 싶은 것도 참아가며 점점 나아질 거란 희망으로 살았던 청춘이었다. 하지만 세상살이는 참으로 내 맘 같지 않았다. 점점 나아지기는커녕 그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없었다. 월급을 타 부모님께 용돈이라도 드리면 내 지갑은 한순간에 허전해지기 일쑤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오늘은 내가 쏜다’라며 잠깐의 허세라도 부려 돌아오는 건 밤새 이어진 후회였다. 그렇게 나는 나의 경제적인 조건에 점점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게 됐다. 이런 나의 구질구질한 모습에 염증을 느끼던 날, ‘그래 돈이나 바짝 벌어보자!’ 그래서 택한 일이 공장 생산직이었고, 떠나온 곳은 여기 충북 증평이다.
공장이란 환경은 좀 낯설었지만 작정하고 돈을 벌고자 온 내게 환경 탓은 그야말로 사치였다. 올해 1월에 입사해 전자산업분야 생산직의 2교대 근무로 4일은 주간, 4일은 야간 일을 담당하고 있다. 처음에는 ‘내가 과연 잘 선택한 일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 스스로도 ‘내가 이렇게 적응을 잘하는 사람이었나?’라며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오히려 학원강사로 일했던 때는 미래가 불투명하고, 돈벌이도 시원치 않아 항상 불만에 가득 찼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일한 만큼 수당을 받을 수 있는 능력제로 내가 열심히, 성실히만 하면 만족할 만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좀 더 일에 대한 욕심이 생겨 현재는 업무와 자격증 공부를 동시에 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투자란 생각에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열심히 살고 있는 시간이라 자부한다. 그런데 추석이 복병이 돼 버렸다.
공장에서 추석 근무자에 한해 특근수당을 걸어놓은 탓이다. ‘이 얼마나 달콤한 악마의 속삭임이란 말인가! 추석 연휴 때 꼬박 일해 받는 수당을 계산하면?’ 벌써 내 머릿속은 계산된 숫자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이왕 돈 벌려고 내려온 거 추석 연휴 때 바짝 벌어?’와 ‘돈도 중요하지만 아들로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를 두고 최종 결정을 못 내렸다.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한다. ‘어쩌다 내가 돈의 노예가 되어 이런 삶을 살게 되었나’ 하고 말이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미래를 위해 선택한 나의 결정이었지만 또 한 번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유대영 님은
현재 충북 증평에서 전자산업분야에서 일하며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꿀송편 대신 삼각김밥 먹어도 괜찮아
어릴 적부터 영화에 대한, 그리고 영화인에 대한 동경을 마음 한편에 키우고 살았다. 한마디로 영화란 내 꿈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후 꿈은 단지 꿈일 뿐, 달마다 월급을 꼬박꼬박 받는 직장인이 최고라는 생각이 당연하게 박혔다. 그렇게 서른을 코앞에 맞닥뜨렸을 즈음, 이 나이에는 새로운 도전 대신 하던 것을 하는 게 최고라는 생각, 정말 좋아하는 건 취미로 남겨두자는 생각으로 한 사람의 진정한 관객이 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면서도 영화 일에 대한 갈망은 멈추지 못했다. 어찌어찌 기회가 되어서 단편 영화 제작에도 참여해봤지만 여전히 영화인은 아니었고, 차곡차곡 먹어가는 나이가 발목을 잡는 듯했다. 사실 마음만 먹었다면 기회는 언제나 있었다. 친한 친구가 영화인으로서 탄탄하게 자리 잡았고 원한다면 언제든지 함께하자고 했었으니까. 단, 끝까지 영화를 할 마음이어야지, 잠깐 경험삼아 해볼 생각이라면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조건과 함께.
지난해 여름, 커져만 갔던 가슴 속 빈자리, 그러다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5월의 생일날 아침에 출근과 동시에 사직을 얘기했고, 그날 저녁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할게, 영화.”
2017년 여름은 안성에서, 대전에서, 부산에서 그렇게 나의 첫 영화와 함께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가을과 함께 촬영 중인 두 번째 영화. 그 어느 때보다 긴 추석연휴에 예상치 못한 사흘의 휴가가 주어졌다. 하지만 영화제작이라는 것이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고, 약속된 일정이란 빗나가는 게 다반사인데다 서울까지 부모님을 뵈러 다녀올 일이 엄두가 나지 않아 부모님께는 촬영이 끝나는 11월 이후에 갈 예정이다.
아직 초보 영화인으로서 습득해야 할 것도 많고, 무엇보다도 홀린 듯 발을 들여놓기는 했지만 내가 소망하던 영화 업무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송편과 불고기 대신 컵라면에 삼각김밥을 먹어도 행복한 마음으로 추석을 보낼 것이다. 내 삶과는 상관없어만 보였던 ‘치열’이라는 단어. 시작이 늦은 만큼, 이번만큼은 그 단어를 곱씹으면서 걸어볼 생각이다. 
김민우 님은
수년 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현재 전국을 다니며 영화제작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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